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태화강 이야기~

8.울산 망해사지 석조부도를 돌아보며...

migiroo 2009. 9. 18. 23:59

 

●울산 망해사지 석조부도를 돌아보며... 

 

 

 

 


보물 제173호 울산 망해사지 석조부도....
울산의 유일한 국가 지정 보물급 부도다.
비례가 조금은 통통하지만 그래도 조각과 팔각원형부도로서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동,서부도 중 동부도는 쓰러져 있는 것을 1960년에 복원한 것이며
부도 아래에는 새로 들어선 망해사 암자가 아주 조용히 앉아 있다.

망해사지 부도는 헌강왕와 처용설화와 관련이 있는 통일신라 하대기의 부도이다.
지대석, 기단부와 몸돌 그리고 지붕돌은은 비교적 잘 남아있지만
맨 윗층 상륜부(노반,복발,보륜,보주)는 두기 다 남아 있지 않다.

 

 

 


특히 하대, 중대, 상대의 기단부에 새겨진 안상과 연꽃잎(앙련과 복련)의
조각이 선명하고 하대석 복련의 귀퉁이 마다 있는 귀꽃은 정말 아름답다.

한 말로 표현해서 망해사지부도는 전체적인 비례가 너무 통통하다. 
또한 망해사지부도는 팔각원당형 부도의 표준형 같아 섬세함이 부족하다.
부도의 조각도 뭐라고 나무랄 때  없는 표준형 조각 같지만
다른 지역의 부도와 비교하면 특별한 조각의 기교가 부족한듯 느껴진다.

특이 한 것은 망해사 부도의 기단부에는 멋진 귀꽃이 있다.
탑신에는 문비 조각만 있고 아무런 장신이 없는데....
다른 지역 부도에는 문비와 8부신중상이 같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 부도는 통일시라 시대의 작품이다.
문화재에 관심이 맗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 오는 곳이기도 하다.
울산 문수산 남쪽 자락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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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사지의 문화재 정보

 

망해사는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있었던 고찰로 신라 제 49대 헌강왕(875 - 885)때에 세워졌다.
* 건립연대 : 875 ∼ 885

 

헌강왕 5년(879) 3월에 임금이 동쪽의 고을에 거동하여 민정을 살필일이 있었는데 이 때의
일로서 나라는 태평하여 풍우는 4계절 순조롭고 풍악과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아니하였다.

헌강왕이 하곡에 왔다가 개운포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물가에서 잠시 쉬었는데 돌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별할 수 없어 길을 잃을 정도였다. 이때 임금을 따르던
좌우에게 물으니 일관이 아뢰되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오니 좋은 일을 하여 풀 것이라
하였다.

 

이에 왕은 수행한 신하에 명하여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자
 안개와 구름이 흩어지고 개이며 동해용이 아들 일곱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와 덕을 찬양
하여 춤을 추었다. 이 구름이 개이고 안개가 흩어진 곳을 개운포라 하였다.

임금이 서울로 돌아와서 청량면 율리의 영축산 동쪽기슭 좋은 터를 골라 용을 위한 절을
세우니 이 절이 망해사인데 일명 신방사라고도 하였다.
그후 신라사람들은 역신을 쫓는 방편으로 처용의 초상화를 그려 문간에 붙이는 풍속이
생겨났다고 전한다.


한편 왕의 분부를 따라 지어진 절간이 문수산 동쪽 영축산 중턱에 자리잡은 망해사다.
왕은 그 당시 동  해용왕이 문무대왕의 화신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와 김유신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나 미쳐다
이루지 못한 통일과업을 김춘추의 아들인 법민이가 후에 문무대왕에 오르면서 통일을
마무리 한것이다.

 

문무대왕은 승하할 때 임종 유언으로서 죽거든 땅에 묻어서 능을 쌓지 말고 화장을 하여
그 유골을 동해바다에 수장해 달라고 하였다.
사후에 동해용왕이 되어 신라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겠다고 하였다.

그후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은 월성군 양북면 용당리 앞 바다 문무대왕 수중왕릉이 있는
곳에서 일진풍파가 일더니 섬 하나가 움직였다.
왕이 그곳에 나아가서 용을 만나, 천사옥대와 주리야합하는 대나무를 얻어 피리를 만드니
이 피리가 바로 만파식적이였다.

 

만파식적을 불면 만가지가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여 이름하여 만파식적이다. 헌강왕은
아마도 이때 동해용왕이 다름 아닌 문무대왕의 화신으로 알고 망해사를 짓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일이 있고 부터 신라사람들은 용왕을 숭배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망해사는 동해
용왕의 식복과 신라의 호국을 빌던 신라 고찰이였건만 그 후 역대의 병난으로 파괴되어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법당이 세워졌던 자리에 주초석만 정연하게 심어져 남아있고 법당
뜰 좌우에 세워진 석조부도 두기만 남아있다.

 

이 석조부도는 보물 17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같은 사화에 따라 울산공업 축제 때가 되면 매번 헌강왕의 가장행렬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처용가와 처용무가 지금 한창 연구 개발 중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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