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문화재 단상

고독에 잠긴 계림~

migiroo 2013. 2. 13. 18:59

 

 >2013.2.5

 

고독에 잠긴 계림~

 

 

 

 

계림에 왔다.
벌거벗은 나목들이 긴 동면에 들어 있다.
시간이 정지된 천년 사직이 고스란히 담긴 사적지....
그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는 보이지 않고
고독한 늙은 거목들만 앙상한 가지를 들어낸 체 서 있다.
오늘 거목들도 고독하지만 나 또한 고독하다.

쓸쓸한 계림의 숲을 걷는다.
찬바람이 숲 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 바람소리에 묻어 어디선가
홰를 치며 울어 대는 음소리가 들려오고,
어린 아기 김알지의 첫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온통 몸뚱이를 시멘트로 깁스한 거목 앞에 섰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몇 년이나 됐을까. 백년, 2백년, 오백년?
아니 그 이상일 듯싶다.
회화나무라고 하던데...
잔가지 몇 개가 있는 것을 보니 분명히 살아 있음이다.
그 앞에 서니 두려운 경외심이 솟아난다.

자연은 이토록 늙을수록 아름다워 지는데...
사람은 왜 늙을수록 추해 지는 가?

 

 

금궤도

계림에 대한 금궤도라는 조선시대 그림이 전해 온다.
 

 

 

조선시대 조속(趙涑ㆍ1595~1668)이라는 화가가 그린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 탄생 설화를 소재로 그린 '금궤도(金櫃圖)'라는 그림이다.
'계림고사도(鷄林故事圖)'라고도 하는 조속의 그림 윗부분에는 조선
인조(1623~1649)의 어제(御製)가 포함된 글이 있는데, 글에 따르면
이 그림은 인조의 명에 의해 그린 것으로 조선시대 사대부가 그린
보기 드문 채색화이기도 하다.
국립경주박물관에 가서 한번 이 금궤도를 눈여겨 볼만하다.

 


사적 제19호 경주 계림
*문화재청 자료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始林)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鷄林)이라 하였다.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하여, 날이 밝은 후 신하를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다.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알지는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계림은 신성스러운 곳으로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碑)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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