※思索의 窓門/태화강 이야기~

울산 덕하역 이야기~

migiroo 2012. 9. 16. 23:06

>2012.9.14



간이역 '덕하역' 이야기


•기차는 떠나가고~
•추억의 파편들~


구름 가득 낀 하늘, 따가운 해가 없어 걷기에 딱 좋은 날이다.
요즘 며칠째 걷기를 하고 있다.
운동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평소에 별로 가보지 못한 도심 주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걷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걷다 보면 보행 거리가 십여 키로나 되고 아침부터 걷기
시작하여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기진맥진 이다.
그러나 비록 육신은 지쳤어도 기분은 참으로 좋다.
걸으면서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컴으로 옮겨 들여다보면 그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내 감성이 듬뿍 담긴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오늘은 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기차역을 찾는다.
바로 ‘덕하역’이다.
역의 건물이 앙증맞게 예쁘고 귀엽다.
광역시 주변에 이런 역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신기할뿐이다.
그리고 나의 상념은 또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5,6,70년대의
시간 여행을 떠나고 있다.


역사 지붕 세모난 박공 아래 역사 이름이 보인다.
이름이 ‘덕하역’이다. 한자로 ‘德下’라 쓰여 있다.


 


“엉~ 덕이 낮은 곳이라니...”


나는 속으로 중얼 거리며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렇다면 덕이 없다. 라는 말이잖아...???“


“왜 이런 이름을....”


한참을 덕하(德下)라는 한자어를 두고 생각해 본다.


“왜, 어질 덕(德)자 밑에 아래 하(下) 자가 붙었을까?“


그리고 비로소 그 뜻을 조금 헤아려 본다.
바로 ‘德下’ 란 덕이 없다. 라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로 ‘덕이 있는 곳’. 이라는
뜻이다. 바로 ‘德下’란 겸손과 겸양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되기 때문이다.


현자(賢者)는 말한다. “소신은 덕이 부족한 자이옵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덕이 아무리 높아도 늘 덕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자(愚者)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를 본받아라...”


이렇게 어리석은 자는 한없이 자신을 높이려 하고,
현자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려 한다.


덕하역에 와서 나는 현자와 우자 사이 어느 쪽인가를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현자도 우자도 아닌 듯 싶다.
싼 덕이 하나도 없으니 그저 이름 없는 한낱 범부일 뿐이다.


덕하역의 역사의 건물 형태는 일제강점기 철도역 표준설계에 의한 기본형으로
당시에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작은 간이역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몰론 그 동안 개보수를 여러 번 거쳤을 것이지만 건물 형태는 옛 것과
변함이 없으니 과거를 떠 올리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오늘 역사는 쓸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티끌 하나도 없이 정갈하다.
대합실은 텅 비어 있고, 안으로 들어가 기웃거려 보니 역무원이 두 분 보일 뿐이다.
승객 한 분은 의자에 앉아 있고, 한 사람은 표를 사고 있다.
나도 표를 끊을까, 그리고 어디로 갈까?
그러나 갈 곳이 없다.
간이역 대합실도 외롭고 나도 외롭다.

 

그래도 한때는 동해남부선 석유화학단지 공단 근로자들로 북적거렸는데 이제는
승객들을 모두 그 잘난 KTX에 다 빼앗기고 지금은 인근 덕하 장터 뜨내기들만
타고 오르는 쓸쓸한 역이 되고 말았다.


내 어릴 때는 친구들과 함께 역에 나가 출발하는 기차 난간에 잽싸게 매달려 가다
기차 속력이 어느 정도 붙으면 난간에서 뛰어내려 엉덩방아를 찢는 위험한 장난도 하곤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직사하니 두들겨 맞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기차표도 없이 탔다가

매표검사원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옆 좌석 할머니나 아줌마들의 치마 속으로 재빨리

숨던 웃지 못 할 기억도 떠오른다.

 

 

역사를 둘러본다.
역 경내로 들어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어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역사 저편에 오래된 관사가 보인다. 역장님과 역무원들의 관사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빈 집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건물 형태가 이중 겹침 지붕의 옛 모습인걸 보니 이 또한
옛 추억을 떠 올리게 한다.


 

 

 

역사 한 켠엔 옛 우물도 남아 있다. 뚜껑이 닫혀 있어 열어 보진 못했지만
아직도 맑은 물이 고여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우물....
옛 날 우리 집에는 마당에 있었던 우물이 생각난다.
당시 집 마당에 우물이 있는 집은 그래도 부유층(?)에 속했다.
물동이 이나 양철 물통을 들고 동래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 우물에 와서
물을 길어 가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텅 빈 선로....
수많은 열차들이 오간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 철로가 외롭게 길게 누어있다.

 


 

지금의 역사가 있기 전 간이 역사로 삼았던 건물이 덩그러니
플레이트 홈 가운데에 서 있다. 지금은 표를 끊고 플레이트 홈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대합실로 사용하고 있다.
잠시 대합실 벤치에 앉아 곡선으로 길게 누어있는 철로를 바라본다.


마침내 열차가 들어온다. 유선형 앞 주둥이가 멋진 ‘새마을호’다.
그러나 지금은 서지 않는 열차, 몇 년 전부터 ‘무궁화호’만 정차하는 역으로 바뀌었다.

 


 

"빵빵, 빵빵~~ “

 

약 올리듯이 경적을 빵빵 울리며 새마을호가 쏜살같이 역구내를 빠져 나간다.
언제 적부터 그랬던가, 우리나라 ‘무궁화’ 가 ‘새마을’ 에 뒤진 것이...
‘무궁화호‘는 완행열차가 됐고, ’새마을호’는 씽씽 달리는 특별 열차가 된 것...
아마도 서슬 퍼런 제3공화국 박정희 군사정권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새마을호도 이제는 영문 두문자로 둔갑한 ‘KTX'에 밀려
뒤안길로 밀려났으니 이를 두고 격세지감이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로 주변의 화단이 예쁘게 단장 되어 있다.
일손도 부조할 터인데 정갈하게 다듬은 화단을 보니 두 분뿐인 역무원이
꽤나 부지런한 한 분들인 듯 하다.

 

 

 

 

드디어 완행열차 무궁화호가 목쉰 기적을 울리며 역구내로 들어온다.
늙은 나처럼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용기를 내라, 파이팅~ 무궁화호야~~
무궁화호를 만나니 새마을호 보다, KTX 보다 더 반갑다.
마치 내가 나를 만난 듯 마음이 짠해 진다.
기왕이면 진짜 기차였음 더 좋았을 터이지만....
이제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검은 연기 나는 기차를
그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떠나간 사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랑했던 연인처럼....
무궁화 호는 달랑 한 여자를 내려놓고, 한 남자를 태우고 다시
쉰 기적을 울리며 다음 역으로 향한다.
저것 타고 끝까지 가 보고 싶다.
그 끝에 날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끝이 지구 끝이라 한들 상관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기차를 타지도 않았고 가지도 않는다.
그저 느릿느릿 가고 있는 기차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문득 조수미의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가 생각난다.
자유와 해방,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향한 그리스 저항운동가
데오도라키스(1925~)가 작곡한 곡으로 조수미 특유의 애틋한
목소리로 부른 노래다.
들어도, 들어도 한없이 듣고 싶어지는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를 내 머릿속 엠피3로 들어 본다.

 

연기를 길게 뿜으며 칙칙폭폭~ 철마가 달린다.
그 기적 소리가 아련하게 귀전을 맴도니 떠나 간 기차 아쉬워하고,
기다리는 기차에 아파했던 시절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등록문화재로서의 간이역사


간이역사로 근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곳 중에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부산의 송정역 역사 건물(부산 등록문화재 제302호)이다.

 

 

                                            ▲부산 송정역 역사 모습(부산등록문화재 제302호)


 

동해남부선 해운대역과 기장역 사이 있는 송정역은 1934년에 세워졌으니 70년 쯤 된다.
덕하 역사과 거의 건물 모습이 닮아 있다. 다만 덕하역은 근년에 리모델링을 하여 전체적으로 깔끔해 졌을 따름이다.
옛 것을 잘 유지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된다. 무조건 멋지고 깔끔하게 리모델링한다면 예스러움이 손상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도 덕하 역사는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니 근대등록문화재로 등록함이 마땅하다.
역사와 주변 마을과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잘 정비하여 소공원화 한다면 어떨까 싶다.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덕하역사도 곧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한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울산 태화강역~부산 부전역 간(65.7km)의 철도를 복선전철화 하기로 하여 노선의 직선화를 위해

이 경로를 지나는 현 덕하역을 인근 다른 곳(남구 두왕동)으로 옮길 계획이란다. 이에 덕하역 주변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70여 년 동안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역을 옮길 수 없다고 코레일 측과 싸우고 있다하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아직은 모르는 상황이다. 


 

                                                           ▲덕하역 철로 안쪽 면

 
덕하역은 동해남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남창역과 태화강역(전 울산역) 사이에 있다.
주로 부산 해운대에서 경주, 대구역을 잇는 역이고 멀리는 청량리역까지 이어진다.
덕하역은 1935년도에 간이역으로 시작하여 1941년도에 역사를 지금의 형태로
신축하여 2002년도에 지금처럼 개축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2008년부터 새마을호가 정차 하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
다만 무궁화 호만 정차하는 역으로 격하 되었다.


결국 비가 오기 시작한다.
태풍 ‘산바’가 한반도 방향으로 올라오고 있다 한다.
요즈음 왜이리. 태풍이 잦은지 모르겠다.
모두가 지구 온난화 영향 이라한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는 인간이 만든 현상이고...

 
덕하역을 떠나다.
기차에 오르지 않고 오던 길을 다시 걷는다.
언젠가는 꼭 덕하역에서 다시 기차를 탈 것이다.

 

<*기차등 사진 일부는 켑쳐화면>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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