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5
경주 원원사지 (慶州遠願寺址) 삼층석탑, 그 적막의 고독 속에서~
보물 제1429호
꽃이 피었는가 했는데 어느 사이 4월이 가고 5월이다.
계절은 아직 봄이 분명한데 기온은 한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빗은 기상 이변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바로 자연을 경시한 인간들의 오만에 의한 결과물이다.
앞으로 어떠한 기상이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두렵고 불안하다.
오늘은 ‘어린이 날‘.....
지금 내 곁엔 데리고 다닐 아이들이 없으니 외로움이 더욱 깊다.
카메라 매고 경주의 원원사지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려 봉서산 자락 원원사까지 약 3km를 걸어서 올라간다.
오래전 기억 때와는 달리 길은 정겨운 흙길에서 포장길로 변해 있다.
원원골 올라가는 길은 계곡을 막아 댐을 쌓고 있는 공사가 한창이다.
딱딱한 포장길이 5월의 햇살로 달아올라 체감 온도는 더욱 뜨겁다.
점심때가 지났는데 먹을 것이 없다.
길가 주변을 살펴봐도 온통 숯불 갈비집 뿐이다.
하는 수 없이 점심을 거르기로 한다.
원원사에서 내 걸은 초롱 등이 길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원원사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금강역사 석상이 근육질을 자랑하며
길 양편에 서 있다. 석상이 조금은 조잡해 보인다.
석공이 한 땀 한 땀 정으로 쪼아 만든 작품이 아니고‘
기계로 쓱쓱 밀어 만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정성과 혼신의 정신이 깃들지 않는 작품이다.
절 마당에도 사천왕 석상이 놓여 있다.
원원사는 일단 나중에 둘러보기로 하고 절 뒤 편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원원사 절터로 향한다.
절터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마치 천년 과거 시간 속으로 오르는 미지의 계단처럼 무겁게 놓여 있다.
●원원사지
통일신라시대의 호국 사찰이었던 원원사지....
이제 천년이 넘는 시간의 찌꺼기들이 덕지덕지 묻은 탑은 키 큰 소나무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삼층의 쌍 탑은 금당 터 앞에 동, 서로 나뉘어 서 있다.
그리고 양 탑 가운데에는 화사석이 유실된 석등이 간주석 과 지붕돌만이 남아 자리하고 있다.
원원사지 쌍탑은 이미 오래전에 넘어져 파괴된 것을 일제 강점기 중
노세 우시조(能勢丑三)라는 일인에 의해 발굴 되고, 1933년도에 복원 됐다.
탑은 여기저기 깨지고 떨어져 나가 상처투성인 체 절터에 남아이다.
그러나 탑은 여전히 그 늠름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국내의 석탑 중 보기 드물게 고부조(高浮彫)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
원원사지 삼층석탑이 그동안 문화재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2005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뒤 늦게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탑 상층 면석에 평상복을 입은 십이지상이 새겨진 것도 특이 한데
1층 탑신 4면에는 갑옷을 입은 역동적인 사천왕상이 그야말로 지금 방금
석탑에서 튀어 나온듯한 고고부조로 새겨져 있는 것은 이 탑의 백미이다.
양각이 너무 깊어 조각의 신체 부위가 떨어져 나간 것도 있으니 너무 깊은
양각도 오랜 세월을 견디기엔 좋지 않은 듯 싶다.
이곳도 여느 절터와 다름없이 금당 뒤쪽과 앞면에 얌체 같은 무덤이 버젓이
앉아 있는데 당국에서는 탑을 보물로 지정까지 했으면서도 이런 무덤하나
정리하지 못했다니 관련 당국도, 무덤 주인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금당 터가 명당자리라 여겨 조상 묘를 쓰면 자손들이 잘 되는 걸까?
정말 그런지 궁금하다.
그러나 부처 밀어내고 제 무덤을 썼는데 어찌 후손들이 잘 되길 바라는가.
사진 술이 형편없어 탑을 역동적으로 잘 찍지 못했다.
오후의 빛이 탑의 조각상을 비추면 명암이 뚜렷하게 나타 날 텐데 아직은
나의 사진 기술로는 아쉽게도 그 순간을 잡아 내지 못하고 있다.
좋은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고 사진사의 예술적 감각에서 나온다.
그리고 카메라의 조작술에서 우수한 사진이 나온다고 보는데 난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니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고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는 것이나 휴대폰으로 찍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천만다행, 원원사지 석탑 주변 소나무는 아직도 건실하다.
전국 곳곳의 소나무들이 소나무재선충에 걸려 빠르게 고사 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나마도 원원사지 소나무는 비교적 건강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수령이 수백 년에서 수십 년 정도 되는 소나무들이 절터를 튼튼히 지키고
있으니 석탑도 절터도 오랫동안 온전하리라 본다.
그리고 늙은 소나무의 귀갑무늬 목피가 장엄하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지금의 '원원사'
절터를 나온다.
적막을 벗어나 새로운 절로 발길을 돌린다.
원원사지 앞에 근대에 새로 지은 절이 바로 ‘원원사’ 이다.
절간은 큰 법당 한 체와 작은 절집 두 체 그리고 범종각 하나 가 전부다.
큰 법당은 특이하게도 ‘천불보전’ 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다.
큰 법당 정면 5칸 창호의 화려한 문양이 예사롭지가 않다.
여섯 꽃잎 꽃살문이 대칭적으로 배열하였는데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질서정연한 체계를 이루고 있고, 적, 청, 흑, 백 사색으로 채색된 문양이
법당의 품위를 한층 더 깊게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각이라 고찰에서 느끼는 고졸한 맛은 없지만
그래도 천불을 모신 큰 법당다운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범종각에 걸린 목어 또한 진품인 듯 몸은 물고기인데 머리는 용이다.
바로 어룡(魚龍)이다. 여의주를 문 어룡의 부릅뜬 눈이 진리의 깨침을
외치고 있는 듯하다
저녁나절 원원사를 나온다.
올라 올 때는 그래도 땀을 흘렸는데....
내려 갈 때는 금방이다.
큰길가 슈퍼에 들려 우선 음료수 한 캔과
빵을 사서 급하게 허기를 채운다.
단 한 끼를 굶고 배가 고프다고 엄살이다.
모두가 심리적 작용이다.
>미지로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문화재청 자료
동·서 쌍탑의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사적 제46호 경주 원원사지 안에 있다. 원원사(遠願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교(密敎)를 계승한 안혜(安惠)ㆍ낭융(朗融) 등이 김유신ㆍ김의원ㆍ김술종 등과 뜻을 모아 호국의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기타 원원사 전각 들과 원원사지 삼층석탑 남어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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