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여행~

승부역 가는 길, 그 오지로 가는 여정~

migiroo 2013. 5. 28. 01:01

>2013.5.20

 

 

 


●기차는 떠나네~


어제는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온통 희뿌연 안개 속이다.
실로 오랜만에 기차여행 길에 오른다.
동해남부선을 타다 중앙선을 거쳐 다시 영동선 석포역까지 갔다가
다시 산간 오지 승부역까지 걷기로 한 여행이다.

 

 

▲자료 사진

 

기차는 무궁화호 완행열차, 그러나 옛날에 탔던 그런 완행열차가 아니다.
지금은 어쩌다가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가 KTX 새마을에까지 밀려나
산간 오지나 다니는 소외된 힘없는 완행열차 신세가 되고 만 열차.

 
그러나 완행이라고 해서 옛날 완행열차 그 시대로 치자면 급행열차나 다름없다.
역마다 다 정차하는 것이 아니고 몇 개의 역을 그냥 지나져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차하지 않은 역은 다음 열차가 서고, 또 그 열차가 지나친 역은 또
그 다음 열차가 정차하는 교호 시스템으로 운행하는 것이 요즈음 완행열차다. 
옛날 완행열차는 지정된 좌석이 없다. 좌석도 나무 의자였다.
그리고 김밥이며 잡다한 먹을거리를 들고 다니며 열차 안에서 팔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행열차라 해도 지정된 좌석이 있고 의자도 쿠션 좋은 안락한
의자이다. 옛날 완행열차처럼 객실을 왔다 갔다 하며 먹 거리도 팔지 않는다.
다만 먹을거리를 사려면 식당 칸으로 간다거나 자판기에서 빼 먹어야 한다.

 
옛날 완행열차 향수에 젖어 기차여행을 한다면 실망하게 된다.
철도청에서도 이런 착안을 하여 옛날 추억을 찾아 기차여행을 할 수 있도록
열차 객실을 5,6,70년대 시대로 꾸민다면 관광객을 많이 유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드는데 어떨까 모르겠다.


 

●시발역은 북영천역이다.


대구에서 강릉까지 환승 없이 가는 열차가 북영천역에서 갈라진다.
부산, 울산, 경주에서 오는 사람은 곧바로 강릉행 영동선을 탈 수 없다.
영천, 영주 또는 봉화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영천역이 오늘 여행의 시발점(출발점)이 됐다.
북영천역에는 역무원도 없고 역사도 없다. 차표를 파는 곳도 없다.
무인 작은 대합실만 덩그러니 철길 옆에 있을 뿐이다.
그저 손님이 알아서 타고 내리면 된다. 기차표는 기차안에서 사면되고...

 


 

아침 6시 54분 발, 무궁화호. 목적지인 석포역까지 약 3시간이 소요되고,
열차는 강릉 방향 석포역까지 올라가면서 34개의 크고 작은 역을 통과한다.
열차는 북으로 올라 갈수록 그야말로 첩첩산중 계곡을 따라 굽이쳐 올라간다.
옛날 석탄으로 가던 기차의 느림 맛은 느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완행열차 기분을 만끽 한다.
현대인들은 빠름에 길들여져 있다.
좀 더 빨리, 더 빨리 가기를 좋아 한다.
빨리 가면 목적지만 있을 뿐, 가고 오는 과정을 상실해버린다.
여행은 목적지 보다 가고 오는 여정이 더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오늘 나의 여행은 여정과 목적지가 아니라 나를 찾아 가는
미지의 여행이 될 것이다. 

 


●석포역

 

 

 


드디어 승부역을 지나 석포역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간이역인줄만 알았던 석포역은 역세 주변에 주택들과
크고 작은 공장 같은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역 앞으로는 낙동강 최상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왠지 물이 혼탁해 보였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은 강원도 태백시 사이의 경계지점에 위치해 있다.
역 주변의 공장들이 시멘트 공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딱 둘 밖에 없다는 아연 공장으로 중금속 환경오염의 대명사다.
울산에 있는 고려아연과 영풍석포제련소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아연공장은 우리 경제에 꼭 필요한 공장이니 필요악인 셈이다.

 

                                                                            ▲영풍석포제련소 전경


이곳 영풍석포제련소는 아연원료를 수입, 가공 제련하는 공장이다.
한 때는 이곳도 환경단체와 주민들 그리고 공장 측과의 갈등으로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등 우연곡절을 다 겪은 공장이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의 공장은 시설이 잘 되어 옛날처럼 환경오염은 같은 것은
상당히 개선되어 걱정을 크게 덜게 됐다는 소식이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석포면 주민 역시 이 공장에서 일터를 가지고 있고, 과거 광부 출신 가족들도
상당수가 이곳 제련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 하고 있다고 하니 환경문제만
따질 일도 아닌 듯싶다.
아무튼 공장 옆의 낙동강 물을 실제로 대하고 보니 물이 많이 혼탁해 있어
분명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 들어 개운치가 않았다.


빨리 공장 지대를 벗어나고 싶어져 발걸음을 재촉한다.
공장지대를 벗어나도 한 없이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진다.
차량 통행은 잦지 않았지만 승부역 가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이었다.
트레킹 코스로 별도로 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포장길이 지루 했지만 산속으로 들어 갈수록 길은 점점 좁아져
임도로 변했고 다행히 차량통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석포역에서 - 승부역으로 가는 길~

 

석포역에서 승부역 가는 길은 전국에 꽤 많아 알려진 트레킹 코스이다.
요즘 그 흔한 데크로드를 설치한 한 곳도 없는 그야말로 오지의 길이다.
그저 길일뿐이다. 그 길을 걷는 기분은 두려움과 신비함이 교차 된다.
길을 걷다 보면 가끔가다 산간벽지 외롭게 있는 옛집 몇 체가 보일 뿐이다.
말을 나눌 산간 사람들도 별로 만나지 못한다.
오로지 함께 간 사람들이나, 홀로 걷는 다면 자기 자신과의 말 뿐이다.
승부역까지 길을 걷는 내내 낙동강 줄기를 따라 걷지만 기막힐 정도의 절경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왠지 승부역 가는 길이 좋다.

 

                                                                          ▲길에서 만난 외딴 집들...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는 약 13km, 소요시간 5시간 정도이다.
길을 걷는 동안 내내 낙동강이 함께 한다.
강물 흐르는 소리가 경쾌하고 산간을 타고 내려오는 훈풍이 시원하다.
강물은 걷는 사람의 왼편에 있다가 또 걷다보면 오른편에서 흘러간다.
5월의 연초록 신록이 내 뿜는 왕성한 숲 향이 정신을 맑게 하고
산간 오지의 낯설음이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바뀐다.


 

 

                                                             ▲길 가에 서 있는 예쁜 이정표와 통나무 의자..

 
길은 혼자 걸어가는 것도 좋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걷는 것도 좋다.
단 둘 연인끼리 손잡고 걷는 것도 또한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홀로 사색하며 걷는 길이다.
외로울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걸림과 구속이 없는 무애(無碍)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지의 승부역~

 

 

                                                                        ▲승부역


좀 늦어 6시간 여 만에 승부역에 도착했다.
승부역도 역시 낙동강을 앞에 두고 있다.
그야 말로 작은 간이역이다.
석포역과는 달리 인근에 마을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 흔한 모텔도 없고, 여인숙 같은 잠잘 곳도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역 앞 강 건너편에 천막 식당이 두어 동 있을 뿐이다.

 

 

                                ▲승부역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영동선 환상열차

 

그러나 코레일에서 순전한 관광목적의 승부역 가는 환상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대구에서 그리고 영주에서도 오는 빨간 환상열차가 있다.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간이역에 들려 사진도 찍고 도심을 탈출 오지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즐기며 열차 여행을 한다.

                                                                       ▲승부역을 떠나는 환상열차

 

그러나 요란하고(?) 화려한 시설로 꾸민 환상열차 보다는 6.70년대의
불편한 시설로 꾸민 추억의 기차이라면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즐거운 기차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 든다.

 


●승부역에서 기다림을 배우다.


승부역에서 기다림과 느림의 지루함을 배운다.
돌아가는 열차를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타고 돌아가야 할 열차는 늦은 저녁 7시 40분에 있다했다.
기다리면서 둘러볼 곳도 없다.
그저 작은 승부역이 친구이자 말벗이다.

 

 

                                         ▲승부역 우체통

 

역내에 빨간 우체통 하나가 있다.

기다리면서 편지를 써서 넣으라는 것인지....

아무리 봐도 편지는 들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냥 장식용인가?

우체통 안에는 많은 사연이 있을 듯 하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대합실이다.
아니 대합실이라기 보단 작은 방 이라고 해야 맞다.
의자에 예쁜 방석이 깔려 있는 전국에서 가장 작은 대합실이다.
딱 6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승부역 대합실.....

 


문제는 해가 떨어지자 밖에서 열차를 기다리자니 춥다는 것이다.
5월인데도 좀 추운데 하물며 겨울철에는 어찌 할까....
여러 손님이 역내 홈에서 열차를 기다린다.
미안 했던지 역장이 대합실 주위에 와서 쌀쌀하지요 한다.

 

 

 


역장에게 대합실을 조금 넓힐 수 없냐고 물으니 코레일 본사에
아무리 대합실을 넓혀 달라고 요청해도 대답이 없단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이 승부역 가는 길의 매력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오지에 와서 조차 육신의 편안함과 안락함에 집착하다니....


시장기가 생겨 역 건너편 천막 식당에 가서 잔치국수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사발을 먹었다. 왜 잔치 국수인가?
오직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끝났다. 꼬박 2시간 반을 기다림 끝에 열차가 왔다.
그동안 두 차례의 환상열차가 승부역에서 쉬었다 갔다.
그 환상열차를 탈고 갈까 하다가 포기하고 올 때 탔던 완행열차를 탔다.

 

 ▲자료 사진
 
열차가 어둠을 뚫고 달린다.
레일 위를 지나는 철커덕 철커덕 열차바퀴 소리도 훌륭한
음악이 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는다.
조수미의‘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귀 속으로 흘러온다.
애틋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울고 싶도록 그립기도 한 곡조다.
비몽사몽 잠든 상태 열차가 북영천역에 도착했다고 알려온다.


즐거운 기차여행 이었다.
오늘 하루도 나는 건강하게 존재함에 감사한다.
그리고 늘 가장 아래에서 온갖 고행을 감내하며
먼 길을 걸어 준 두 다리에게 감사한다.

 

 

 

배경음악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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