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내가본國寶문화재

▶국보 58호, 장곡사 미륵불괘불탱

migiroo 2012. 6. 26. 09:27

 

   >2012.6.25


■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35)


▶국보 58호, 장곡사 미륵불괘불탱

 


●미륵이여! 미륵이여!


내가 장곡사를 답사 한 때는 벌써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여의 무량사를 거쳐 장곡사을 찾은 목적은 그 곳에 있는
 ‘장곡사미륵불괘불탱‘을 직접 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괘불탱은 볼 수가 없었다.
괘불이 긴 목재 상자에 보관되어 잠을 쇠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께 보여 달라고 졸랐는데도 어립도 없었다.
그 괘불함은 법당도 아닌 대중들이 사용하는 방구석에 길게 누워 있었다.
국보 관리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다니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던 기억과
장곡사는 다른 사찰에 비하여 내방객들도 뜸하고 비교적 낡고
가난한 사찰 있었다는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스님한 분이 사찰 내력을 잘 설명해 주시긴 했지만
끝내 괘불탱은 보여 주지 않았다.


 

            ▲장곡사 괘붍탱이 들어 있는 괘불함(자료 사진)

 

 

 

● 장엄한 장식의 장곡사철조약사불 연화방형대좌


장곡사에는 국보가 두 점이 있다.
하나는 바로 국보 300호 ‘장곡사미륵불괘불탱’이고,
또 하나는 국보 58호‘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이다.
아마도 불상의 대좌가 국보로 지정 된 것은 장곡사가 유일할 것이다.
잠시 그를 한 번 구경해 보자. 

 

                              ▲국보 58호, 장곡사철조약사여래와 석조대좌 

 

                            ▲국보 58호,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

 

금박한 철조 불상은 큰 대좌에 비하여 조금은 외소 하지만 신체비례가 잘 맞고
근엄하면서도 인간적인 인상을 느끼게 한다.
수인은 석가모니불이 주로 취하는 항마촉지인인데 의외로 손에 약함을 들었으니
약사불이라 부르는 것 같다.

 

                           ▲국보 58호,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 과 광배 

 

                             ▲국보 58호,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 광배 

 

광배는 배 모양 같다고 해서 ‘주형전신광배(舟形全身光背)’라 하는데 화려한 불꽃무늬와 꽃무늬를

새기고 있어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유행됐던 무늬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불상의 백미는 바로 대좌에 있다.

 

                              ▲국보 58호,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 석조연화대좌 

 

 

대좌는 불상보다 훨씬 장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사각형의 대좌 형태로 9세기 후반기에 유행되던 형식이지만 그보다 한결 장식적이다. 상·중·하의 3단 형태의 이 대좌는 하대가 넓고 크고 높은 반면에 중대·상대가 상대적으로 낮고 작은 편이다.


하대는 이 위에 놓여 있는데, 1면에 안상 4개씩이 새겨져 있고, 복련(覆蓮)으로 겹잎의 연꽃잎무늬와 귀퉁이 4면에 귀꽃 가 양감 있게 부조되어 있다. :
이러한 형식의 대좌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시기에 유행했던 것이라 한다.

 
괘불탱 이야기 하려다 옆길로 잘 못 든듯하다.
다시 장곡사괘불탱 이야기로 들어간다.

 

 

●양산 통도사의 괘불탱 특별전시회


며칠 전, 절친을 졸라 통도사 암자 순례에 따라 갔었다.
그리고 행운을 만났다.
바로 통도사에서 ‘장곡사미륵불괘불탱 특별전시회’를 보게 된 것이다.
장곡사에서 보지 못했는데 그 수년 뒤 이제야 보게 됐으니 내 죽기 전에
보게 된 것이 어쩌면 행운이 아닌가 싶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괘불 대전시실에 걸려 있는 미륵불괘불탱은 그야말로
대작 중에 대작이었다. 통도사는 매년 두번 이런 불화 특별전을 갖는다.
 
 
●장곡사미륵불괘불탱


 

 

                                     ▲국보 300호, 장곡사미륵불괘불탱

 


어, 본존불이 보살이나 쓰는 보관을 쓰고 계시네?


그렇다. 여래는 보관을 쓰지 않고 보살들만 보관을 쓰다고 배웠는데 예외가 있다한다.
바로 미륵불은 보관을 쓴다고 한다.


장곡사 괘불탱에 대하여 문화재청의 자료를 간추려 여기에 옮긴다.

 
장곡사 괘불탱은 1673년, 조선 후기(현종 14) 작품으로 세로 8.69m, 가로 5.99m로
현존 괘불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한다. 철학(哲學)·천승(天勝)·신밀(信密)·일호(一湖)·해종(海宗) 등 5명의 화승(?僧)이 그렸다.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이 괘불탱은 화기에 ‘영산대회괘불탱(靈山大會掛佛幀)’으로 기입하면서 본존 명칭을 ‘미륵존불(彌勒尊佛)’로 적었다. 이 장곡사 미륵불괘불탱은 마곡사(麻谷寺) 석가모니불괘불탱(1687년 작)처럼 각 상에 명문이 밝혀져 있어 괘불탱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연꽃을 들고 있는 화려한 보관불(寶冠佛) 중심으로 많은 권속들이 둘러 선 군도식 구도이다.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이 독립된 존상으로 비교적 크게 표현되었다. 미륵존불의 협시로 대묘상보살, 법림보살을 포함한 6대보살(六大菩薩)·6대여래(六大如來)·10대제자(十大弟子)·범천과 제석천·사천왕·천자(天子)와 천동(天童)·아사세왕(阿?世王)과 위제희(韋提希) 왕비·용왕과 용녀 등이 둘러 선 군도(群圖) 형식이다. 정면 입상의 보관불을 그린 후, 남은 공간에 많은 권속들을 배치한 군도 형식은 단독형식보다 선행한다.

 


보관 중앙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불 등 4구의 화불(化佛)이 묘사된 보관불은 천개(天蓋)와 원형(圓形)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및 신광(身光 :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갖추었다. 비만한 원통형 체구는 오른쪽 어깨가 넓고 왼쪽 어깨가 좁아 어색하지만 얼굴은 온화하다.

 

 

6대여래는 노사나불·비로사나불·다보여래·석가문불(釋迦文佛)·약사여래·아미타불이다. 6대보살은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법림보살(法林菩薩)·문수보살·보현보살·관음보살·대세지보살이다. 보통 상단부에 등장하는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 및 범천과 제석천은 사천왕과 함께 하단부에 배열되었다. 범천은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홀(笏)을 든 왕의 모습이다.


홍색과 녹색 위주로, 하늘색 등 가볍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혼용과 금니(金泥)를 대신한 황색(黃色) 등의 채색과 신광의 모란 덩굴무늬 및 화면 테두리의 연속 꽃 문양은 화려하다.


이 괘불탱에 관해서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이 다른 권속보다 크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보관불을 화신 석가불로 보는 견해도 있다.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과 비교한다면 석가불의 협시보살인 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대신 대묘상보살·법림보살이 출현하고 있다. 아무튼 미륵존불로 기입된 이 장곡사 미륵불괘불탱과 무량사 미륵불괘불탱(1627년) 외에는 미륵불괘불탱으로 명명한 예가 발견되지 않는 점에서 미륵불괘불탱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하겠다. 또한 권속 중에 여래형 노사나불이 처음 등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보존처리


2010년도에 장곡사 미륵불괘불탱은 그 노후도와 많이 오염되어 2010년도에 특수 보존처리 복원하여 지금처럼 선명한 그림을 볼 수 있다.
괘불탱 보존 처리는 최대한 원형 유지를 원칙으로 하며, 탱화에 잔존하는 세균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세척 작업을 거친 후 얇은 배접을 원래의 탱화 배접 상태로 복원한 것이다.

 


●후기 

 

 

 

                                                                        ▲미륵불 후불탱화

 


요즘 불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 졌다.
박물관에서 공부도 꽤 한 편이고,
이런저런 불화에 대한 책도 여러권 사 보고 있지만
여전히 불화 속은 못 들여다보고 겉만 빙빙 돌고 있다.


불화 속은 신비의 세계이고 수수께끼의 세상 같다.
불화를 그릴 때는 그리는 화공의 몸과 정신은 물론이고,
불화를 그릴 비단을 짜는 사람도 몸을 정갈하게 하고,
화공에 식사를 날라 주는 사람까지도 청정해야 한다고 한다.


 

 

 

고려불화는 장엄하고 조선불화는 화려하다.
복잡함과 질서정연함, 섬세함과 미세함....
화려하면서도 장엄함의 극치...
깊고도 심오한 집중력과 인내력...
깊은 신앙심과 지극정성....


이처럼 불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화는 고려불화이지만
가장 많이 현존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숭유억불 시대에 그려진 조선불화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수한 고려불화와 조선불화 대부분이 일본에 가 있고,
국내에 남아 있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니....
참으로 원통하고 분하다.

모두가 나라가 약했던 탓이다.

일본X들 원망하기 전에 우리부터 나라를 튼튼히 해야 한다.

 

(*사진 제공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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