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내가본國寶문화재

▶해학적 문양의 '백자 끈 무늬 병'

migiroo 2013. 1. 17. 22:00

>2013.1.17

 

■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36)  
해학적 문양의 '백자 끈 무늬 병'
-白磁 鐵畵垂紐文 甁
-보물 1060호
 
춥다.
올 겨울은 유독 더 춥다.
아직도 지난 대선 맨붕에서 깨어나지 못하니 육신보다는
정신적 추위가 자꾸만 어께를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이런 저런 어두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하여 박물관을 찾는다.
수천, 수 백 년 시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유물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추위도, 허한 마음도, 잠시 맨붕에 빠졌던
정신도 조금은 나아 질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어떤 유물을 볼까?

 

국립중앙박물관 3층, 도자공예실....
수많은 국, 보물급 청자와 백자가 즐비하다.
유물들은 숨을 멈춘듯 작은 유리관 속에 갇혀 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고요해 진다.
 
그 중 유독 나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는 도자기 하나...
누가 봐도 요상(?)하다 싶은 무늬가 새겨진 하얀 백자병...
얼핏 보면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넥타이를 맨 신사양반 같기도 하고,
어느 청상과부의 하얀 소복 위에 맨 옷고름 같기도 한 백자...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해학적이고도 왠지 익살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텅 빈 하얀 여백에 휘감아 꼰 매듭에서 정감이 뚝뚝 흐른다.
도대체 조선시대의 도자기 장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이 같은 대범한 장난(?)을 친 것일까?
현대의 디자인에서도 볼 수 없는 파격적 무늬....
그러면서도 정감이 뚝뚝 떨어진다.

 

 

 

 

 

이런 병엔 무엇을 담았을까?
술일까?
아니면 맑디맑은 생명수 같은 청수일까?
그도 아니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약술일까?

 

 

 

 

 

한잔 술에 거나하게 취한 어느 가난한 선비의 허리춤에 찬
술병일게 분명한데 뚝 떨어지거나 부딪치면 깨져버릴 게
뻔 한한데 어찌 선술집 술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술병으로 쓰긴 너무 아깝고,
약병으로 사용하긴 너무 위태롭다.

 

 

 

 

하나는 목줄을 맨 철화백자병이고,
또 하나는 그냥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병이다.
두 개의 백자병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도 수 없다.
하나는 텅 빈 여백의 여유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그 텅 빔에 파격적 익살스러움을 불어 넣었다는 것뿐이다.
둘 다 똑 같은 모양의 술병인 듯싶은데 하나는 끈을 질끈
맨 모습에서 텅 빔의 지루함과 공허함을 잠시 피했다는 것이다.
마치 무소유에서 가장 작은 소유를 나타낸 것이랄까.
무감각 상태 속에 작은 감정을 유입 시켰다고 할까.
아무튼 두 백자병에서 그런 느낌이 대비된다.

 

한쪽은 백자병이고 다른 한쪽은 철화백자병임이 다른 점이다.    
철화기법(鐵畵技法)으로 잘록한 목 부분을 한 바퀴 휘 감은 후 풍만하고
유연한 몸체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려 간 끈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저런 술병에 든 술을 술잔에 한 잔 따라 마시든지....
아니면 그냥 병 주둥이를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시다 끝내 술에 취해
아무 곳에서나 퍼질러 잔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다가 깜짝 놀란다.
이런 상상은 귀하디귀한 백자병을 모독 하는 꼴이 될 듯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나오니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 진다.
빨리 혼미한 맨붕 상태를 날려 버리고
모든 현실을 받아 드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 하다.
하늘에 겨울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공기가 차다.

 

>미지로

 

 

 ■철화기법[鐵畵技法]에 대하여...

 

 

도자기 장식기법의 하나. 철화란 산화철(FeO) 혹은 제이산화철(Fe2O3)을 주 안료(顔料)로 하고 점토와 유약 등의 보조제와 혼합하여, 분쇄·정제한 후 이를 붓으로 기면(器面) 위에 문양을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이 때 자기는 초벌 구이한 것을 사용하는데, 이 위에 유약(釉藥)을 바르고 가마 안에 넣어 구우면 문양을 그린 부분은 흑색이나 흑갈색으로 변한다.

 

문양을 그릴 때는 자기의 수분 흡수율이 여느 종이나 비단과는 판이하게 달라 숙련된 솜씨를 요구한다. 구운 후 색상도 안료의 농담에 따라 일정하지 않고, 번조(燔造) 온도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

더구나 안료의 휘발성이 높아 너무 얇게 칠한 부분은 구운 후 아예 그 흔적조차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그림을 그릴 때는 매우 숙달되고 신중한 필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철화기법을 담당한 사람은 그림 솜씨가 빼어난 장인이나 화원(?員)들이었다.

철화기법은 고려청자를 시작으로 분청사기와 조선백자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는 산화철이란 주원료를 국내에서 획득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백자의 경우 석간주(石間朱)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곧 조선시대 철화백자에 사용된 안료로 산화철을 의미하는 것이다.

 

철화기법은 철저하게 붓을 사용하는 회화(繪?)적인 것으로 문양을 그리는 사람의 필력(筆力)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창출해낸다. 분청사기의 경우 각종 초화문(草花文)·새·물고기·당초문(唐草文) 등이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변형되거나 도식적인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들의 추상화되고 희화화(戱?化)된 모습은 고려시대 철화청자나 조선시대 철화백자와는 또 다른 것으로 대담한 기형과 어울려 분청사기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15세기 후반 16세기 전반에 걸친 철화분청사기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지역의 가마터에서 상당량 출토되어 철화분청이 이 지역에서 크게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양이 아이들 그림 같은 치졸한 것에서 현대적인 것까지 다양하여 회화적으로도 그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철화기법은 일찍이 중국에서도 자주요(磁州窯)·장사요(長沙窯)·서촌요(西村窯) 등지에서 사용되었지만 우리와 같은 해학적인 문양이 보이지 않고 세부적으로는 기면에 돋을새김이나 오목새김을 한 후 철채(鐵彩)를 하거나 붓을 쓰는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자료 네이버)

 

 

■문화재청 자료

 

백자철화승문병(白磁 鐵畵垂紐文 甁)


-보물 1060호

 

 

조선 전기 백자 병 특유의 풍만한 양감과 곡선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잘록한 목에 한 가닥 끈을 휘감아 늘어뜨려 끝에서 둥글게 말린 모습을 철화 안료로 표현하였다. 단순하면서도 많은 여백을 남긴 여유 있는 묘사와 거침없이 그어 내린 힘찬 선은 절제된 필치로 장인의 숙련된 경지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처럼 여백과 무늬의 절제된 표현과 구성은 도자 공예의 차원을 뛰어넘은 세련된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망설임 없이 사선 방향으로 힘차게 그어 내린 끈무늬는 단순하지만 그릇 전면에 걸쳐 강한 인상을 준다. 굽 안 바닥에는 철화 안료로 「니나히」라고 쓴 한글이 있다. 그 뜻은 명확치 않으나 한글 창제 전후의 작품일 것으로 짐작케 해주는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