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내가본國寶문화재

▶국보 68호 비색에 취하여~

migiroo 2013. 1. 21. 19:14

 

 >2013.1.21

 
■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37)


▶비색에 취하여~


고려청자상감운학문매병 감상기
-국보 제68호(靑磁象嵌雲鶴文梅甁)

 

 

 

 

 

 

고려청자의 색깔을 비색(翡色)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비색이란 과연 어떤 색을 말하는 것일까?
현대 색감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비색을 딱히
어떤 색이라고 단정 지어 골라내지 못한다.

 

 

 


컴퓨터 색상에 위 그림과 같은 색상표(color code table)라는 것이 있다.
정해진 컬러 색상의 조합을 이용해 디지털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새로운 개념의 데이터 표현 기술로서 수백 가지 색들이 영문자와 숫자의
6자로 조합되어 색깔을 구분하는데 대부분의 컴퓨터 색상은
이 조합 코드에 의해서 온라인 색상을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수많은 색상코드 중에 고려청자의 비색에
딱 맞는 색상은 결코 찾아 낼 수가 없다.


왜일까?


바로 고려청자의 비색은 컴퓨터 색상구분표의 영역 밖에 있는
색으로 흙과 불과 정신이 조합된 영혼의 색 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성에 의한 특별한 영적 영감(靈感, inspiration)의해서 만이
표현 될 수 있는 색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독자적인 색상을 영적인 영역에서 얻어
고려청자라는 세계 유일무이한 비색을 만들어 낸 것이리라 본다.
그래서 고려청자의 색깔을 비색(翡色)이라고 하지만....
오묘하고 신비한 색깔이라 해서 비색(秘色)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비색(翡色)이라는 색 이름은 고려청자 특유의 푸른 빛깔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냥 푸른색이라 하지 않고 오묘한 빛깔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그 당시 청자의 원조국 중국까지 고려 비색의 오묘함에 매료 됐다고 한다.  


작년(2012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은 '천하제일 비색청자' 라는 특별전을 연바 있다.
그 많은 전시품 중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보 제68호 인 ‘고려청자
상감운학문매병’이었다.(내가 볼 때는....)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도자기에 무지한 사람에 속한다.
도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액은 어떻게 바르고 몇 도의 불에서
구워지는지 초보적 상식도 잘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미적 감성은 조금 있어서 청자의 비색이라든가,
달항아리 같은 백색의 오묘한 색을 보면 그만 그 색상에 취해 버리곤 한다.
다행히 딸네 집이 서울에 있는 덕에 걸핏하면 중앙박물관에 가곤 한다.
수많은 도자기 애호가들 틈에 끼어 그 때 보았던 ‘고려청자상감운학문매병’....
지금도 그 설렜든 가슴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유연한 하반신의 아름다운 곡선....
아름다운 여체를 말함이 아니고 고려청자의 몸매를 말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18세기 유럽의 귀부인의 드레스 같은 모습을 연상 하기도 하지만
어느 여인의 몸매가 고려청자의 몸매를 따를 수 있겠는가.
그 비색 바탕 위에 수많은 백학들이 구름 사이로 군무(群舞)를 하고...
아가리 아랫부분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으니 비색의 바탕은 우주이고,
연화세계 아래에서 하늘아래와 하늘 위를 향하며 군무를 펼치는
백학들이 마치 아미타세계로 향하는 영혼들이 펼치는 축제 같기도 하다.

 

 

 

 

이 청자매병을 다른 말로 일명 '천학매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다.
천마리의 학이 그려진 매병이 아니라  수천마리가 그려진 매병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그 이야기를 다 옮길 수는 없지만 명품 도자기를 감상하는 좋은 요령은
단순히 문화재 예술품으로서만 보지 말고 그 명품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나
사연을 알아 둠으로서 명품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더큰 도움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는 도자기에 무지한 내 생각이고,,,,)
여기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잠간 올려 본다.

 

 

청자는 중국 송나라에서 시작되었고, 고려인은 상감기법을 고안하여 중국을 뛰어넘는 수많은 명품을 제작하였다. 고려인들은 청자색을 비색(翡色, 물총새 翡) 이라 부르며, 또 다른 표현으로 신비하다고 해서 비색(秘色)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비색은 한마디로 맑게 빛나는 비취색이다.
청자는 유약의 색갈이 푸른 것이 아니라 투명한 유약을 통하여 드러나는 바탕의 빛깔이 푸른 것으로 여기서 푸른빛이란 파랑(blue)이 아니라 초록(green)이다. 청자는 바탕흙 속에 들어 있는 아주 적은 양의 철분이 산화제1철(FeO)로 환원되면서 일으킨 녹변(綠變)현상이다.


고려청자는 현재 25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중 에서도 '군계일학'이라는 평을 받는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배병이 으뜸이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이 매병은 높이가 42cm에 달하며 12세기 중엽에 제작되었다. 매우 풍만하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몸체에 그려진 46개의 원에는 구름과 함께 위로 날아오르는 백학이 있고, 원 밖에는 구름과 함께 아래로 날고 있는 23마리의 백학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69마리이나 이는 수천마리가 구름 속을 노니는 모습으로 봐야한다.


학의 진행방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은 도자기 표면이라는 일정한 제약을 넘어 사방으로 공간을 확산시켜 짜여진 구획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듯하다. 이 같은 표현상의 변화 추구와 함께 문양처리의 능숙함에서 고려 도자기의 우수함과 고려인의 창의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자기는 전체적으로 비색을 띠고 있는데, 비색은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로 만든 형태 위에 유약을 입히고 1250~1300도에서 구워 만든 것이다. 구운 다음 자기의 색은 회색 기운이 있는 녹청색을 띠게 된다.

 

 

●고려청자매병에 대하여 기구하고 감동적인 사연도 전해 온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문화재를 수탈해 간 일본의 이야기 이고, 그 중에 고려청자매병이 어떻게 우리나라로 돌아 오게 됐는지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이 청자매병은 1930년대 전반 개성 부근에서 일본인 도굴꾼이 발굴하여 여러 손을 거쳤고, 1935 년 일본인 마에다가 거금 4천원을 (당시 서울의 쓸만한 기와집이 2천원) 주고 사들이며 천학매병(千鶴梅甁)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그 후 마에다가 경제난을 겪으며 매수자를 찾던 중 총독부박물관이 1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였고,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선생의 귀에도 들어갔다.

 

▲전 재산과 정신을 우리 문화재 보호에 바쳤던 간송 전형필 선생.


매병을 보는 순간 간송은 천하명품임을 직감하고 2만원(기와집 10채값)을 제시하고 충청도 땅을 급 처분하여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일본본토까지 알려져 일본의 대수장가 무라카미가 경성으로 와서 간송에게
두 배의 가격을 제시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이로써 천학매병은 조선 땅에 남게 되었다.


간송은 1943년 국보중의 국보인 <훈민정음 원본>을 구입할 당시 소장자가 1천원을 요구하였으나 1만원을 주었고, 별도로 거간꾼에게도 수고비 1천원을 사례하였다고 한다. 간송의 문화재에 대한 이러한 안목과 기개가 우리의 문화적 자긍심을 크게 향상시킨 것이다.

 

 

●도자기 명칭의 이해

 내친김에 도자기 공부도 좀 하자.
 
도자기의 이름은 대개 <구분 + 기법 + 문양 + 형태> 의 순으로 나열되어 있어 조금만 이해를 한다면  명칭만 들어도 자세한 형태가 저절로 연상이 된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청자(구분) + 상감(기법) + 운학문(문양) + 매병(형태)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청자 : 도자기의 구분 (청자,백자,분청사기 등)
2. 상감 : 기법 또는 도료명 (상감,진사채,철화 등)


*상감 기법이란 청자의 바탕에 문양을 음각한 후 그 부분에 자토나 백토를 매꾸는 것으로,  구워낸 후에 자토는 검은색으로 백토는 흰색으로 나타 난다.


3. 운학문 : 문양의 종류 (운학문,운용문,어룡문,모란문,복사문,매화문 등)
4. 매병 : 형태 (병, 매병,주전자, 연적 등)


 *梅甁은 '아가리가 좁고 어깨 부분은 크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병(甁)'으로 술을 담아두는 그릇을  지칭하나, 원에서 명나라에 걸쳐 이 병에 매화가지를 꽂아 보고 즐기는 풍습이 유행하여 매병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5기타
고려에서 상감청자가 널리 유행하게 된 사회적 배경이 있는데, 그것은 고려 지배층이 문신에서 무신으로 교체됨에 기인한다. 새로운 지배층으로 성장한 무신들은 문신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독창적인 상감청자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시끄러운 세상을 잠시라도 잊고, 비색청자의 하늘을 유유히 비상하는 한 마리 학이 되어 고요와 정적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었는가 보다.(이상 유홍준 교수의 국보 순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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