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태화강 이야기~

9.울산 청송사지 삼층석탑을 돌아보며...

migiroo 2009. 9. 19. 10:39

 

●울산 청송사지 삼층석탑을 돌아보며... 



울산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청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382호)같은 대작의 문화재를
온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석탑의 전체적인 비례가 조금은 어색해 보이지만
통일신라 후대의 탑의 규모로서 볼 때 그 옛날 청송사가
얼마나크고 번창했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기단의 짜임새가 불안하고, 1층 탑신이 2,3층 탑신에 비하여
지나치게 커 경주의 감은사지 석탑 같은 황금비율을
갖지 못했음이 못내 아쉽지만 그런대로 안정감이 있고
육중해 보여 신라 탑으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1962년 해체 수리할 당시 상층기단에서 발견한
청동사리함 안에서 청동여래입상 1구를 비롯하여
유리구슬, 수정 곡옥, 관옥 등의 유물 30여점을 수습하여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현재의 청송사-삼층석탑 옆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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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지 문화재 정보

 

청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382호(통일신라)

 
신라 효소왕때 처묵(處默)이 창건한 청송사의 옛터에 서있는 석탑이다.
청송사는 현재 마을 전체가 절터라고 전하고 있을만큼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곳으로 보인다.


1917년 춘담(春潭)이 두번째로 크게 확장한 바 있는데,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전하는 설화가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이 가까운 방현사터의 아미타여래좌상을 오대산의 절로 옮기기 위하여 길을 가던 중 청송사 앞에 이르자 갑자기 무거워지고 소나기가 뿌려 더 이상 움직일수가 없어지자 불상이 있어야 할 곳이 이 절임을 깨닫고 이곳에 모셔두었다.

 

그후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불상을 몰래 반출하기 위하여 주문진까지 옮겨갔으나 갑자기 풍랑이 일어나서 포기하였다. 춘담이 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예불을 드리고 돌아갔는데, 원인모르게 3년동안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불상이 나타나 봉안하지 않은 것을 꾸짖으니, 이곳에 와서 절을 크게 확장하고 불상을 모셔두었고, 이내 몸이 나았다고 한다.

 

이 탑은 2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석탑이다.
기단은 아래 ·윗층이 같은 양식으로 되어 있다.


각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기고, 마감돌 위에 다른 돌로 2단의 모난 괴임돌을 끼워서 각각 윗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이 특히 길고 크며, 2층 몸돌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각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이 있고, 추녀가 두꺼워 지붕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약하며 처마는 수평으로 길이가 짧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이 탑은 기단의 짜임새가 정연하지 못하고, 1층 몸돌이 지나치게 크며, 지붕돌이 짧아 좋은 비례로 보기 어려우나, 지방에 분포된 신라 석탑의 한 예로 주목할 만하다.

또한 1층 몸돌의 괴임돌이 다른 돌로 되어 있는 점은 탑의 특이한 조형과 아울러 9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을 짐작하게 한다.

 

1962년 해체, 수리할 당시 2층 기단에서 동제사리함이 발견되었다.
그 안에 청동여래입상 1구를 비롯하여 유리구슬 16점, 수정으로 만든 곱은옥 1점, 관옥 1점 등 30여 점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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