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천룡사지에 가다.

migiroo 2012. 12. 7. 00:06

천룡사지에 가다.

 

 

늦은 오후 경주남산 천룡사지(天龍寺址)에 왔다.
절터에는 이미 영하의 차가운 겨울이 내려 앉아 있다.
황량하기 조차한 옛 절터 마당에는 찬바람에 몸을 맡긴
갈대와 죽은 잡초만이 무성하다.


상륜부가 온전히 복원되어 있는 삼층석탑(보물제1188호)만이
여기가 천 수백 년 전 천룡사 옛 절터였음을 말해 주고 있었고
때마침 드리운 붉은 석양빛에 탑신을 드러내며 석탑은 
영원한 침묵에 잠들어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석탑 상륜부에 석양이 걸렸다.
붉은 석양빛이 탑신 서면(西面)에 비쳐 하얀 화강암이
황금빛으로 변했고, 그 반대 면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아름다운 탑의 실루엣을 만들어 낸다.
탑은 바라보는 또 다른 감동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탑은 여러 모습으로 보인다.

탑은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 보이고,
탑은 보는 시간대에 따라서 달라 보이고,   
탑은 보는 날씨에 따라서 달라 보이고,
탑은 보는 계절에 따라서 달라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달라 보이는 것은
탑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 보인다는 점이다.


탑은 눈(色)으로 보되 가슴(느낌)으로 담고,
가슴으로 담되 마음(心)으로 바라볼 때
진정한 탑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있고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겨울이 내려앉은 천룡사지에는
옷(잎)을 모두 떨어 버린 앙상한 나무들이
석양빛에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부터 나무들은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뎌낼 것이다.
고통이 무엇인줄 아는 사랑을 얻기 위함이다.
내년 봄에 찬란한 꽃(사랑)을 피우기 위한 인고(忍苦)의 수행이다.
그리고 나무들은 버릴 줄 아는 無所有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미지로(201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