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문화재 단상

원원사지 삼층석탑, 그 적막의 고독 속에서~

migiroo 2013. 5. 12. 18:44

>2013.5.5
경주 원원사지 (慶州遠願寺址) 삼층석탑, 그 적막의 고독 속에서~
보물 제1429호

 

 

 

 

꽃이 피었는가 했는데 어느 사이 4월이 가고 5월이다.
계절은 아직 봄이 분명한데 기온은 한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빗은 기상 이변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바로 자연을 경시한 인간들의 오만에 의한 결과물이다.
앞으로 어떠한 기상이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두렵고 불안하다.


오늘은 ‘어린이 날‘.....
지금 내 곁엔 데리고 다닐 아이들이 없으니 외로움이 더욱 깊다.
카메라 매고 경주의 원원사지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려 봉서산 자락 원원사까지 약 3km를 걸어서 올라간다.
오래전 기억 때와는 달리 길은 정겨운 흙길에서 포장길로 변해 있다.
원원골 올라가는 길은 계곡을 막아 댐을 쌓고 있는 공사가 한창이다.
딱딱한 포장길이 5월의 햇살로 달아올라 체감 온도는 더욱 뜨겁다.

 


 
점심때가 지났는데 먹을 것이 없다.
길가 주변을 살펴봐도 온통 숯불 갈비집 뿐이다.
하는 수 없이 점심을 거르기로 한다.

 

 

 

원원사에서 내 걸은 초롱 등이 길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원원사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금강역사 석상이 근육질을 자랑하며
길 양편에 서 있다. 석상이 조금은 조잡해 보인다.
석공이 한 땀 한 땀 정으로 쪼아 만든 작품이 아니고‘ 
기계로 쓱쓱 밀어 만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정성과 혼신의 정신이 깃들지 않는 작품이다.
절 마당에도 사천왕 석상이 놓여 있다.


 

 

 

 

원원사는 일단 나중에 둘러보기로 하고 절 뒤 편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원원사 절터로 향한다.
절터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마치 천년 과거 시간 속으로 오르는 미지의 계단처럼 무겁게 놓여 있다.
 

 

 

●원원사지

 

 

 

 

통일신라시대의 호국 사찰이었던 원원사지....
이제 천년이 넘는 시간의 찌꺼기들이 덕지덕지 묻은 탑은 키 큰 소나무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삼층의 쌍 탑은 금당 터 앞에 동, 서로 나뉘어 서 있다.
그리고 양 탑 가운데에는 화사석이 유실된 석등이 간주석 과 지붕돌만이 남아 자리하고 있다.

 

 

 

 

원원사지 쌍탑은 이미 오래전에 넘어져 파괴된 것을 일제 강점기 중
노세 우시조(能勢丑三)라는 일인에 의해 발굴 되고, 1933년도에 복원 됐다.
탑은 여기저기 깨지고 떨어져 나가 상처투성인 체 절터에 남아이다.
그러나 탑은 여전히 그 늠름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국내의 석탑 중 보기 드물게 고부조(高浮彫)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
원원사지 삼층석탑이 그동안 문화재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2005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뒤 늦게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탑 상층 면석에 평상복을 입은 십이지상이 새겨진 것도 특이 한데
1층 탑신 4면에는 갑옷을 입은 역동적인 사천왕상이 그야말로 지금 방금
석탑에서 튀어 나온듯한 고고부조로 새겨져 있는 것은 이 탑의 백미이다.
양각이 너무 깊어 조각의 신체 부위가 떨어져 나간 것도 있으니 너무 깊은
양각도 오랜 세월을 견디기엔 좋지 않은 듯 싶다. 

 

 

 

 

이곳도 여느 절터와 다름없이 금당 뒤쪽과 앞면에 얌체 같은 무덤이 버젓이
앉아 있는데 당국에서는 탑을 보물로 지정까지 했으면서도 이런 무덤하나
정리하지 못했다니 관련 당국도, 무덤 주인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금당 터가 명당자리라 여겨 조상 묘를 쓰면 자손들이 잘 되는 걸까?
정말 그런지 궁금하다.
그러나 부처 밀어내고 제 무덤을 썼는데 어찌 후손들이 잘 되길 바라는가.

 

 

 

 

사진 술이 형편없어 탑을 역동적으로 잘 찍지 못했다.
오후의 빛이 탑의 조각상을 비추면 명암이 뚜렷하게 나타 날 텐데 아직은
나의 사진 기술로는 아쉽게도 그 순간을 잡아 내지 못하고 있다.


좋은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고 사진사의 예술적 감각에서 나온다.
그리고 카메라의 조작술에서 우수한 사진이 나온다고 보는데 난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니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고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는 것이나 휴대폰으로 찍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천만다행, 원원사지 석탑 주변 소나무는 아직도 건실하다.
전국 곳곳의 소나무들이 소나무재선충에 걸려 빠르게 고사 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나마도 원원사지 소나무는 비교적 건강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수령이 수백 년에서 수십 년 정도 되는 소나무들이 절터를 튼튼히 지키고
있으니 석탑도 절터도 오랫동안 온전하리라 본다.
그리고 늙은 소나무의 귀갑무늬 목피가 장엄하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지금의 '원원사'

 

 

 

절터를 나온다.
적막을 벗어나 새로운 절로 발길을 돌린다.
원원사지 앞에 근대에 새로 지은 절이 바로 ‘원원사’ 이다.
   

절간은 큰 법당 한 체와 작은 절집 두 체 그리고 범종각 하나 가 전부다.
큰 법당은 특이하게도 ‘천불보전’ 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다.
큰 법당 정면 5칸 창호의 화려한 문양이 예사롭지가 않다.

 

 

 

 

여섯 꽃잎 꽃살문이 대칭적으로 배열하였는데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질서정연한 체계를 이루고 있고, 적, 청, 흑, 백 사색으로 채색된 문양이
법당의 품위를 한층 더 깊게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각이라 고찰에서 느끼는 고졸한 맛은 없지만
그래도 천불을 모신 큰 법당다운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범종각에 걸린 목어 또한 진품인 듯 몸은 물고기인데 머리는 용이다.
바로 어룡(魚龍)이다. 여의주를 문 어룡의 부릅뜬 눈이 진리의 깨침을
외치고 있는 듯하다

 
저녁나절 원원사를 나온다.
올라 올 때는 그래도 땀을 흘렸는데....
내려 갈 때는 금방이다.


큰길가 슈퍼에 들려 우선 음료수 한 캔과
빵을 사서 급하게 허기를 채운다.
단 한 끼를 굶고 배가 고프다고 엄살이다.
모두가 심리적 작용이다.


>미지로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문화재청 자료
  보물  제1429호 (통일신라 시대)

 

 

 

 

동·서 쌍탑의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사적 제46호 경주 원원사지 안에 있다. 원원사(遠願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교(密敎)를 계승한 안혜(安惠)ㆍ낭융(朗融) 등이 김유신ㆍ김의원ㆍ김술종 등과 뜻을 모아 호국의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동ㆍ서 삼층석탑(높이 약 7m)은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조선건축사론 중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시대 일반형 삼층석탑론(건축잡지 1933.11월호. 藤島亥治郞)에 경주고적보존회에서 복원하였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으로 조성된 2중 기단의 삼층석탑이며, 하층기단 면석과 갑석 및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기단 갑석은 4매로 구성되어 있다.


상·하층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탱주와 우주가 있고, 하층갑석의 상면에는 2단의 상층 기단 괴임이 있으며, 상층갑석 4면의 각 기둥 사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십이지상을 조각하였는데 이들의 머리는 짐승이나, 몸체는 평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며 옷자락이 하늘로 날리고 있는 형상이다.


1층 탑신석 이상 3층 옥개석까지는 모두 1매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각 층 옥개석의 하면에는 5단의 옥개받침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 괴임이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석과 앙화석이 남아 있다.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표현형식, 옥개석의 돌다듬기 수법, 기단부와 탑신부에 구현된 양식, 석재의 조립방법 등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하층기단에서 십이지상을 최초로 배치한 점 등 석탑의 조각기술, 구조적 특징, 표현양식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미술사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석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원사(遠願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교(密敎)를 계승한 안혜(安惠)ㆍ낭융(朗融) 등이 김유신ㆍ김의원ㆍ김술종 등과 뜻을 모아 경주에서 동남쪽으로 20여리 떨어진 이곳에 호국의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하며 사천왕사ㆍ금광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의 중심도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ㆍ서 삼층석탑(높이 약 7m)은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조선건축사론 중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시대 일반형 삼층석탑론(건축잡지 1933.11월호. 藤島亥治郞)〕에 경주고적보존회에서 복원하였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으로 조성된 2중 기단의 삼층석탑이며, 하층기단 면석과 갑석 및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기단 갑석은 4매로 구성되어 있다.


상·하층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탱주와 우주가 있고, 하층갑석의 상면에는 2단의 상층 기단 괴임이 있으며, 상층갑석 4면의 각 기둥 사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십이지상을 조각하였는데 이들의 머리는 짐승이나, 몸체는 평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며 옷자락이 하늘로 날리고 있는 형상이다.


1층 탑신석 이상 3층 옥개석까지는 모두 1매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각 층 옥개석의 하면에는 5단의 옥개받침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 괴임이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석과 앙화석이 남아 있다.


본 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표현형식, 옥개석의 돌다듬기 수법, 기단부와 탑신부에 구현된 양식, 석재의 조립방법 등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또한 이전 시기의 석탑에 조식되던 인왕상을 대신하여 사천왕상이 나타나 9세기 석탑에서 중심을 이루는 장엄의 선례로서 주목되고 있다. 아울러 하층기단에서 십이지상을 최초로 배치한 점 등 석탑의 조각기술, 구조적 특징, 표현양식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미술사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석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주 원원사 쌍탑 '희귀사진·도면' 공개


재일 한국인 가종수 박사, 1930년대 원원사지 발굴·복원 과정 담은 10여점 소개
재일 한국인이 보물 1429호인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遠源寺) 터에 나란히 서 있는 신라시대 쌍탑인 삼층석탑의 1930년대 발굴조사와 복원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희귀 사진과 도면을 공개해 주목받고 있다.


재일 한국인 연구자인 가종수(賈鍾壽) 일본 슈지쓰(就實)대학 대학원교수는 최근 발간된 계간 '한국의 고고학(www.gogohak.co.kr)' 여름호를 통해 1930년대에 일본인 건축학도 노세 우시조(能勢丑三)가 당시에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로 있던 이 쌍탑을 직접 발굴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탑을 복원하는 과정을 담은 사진과 도면 10여 장을 발굴해 소개했다.


이들 자료는 노세 자신이 발굴 및 복원작업을 하면서 유리건판에 직접 촬영하거나 작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특히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포함해 그가 남긴 한국 문화재 관련 사진과 도면 2천500여 장은 현재 나라시에 소재한 사진회사인 아스카엔(飛鳥苑)이란 곳에 소장돼 있다고 가 교수는 말했다. 노세는 1927년 이후 1931년에 이르기까지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사재까지 털어 원원사터 상탑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그 성과를 토대로 1931년에는 이를 복원했다. 이런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졌지만, 발굴조사와 복원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는 없었다. 가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관련 사진은 원원사 석탑이 발굴되고 복원되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사진 중에는 사천왕상을 발굴해 들어올리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노세 자신이 작성한 이 사찰 평면도와 추정 복원도, 그리고 동탑 모형도도 있다. 나아가 발굴조사 과정에서 수습한 각종 기와류 사진과 동탑을 조사 중인 그 자신의 사진, 그리고 석탑 터를 실측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 석탑터의 시굴 조사 구덩이 사진, 복원을 위해 발굴한 각종 석탑 부재를 모아 놓은 사진, 그리고 석탑을 복원하고자 기단부의 십이지신상을 가조립한 장면을 담은 사진도 있다.


이외에도 곰방대를 입에 물고 상투를 튼 중년 조선인이 측량용 자를 잡은 포즈로 등장하는 경주 황복사터 발굴조사 사진과 경주 헌덕왕릉 십이지신상을 조사 중인 장면 등을 담은 노세의 다른 사진자료도 함께 공개됐다.


세운 시기가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는 원원사 석탑은 노세가 복원한 모습 그대로 현장에 서 있다. 평면 방형인 삼층석탑 기단부의 각 면에는 십이지 동물을 새겼으며 탑신 1층에는 네 방위별로 불법(佛法)을 수호한다는 사천왕상을 돋을새김했다.
곽성일기자 kwak@kyongbuk.co.kr

 

 

 

 

 

 

기타 원원사 전각 들과 원원사지 삼층석탑 남어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