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여행~

부산 갈멧길 가덕도 둘레길, 그 외로운 길을 홀로 걷다.

migiroo 2013. 6. 1. 23:05

>2013.5.24


부산 갈멧길 가덕도 둘레길,
               그 외로운 길을 홀로 걷다.

 

 

 

 


길의 여정(1)

 
기억력이 점차 떨어진다.
열정도, 사랑도, 의욕도 함께 무너져 간다.
이래서 늙음은 서럽고 슬픈 일이든가.
그래서 혼자 걷는다.

 

이른 아침 또 길을 나선다.


울산에서 버스 타고 1시간, 부산에서 전철타고 1시간 그리고 또 버스타고 1시간을
가야 비로소 부산의 서편 끝 외로운 가덕도에 도착 할 수 있다.
차를 가지고 가려다가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차량을 가지고 다니면 여행의 진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덕도는 행정구역상 부산 강서구에 속해 이제는 부산 신항만이 들어섰으며
부산과는 가덕대교로 거제도와는 거가대교로 연결 되어 있다.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섬 중심부를 관통, 거제도로 연결된 우리나라 최장의 사장교와
해저 터널인 거가대교가 놓임으로서 이제는 가덕도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다.

 

 

 

 

↑부산 신항만과 가덕도 간의 가덕대교의 위용이다.이 다리를 건너면 가덕도 중심부를 관통 거가대교로 연결된다.

현대 건축물의 총아 콘크리트, 시멘트가 생기고 나서부터 세상은 온통 회색빛 시멘트가 점령하고 있다.

현대 사람들은 외부(자연)와 단절된 시멘트 콘크리트 속에 갇혀 살고 있다.

머지 않아 숲이 사라지고 콘크리트만 남을 지도 모른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흙을 멀리하는 인간은 흙으로 돌아 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는 이 다리도 수명이 다할 날이 올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사장교-해저터널 7.2km)


더욱이나 가덕도는 신국제공항이 들어설 곳으로 선정되어 다른 지방과 치열한 유치 경쟁 을 벌리고 있는 중이다.

만약 공항이 들어서게 된다면 이미 한쪽 생태계가 부산 신항으로 인해 망가졌는데(?) 공항마저 들어서게 된다면

가덕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생태계는 완전히 거덜이 나고 말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어찌하랴, 경제성이 우선이고 이익 집단화한 정치권의 입김이 자연환경을
앞질러 있으니 이제 가덕도의 운명도 멀지 않았음이다.
 

 

 

 

가덕도는 나에게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섬이다.
내가 25년 동안 해군에 몸담고 있을 때 군함을 타고 수도 없이 진해만 초입에
위치한 가덕도 곁을 지나 모항으로 입항하거나 출항하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덕도에 상륙하여 간첩 수색작전도 펼친 적이 있었고, 작은 군함을 타고
포구에 정박하여 며칠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때의 가덕도는 그야말로 남해의 외로운 섬이었다.
이제는 그런 가덕도를 단숨에 갈 수 있게 됐지만 어마어마한 인위적 시설이
들어서 원래의 천연자연생태로서의 가덕도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게 됐다.

 

 

 


↑아름다운 가덕도 남단이다.


거북이 목처럼 잘룩한 곳이 대항새바지에서 대항선착장으로 넘어 가는 길이다.
아마도 이 대항새바지 남단 방향이 동남권 신국제공항 입지로 거론 되는 모양이다.
그땐 이 아름다운 해안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진출처 부산시)

 

 

 

↑가덕도 동남권 신국제공항 입지, 바로 이 곳이다.

 

해안을 깎아 내리고 바다를 매립하여 새우는 공항이다.

그러나 공항이 선다면  동남권 부산, 울산, 경남 사람들은 쉽게 공항에 접근 할 수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멀리 인천공항까지 갈 일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먼저냐, 편리성과 경제성이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한쪽은 포기 해야한다. 선택은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

둘다 소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둘다 잃을 수도 없다. 오직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해안 절경이 사라짐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공항 또한 필요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다. (사진출처 부산시)


 

 

 

경제발전은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지만 자연이 주는 생태적 혜택을 잃게 됨으로서

종래는 지나친 문명(경제)의 발달이 인류 파국이라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길의 여정(2)


아침공기가 의외로 서늘하다. 그러나 하늘은 맑다.
꼭두새벽 졸리는 눈으로 간소한 새벽밥을 먹고 페트병에 물을 담고
나의 국보 1호 고가(?)의 카메라를 챙겨 배낭에 넣고 새벽길을 나선다.
오늘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 그야말로 미지로(未知路) 떠나는 여행이다.
5월24일, 오늘 일출 시간은 새벽 5시 17분, 버스를 타니 해는 벌써
대지를 떠나 뜨거운 열기를 토해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아침 기온을 보니 한 낮의 기온은 매우 더울 듯 싶었다.


울산에서 부산가는 리무진 버스는 제한 속력 80km를 넘어 기세좋게
한산한 이른 아침 길을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평소 보다는 조금 빠른 아침 7시, 노포역에 도착 전철로 갈아탔다. 
부산 1호선 전철 시발역 노포역에서 종점 신평역 바로 직전 하단역에서
내려 다시 미리 알아둔 가덕도 선창가는 58번 시내버스를 탄다.


하단역을 출발한 시내버스는 1시간 여 동안을 부산 신항만 산업단지를
뺑뺑 돌고 돌면서 승객을 모두 내려놓고는 달랑 나 혼자 만를 태우고
오전 9시 반, 가덕도 선창마을에 나를 내려놓는다.


가덕도 둘레길 출발점인 선창마을에 서니 길 떠날 때 설렜던 가슴은 온데간데없고

수많은 해상크레인과 거대한 골리앗 같은 가덕대교 교각이 이방인인 나를 압도하며

바다를 가로 질러 괴물처럼 누워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들이 살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구조물이니 무조건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가덕대교의 거대한 교각의 분열

 


●눌차도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

 

부산 갈멧길은 모두 21개 코스로 그 중 대부분이 절경의 해안길로 조성되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둘레길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곳이 바로 부산 갈멧길 이정표 같다.
이정표의 모양도 예쁘고 길을 잘 찾도록 곳곳에 설치해 놓아 초행자도 찾기 쉽다.
그런데도 처음 찾는 이방인들에겐 길을 잘 못 찾을 수도 있다.

 


 

                
↑가덕도 갈멧길이 시작되고 돌아오는 선창의 모습이다.


그 아름답던 해안을 매립하여 부산 신항만이 들어섰다.
그리고 가덕도의 심장부(중심부)를 관통하여 거제도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섬을 동서로 갈라 놓았다.


갈멧길 출발지점이 어수선 하다.
주변 정리도 안 되어 있고 가덕대교의 거대한 교각에 압도당해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다.


 

 

 

↑가덕도 갈멧길 첫 번째 안내 이정표


그런데 의외에서 위로를 받았다.
바로 갈맷길을 알리는 첫 이정표가 참 예뻤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로 시작된 갈멧길 안내 이정표...


가덕도 둘레길은 비교적 찾아 가기 쉽게 조성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트레킹은 시작부터 시행착오를 일으켰다.
가덕도 본도 북쪽에 있는 눌차도를 한 바퀴 돌고 본도로 가는 코스가 있는데
이 길을 다 돌면 전체 시간이 너무 걸려 자칫 돌아갈 때 어려움을 겪게된다.
날이 저물어 버스 타기가 곤란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절기에는 해가 길어 시간상 가덕도 일주 트레킹에 별 문제가 없지만
해가 짧은 동절기는 아침 일찍부터 본 코스만 부지런히 걸어야
어두워지기 전에 트레킹을 끝낼 수 있다.
여유롭게 하룻밤 민박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코스이겠지만.....

 

 

 


↑선창에서 눌차도로 가는 눌차다리(천가교)이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냥 철교라 부른다.

눌차도를 반쯤 돌고 나서야 앗차, 본 코스가 아님을 인지하고 부지런히
눌차도를 빠져나와 가덕 본도와 이어진 동선방조제를 탄다.
잘못 하여 1시간 반 정도를 허비하고 말았다.
눌차다리(천가교) 옆에 조개더미가 끈에 꿰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게 뭐하는 것일까?
마침 지나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굴 종자를 기르는 굴종패라 하신다.

 


굴종패...?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굴종패라니....

글자 한자, 한자를 풀어 본다. 유식한척 말이다.

굴은 먹는 굴을 말하는 것일게고,

종(種)은 씨종이니 종자라는 뜻일 터이고,

패(貝)는 조개패이니 '굴종패'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눌차도 가덕대교 교각 아래의 조개껍질 더미(굴종패)


다시 말해서 굴종패란 것은 어린 굴을 말하는 것으로서 어린 종자 굴을 조개껍질에 붙여

키운 다음 통영(충무)의 대규모 굴 양식장으로 옮겨 큰 어미 굴로 양식한다.
그러니깐 가덕도는 우리나라 유일의 굴종패 생산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부산 신항이 가덕도에 들어선 마당에 또 다시 국제공항이 들어선 다면

가덕도의 굴종패 생산도 막을 내리고 말 것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눌차도 외놀마을을 지나니 골목길에 예쁜 장미들이 손짓을 하며 반겨 준다.
장미는 뭐니 뭐니 해도 들장미(넝쿨장미)가 최고이다.
온실에서 키운 각양각생의 개량된 장미는 그저 화려할 뿐이지만, 작은 꽃의
넝클장미는 순박한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여 더 정감이 간다.

 

 


↑외놀마을 노거수, 수령이 500년 정도 되는 팽나무가 아닌가 싶다.
노거수 앞에 서면 왠지 두렵다. 그리고 경외심이 든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마을 노거수에 고사를 지내고 제를 지낸 것이 아닐까.
눌차도의 거목은 그 수형이 옆으로 누어져 있어 더 멋진 것 같다.

 

 

 

↑외놀마을 길을 지나 동선 방조제 쪽으로 길을 잡는다.


갑자기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꿈일 뿐, 나에게는 결코 이루어 질수 없는 꿈이다.


 

 


↑외놀마을 어느 집 담벼락에 근대 문화재(?)가 보인다.

 


“간첩 잡아 애국하고, 유신으로 번영하자.”

 
박정희 유신정권의 잔재가 물씬 풍기는 귀중한(?) 명문이 아닌가 싶다.
서슬 퍼런 유신 정권의 영향이 이곳 후미진 섬마을에까지 미쳤으니
이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위업(?)이 아닌가 싶다.
지금 그분의 따님이 대통령이 됐으니 이런 유신의 잔재도 
잘 간수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유신 정권이 무너진 지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 때 쓴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다니 우리 세대로서는 반가움마저 든다.

 

 

 

↑이정표를 보니 '대항새바지'이니 '동선새바지'라고 낯선 이름이 쓰여 있다.


이 '새바지'라는 말이 너무 생소하고 웃긴다.
헌 바지, 새 바지라는 것인지...?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나중에 알아보니 새바지는 샛바람(동풍)이 부딪히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이곳 가덕도에는 새바지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두 군데 있는데 바로
대항새바지와 동선새바지다.
지금 나는 동선새바지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이정표는 낯선 이방인들에겐 때로는 혼돈을 가져다준다.

 

똑 같은 갈멧길 화살표가 두 곳으로 나 있으니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걸까.
결국 나는 밑의 화살표를 따라갔다가 1시간이나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가덕도 본도 길이 아닌 눌차도 천가 마을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눌차도를 지나 동선방조제 이정표를 확인하니 바다를 막고 누워 있는 거대한 방조제가 5월의 햇살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바다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방조제 안에 있는 바닷물은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먼 바닷물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언젠가는 흙으로 매립하여 또 다른 인공 구조물이 들어설 것이다.
이곳도 매립하여 신공항 부지로 검토 중이라 들었다.
 

방조제 길은 뜨거운 햇살에 달구어 져 걷기에 참으로 고역이다.
5월인데도 뜨거운데 한 여름 철에는 이곳을 피해야 될 듯하다.

그러나 길은 한 길 뿐이다.

더워도, 추워도 참아 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트레킹의 진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방조제 주변 어느 민가 집 옥상 빨래 줄에 원색의 빨래가 바닷바람에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다.


남자 빤스(팬티)도 충을 추고, 여자 빤스 춤을 춘다, 덩달아 브라자도 따라 춤을 춘다.
뽀송뽀송한 빨래가 멀리 집나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 짖고 있는 어머니의 손길을 생각나게 한다.


 


↑녹슨 닻(Anchor)이 바다로 나가고 싶어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바다를 떠나 묶여 있었을까?
닻은 바다로 나가고 싶다고 한다.
고기를 낚는 배를 타고 깊은 물속으로 자맥질 하고 싶어 한다.


밧줄이 없는 닻...
아마도 이 닻은 다시는 바다로 나가지 못할 것 같다.
주인을 잃은 것일까.

닻을 내려야 할 바다을 잃은 것일까.

 

 

 

 

↑방조제 벽에 동선새바지 가덕대구에 대한 푯말이 서 있다.


이곳이 맛 좋기로 그 유명한 임금님 진상어인 ‘가덕대구’가 산란하는 장소란다.
그러나 이제는 방조제가 바다를 막고 있어 대구가 산란하려 올 수가 없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녹슨 닻이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아 아닐까.


 

 


 
↑새바지 옆의 어느 폐가 이다.

돌담이 하두 정겨워 사진을 찍었다.

폐가인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일까?
아무래도 주인을 잃은 폐가인듯 싶다.
집 보다 돌담에 정감이 더 간다.
이제는 이런 집은 개발에 밀려 영원히 주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슬픈 일이다.


 

 

 

↑동선새바지 작은 포구, 고깃배들이 모터달린 스크루를 매 달고 잠을 자고 있다.


휴일도 아닌데 왜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잠만 자고 있는 것일까?
고깃배가 아니라 낚시꾼들을 태우고 바다로 나가는 낚시 배 인 듯 싶다.


 

 

 

 
↑드디어 본격적이 둘레길을 안내하는 멋진 디자인의 안내판이 방파제 끝에 서있다.
이제부터 길다운 길, 오직 나와 바다와 길만 있는 가덕도 트레킹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길게 뻗어 있는 가덕도 해안 길이 시작된다.


멀리 데크로드도 보인다.
아마도 가덕도 동편 해안 길이 부산 갈멧길 중에서 가장 멋진 길일 것이다. 


해안 절경과 숲속 오솔길이 그야말로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이다.
지금까지의 고생을 보상 받는 듯 길은 내 마음을 쏙 앗아 갔다.


 

 

 

 

 

↑해안 길 첫 번째 ‘포토존’이다.


바다 쪽으로는 망망대해이고, 해변 쪽으로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바다 물에 목을 내밀고 점점이 앉아 있다.

오늘 따라 바다는 말이 없다. 너무 잔잔하다.

파도가 밀려오면 바위에 부딪쳐 은빛 포말을 일으킬 것이다.

바다는 적당한 파도가 일어야지만 살아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폭풍우도, 태풍도 필요하다.

폭풍우가 바다 속을 왈칵 뒤집으 바다는 그야말로 새롭게 정화 된다.

바다가 있다는 것은 자연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일 것이다.

 

 

 


↑원래의 해안선은 분명히 절경였을 터...


그 해안선을 깎아 뭉개 길을 내었으니 이를 어찌 할꼬...
참으로 하나를 얻기 위하여 둘을 잃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이든가?
자연은 늘 이렇게 속살까지 찢기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들을 위한 길....
인간은 자연의 적이라는 말이 진리인 듯 하다.
그러나 이런 길이 없다면 어찌 오늘 길을 걸을 수가 있겠는가.
자연을 좀 거스렸다고 해서 너무 나무라지 말자.

 

 


↑고독이라는 단어는 이런 것에 붙여야 하지 않을까?


수면 위로 살짝 머리만 내민 작은 바위일 것 같지만....
수면 밑을 보면 이 바위는 거대한 바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고독은 이렇게 작은 것 같지만 큰 것을 알게 한다.


독도가 아주 작은 바위이었다면 왜 두 나라가 싸우고 있겠는가.
독도의 해저 밑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거대한 몸집의 대륙봉과 연계 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X들이 기를 쓰고 지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어거지....

일제 침략도 부정하고, 강제 위안부도 부정하고, 역사도 왜곡하는  

그런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고깃배 한 척이 어망을 놓고 있다.
고기도 외롭고, 어부도 외롭다.
잡히느냐 마느냐 생사의 경계가 한 순간에 달려 있다.
물고기에게도 아픔과 감각(정신)이 있을까?
누가 말한다.

물고기는 고통도 없고 감각도 없다고...
그러나 그것은 물고기가 되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물고기의 피는 빨간 색이 아니고 투명한 색이란다.
그래서 칼질을 해도 피가 안 보여 고기는 피가 없다고 한다.
그게 사실일까...???

고통은 인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에 다 있다.

이 세상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동식물은 없다.

다만 인간과는 달리 고통의 감정을 표현 못할 뿐이다.


 

 

 

 

↑길을 낸다고 해안절경은 망가졌을망정....

 

길은 그야말로 트레킹 힐링 길로 과연 환상적이다.

이런 길이 섬 끄트머리 대항새바지까지 약 7km 이어져 있다.

빨리 걷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을 음미하고

파도 소리 들으며 숲향에 취해 걸어 가자.

빨리 걸으면 목적지만 있을뿐 과정은 없다.

아껴 가며 아주 천천히 걷자.

 

 

 

↑길을 낼 수 없는 험한 코스에는 고맙게도 데크로드를 설치했다.


흙을 파헤치지 않아 좋으나 데크라는 자제가 얼마나 내구성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길은 걷기에는 편할지 모르지만 흙길 보다는 정감이 덜 간다.


 

 

 

↑어려운 깃점 마다 어김없이 예쁜 이정표가 서 있다.


가덕도 전체 구간 약도에 현 위치를 알리고 다음 구간의 거리를 표시 해 놓았다.
부산 갈멧길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의 세심한 배려에 찬사와 감사를 드리고 싶다.


 

 

 

↑가덕도 해안 절경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원이다.


건물은 낡고 지저분하다.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별도 없는지 한산해 보인다.
이런 해안 절경에 언제부터 어떻게 기도원이 들어서게 됐는지....
경관 좋은 이런 곳에서 기도하면 수행이 아니라 수양이다.
어떤 종교의 기도 이던 진정한 기도는 고통이 수반되는 수행이 되어야 한다.
산수 좋고 맑은 공기 마시며 확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어찌 수행이 되겠는가.
기도라는 것은 마음과 고통과의 싸움이다.

고통 속에서 하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이다.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기도를 하지 않는다.
고통 받고 절망과 난관에 부딪칠 때만이 비로소 기도원을 찾는다.
그리고 기도한다.
예수님, 부처님 잘 살게 해주세요. 하고...
그러니 요즘 같은 풍요로운 세상에 기도원이 잘 될 리가 없다.
그래도 가덕도의 기도원은 꽤 오래됐고 알려진 곳이란다.


 

 

 

 

↑ 누릉능 전망대와 쉼터이다.

 

'능...?'

 

아니 '능'이라니 어느 왕의 무덤...???

 

그게 아니고 누릉능이라는 이름은 바닷가가 누른색을 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실제로 해안의 바위들이 누런색을 띠고 있다.


 

 


↑누릉능에서 바라본 가덕도 어음포의 해안 절경이다.

 

바로 부산시에서 동남권 신국제공항 입지로 보고 있다는 주변이다.

이런 절경에 공항이 들어서게 된다면 절경은 작살이 나고 말 것이다.

아마도 그 때쯤 되면 나는 하늘나라 사람이 되어 있을 듯싶으니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경관이 아닌가 싶다.

 

 

 

 

↑어음포 가까이 오니 전망대가 나오고 작은 정자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정자에 앉아서 좀 쉬었다 갈까 하고 들어가니 한 무리의 여인네들이
둘러 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어찌 내가 그 자리에 들어설 수가 있겠는가.
젊은 여인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바닷 바람에 허공으로 사라진다. 


홀로 전망대 마루에 앉아 바닷가 망부석처럼 앉아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만 바라보다 일어섰다.


 

 

 

↑오후 1시가 넘고, 2시가 가까워서야 작은 포구 마을 '대항새바지'에 도착했다.


옹기종기 고깃배 몇 척이 방파제 안쪽에 밧줄에 매달려 있고, 마을 집들이 나지막하게 몰려 있다.
작은 슈퍼에 들어가 우선 생수 한통을 사고 캔 음료수와 빵 하나를 사 요기했다.
노포역에서 사온 김밥이 두 줄 남았는데 아무래도 먹자니 기분이 찝찝하다.
이 더운 날씨에 배낭 속에서 찜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니 쉬지 않았을까 불안 하기 때문이다.


 

 

 

대항새바지부터 갈멧길은 더 이상 멋진 풍광을 보여주지 않는다.
새바지는 가덕도 둘레길의 출발지로 돌아가는 반환점이다.
큰 자동차 길을 지나면 가덕도 서쪽 해안에 이르고 거기에 제법 큰 마을과
포구가 있는데 바로 가덕도 대항 선착장이다.


 

 


↑새바지를 돌아 나오는데 길가의 꽃들이 자기를 좀 보고 가라고 손짓을 한다.


이 꽃 이름이 뭘까? 

나중에 알고 보니 붉은 토끼풀꽃이다.
흔하디 흔해빠진 야생초 이름을 도대체 나는 몇 개나 알고 있을까.
야생초 박사인 친구가 늘 가르쳐 줘도 하루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먹는다.


기억력이 점점 떨어진다.
기억력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열정도, 사랑도, 의욕도 함께 무너져 간다.
이래서 늙음은 서럽고 슬픈 일인가.
비러머글....


 

 

 

↑길가 어느 집 담벼락에 빨간 들장미가 가득 피어 있다.


대문에 문패 대신‘햇살 가득' 한 집’이라고 쓰여 있다.
집 주인의 심성과 감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햇살이 너무 뜨거운걸....

 

 

 

↑대항 새바지에서 선착장으로 넘어 가는 큰 길이다.


햇볕이 쨍쨍, 달아 오른 포장된 오르막길을 걷자니 숨이 차 오른다.
그리고 땀이 범벅이다.
배도 곱은데 1인분 밥을 파는 곳이 한 곳도 보이지 않는다.


 

 


↑한 구비 고개를 넘어 대항 선착장까지 내려 왔다.


작은 자동차로 육지에서 가덕도 등대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고 종점이다.
관광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산하다.
포구를 매립하여 만든 선착장 광장이 텅 비어 있다.
광장 의자에 앉아 남은 김밥을 먹으려니 아무래도 쉰내가 난다.
배속에서 꼬르륵 거리며 밥 달라고 하는데 먹을까 말까 하다가
결국 먹기를 포기 하고 만다.
배탈이라도 나면 더 큰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가덕도 등대다.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이다.


오늘 대구 사는 여동생 가족이 등대체험 1박2일에 당첨되어 가덕도 등대에 와 있다.
반가움에 전화를 하니 군부대에서 막아 오빠는 등대까지 들어 올 수 없다고 한다.
점심을 같이 먹게 대항 선착장으로 내려 올 수도 없다고 한다.
한번 들어가면 다음 날 나올 때까지 등대를 벗어 날 수 없단다.


여기에서 가덕도 등대까지는 불과 3.5km 정도, 그러나 해병대 초소에서 민간인 출입은
통제하고 있고, 항만청의 등대 체험 이벤트에 신청, 당첨된 사람만이 등대에 들어
갈수가 있다고 한다. 그것도 8명 이내의 1가족 만 허락 한단다.
군사시설도 아니고 등대 구경조차 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당국(항만청)의 처사가 서운
하지만 아무나 들어가서는 안 되는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해힌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당국의 처사가 조금은 아쉬움을 들게 한다. 등대 안으로는 들어 갈 수는 없다 해도
등대 주변 구경은 할 수 있도록 개방하면 안 될까.
대통령 별장 청남대도 국민들에게 개방하는데 말이다.
배고픔을 참고 대항 선착장을 벗어난다.


 

 

 

↑길가 도로변 가드레일에 갈멧길 안내문이 예쁜 글씨로 쓰여 있다.


그냥 붓으로 적당해 쓴 것이 아니라 글자 하나, 하나를 예쁘게 색동 나무에
써서 오려 붙인 정성이 듬뿍 담긴 글자 들이다.


“(당신은)부산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갈멧길을 걷고 있습니다.⇨ ⇨”


낯선 길손에게는 이런 안내문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부산시의 아름다운 배려에 다시 감사드린다.
햇볕은 따갑지만 아름다움을 만나니 기분이 좋다.


 


↑가장 걷기 싫은 길, 포장된 오르막길을 오른다.

여기서부터 약 1.7km 쯤 햇볕 뜨거운 포장길을 걸어야 한다.
차량들도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좋은 곳이 있으면 나쁜 곳도 있기 마련...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나오듯이 고행을 겪어야
기쁨의 보상을 받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으면 조금 힘들더라도
참아 견디는 것도 트레킹의 일부 터이다.

 

 

 

 

↑큰 도로에서 연대봉으로 오르는 이정표이다.


지양곡이라는 고갯마루에서 꺾어져 가덕도의 최고 봉 ‘연대봉(459.4m)’으로 오르는 산길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가덕도 둘레길 서편 해안 도로로 가면 길은 편할지 모르지만 도착지까지 길이 멀고 차량 통과로 좋지 않으니

좀 힘이 들더라도 연대봉에 올라 탁 트인 남해 바다도 보고 시간도 절약할 겸 산길을 택해 오른다.
 

 


 
↑연대봉으로 오르는 황토 길이다,


딱딱한 포장길을 걷다 황토 길을 걸으니 너무나 좋다.

의외로 길가에 큰 나무가 많이 없어 그늘이 부족, 뜨거운 햇볕 때문에 좀 힘이 든다.
연대봉까지는 약 1.6km, 난이도는 中 정도 이지만 벌써 5시간 정도를 걸은 뒤라서
힘이 빠져 오르기가 힘이 든다. 시간은 오후 3시경, 해가 서편에 있어 뜨거운
햇볕을 피할 곳이 없다.


 

 

 

↑연대봉 가는 길가에 있는 정자이다.


외로운 길손을 맞아주는 산 중의 정자 한 체, 반갑기가 그지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바람에 반들반들한 마룻바닥이 흙 투성이다.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이게 우리의 의식수준이라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OECD 국가면 뭐하나, 이런 기초적인 질서 하나 지키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선진국 대열에서 내려 와야 한다. 높은 국민 의식수준은 경제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문화의식 수준에서 나와야 한다.


대충 흙을 닦고 길게 누워 숨을 진정 시킨다. 
멀리 연대봉이 솟아 있다.


 


↑드디어 연대봉이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길은 점점 험악해 진다. 바위와 돌들이 내 운동화를 마구 농락하고 있다.
등산화를 신고 올걸... 후회는 소용없다. 누가 이럴 줄 알았나....

 

 

 

 

↑땀 때문에 초죽음이 되어 연대봉에 올랐다.


꼭 사람 얼굴 모양 같은 거대한 바위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다.
천년이 됐을까, 만년이 됐을까?
아마도 수십억 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고개가 숙연해 진다.
바위를 향하여 꾸벅~ 절을 올린다.
연대봉은 연기를 피워 올린 옛날 봉화대를 이름함이다.

 

 

↑연대봉에 있는 가덕도 천성봉수대 이다.


봉수대의 확실한 설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고려 의종 전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의종은 고려의 18대 왕이었으니 서기 1127-1173년 시대쯤이 된다.
그러니깐 연대봉 봉수대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850년 전 쯤 만들어진 것이다.
왜적이 한반도에 침투하면 가장 먼저 알아내는 곳이 바로 이곳 가덕도 봉수대란다.
지금도 연기를 피면 적의 나타남을 알릴 수 있을 것 같다.


 

 

 

↑연대봉에서 바라다 본 거가대교 해저터널 휴게소가 아련히 보인다.


오늘은 바다 안개가 끼어 거가대교의 거대한 사장교 교각이 보이지 않는다.

연대봉에서 남해의 일출과 일몰 모습이 장관이라는데 보지 못함이 유감스럽다.
돌아갈 시간이 사정없이 다가온다.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연대봉을 내려온다.


 

 

 

↑연대봉에서 내려오는 하산 길(임도)이다.


약 2.5km 정도 이런 길을 지루하게 걸어야 한다.
지금부터의 산길은 내내 지루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내려오는 길에는 별로 볼 것도 없다.
그저 넘어지지 않게 땅만 잘 보고 안전하게 걸으면 된다.


 

 

 

↑가덕도의 충혼탑이다. 내려오는 도중 유일하게 만난 유적지 이다.


6.25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가덕도의 영혼을 기리는 탑이다.
탑이 조금은 초라한 편이다.
나는 탑을 바라보면서 군인이 되어 잠든 영혼들에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내 인생 청춘기와 중년기는 모두 조국의 바다를 수호 하는데 바쳤다.
그래서 충혼탑을 보면 더 연민의 감정이 솟는다.


 

 

 

↑드디어 천가초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오늘 하루 가덕도 트레킹이 끝나는 마지막 지점이다.
초등학교 뒷골목으로 갈멧길이 표시 되어 있다.
장미꽃이 멋진 담장이 지친 내 기력에 힘을 보태준다.


 

 

 

↑천가동 주민 센터 와 천가마을 길이다.

쓰레기 한 점 없는 깨끗한 골목길이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동사무소라는 이름이 주민 센터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동사무소라는 이름이 세련되지 않은 이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센터라는
외래어 보다는 낳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외래어가 넘쳐 난다.
이러다간 순수 우리말 용어가 모두 외래어로 둔갑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진다.
도심에는 센터, 센터 이 센터라는 이름이 너무 많다.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니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고
젊은 여직원이 웃으면서 반겨 준다.
사무실 정수기에서 빈 생수 병에 시원한 물을 가득 얻어 나온다.
길은 마지막으로 출발했던 선창까지 약 1km 정도를 남겨 두고 있다.


 

 

 

↑가덕도는 그 빼어난 절경 말고도 알게 모르게 작은 옛 전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가덕도는 남해안 일대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들이 쳐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군사요충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조선 중종 때 이미 가덕도에 수군의 진영인
가덕진을 설치하여 왜구를 막는 최전방 역할을 담당 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가덕도의 3.1운동에 대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작지만,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주민들의 저항 의지가 이 작은 섬에서도
줄기차게 일어났었다. 그것은 가덕도가 진해군항 입구에 위치하여 1904년 러일 전쟁
때는 러시아 군이 가덕도를 점거 무기고를 설치, 군사 요충지로 사용했고,
그 후 일제도 가덕도를 점거 주민들을 억압하여 섬에서 3.1독립만세 운동 같은
항일 운동이 일어 난 섬이기도 했다.


이제 가덕도는 또 다시 외래의 침입이 아닌 개발이라는 우리 자신들의 손에 의해서

획기적으로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가장 최우선시 하는 현대의 경제 정신으로는 바람직 한 일이나 
천혜의 자연환경 보전 측면에서 보면 개발과 발전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천가 마을 도로변에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다.


거목을 보면 저절로 경외심이 일어난다.
인간들은 자연을 이루는 나무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자연의 고마운 혜택을 대부분의 인간들은 잊고 산다.


 

 

 

↑드디어 아침에 출발했던 선창에 돌아 왔다.


장장 8시간을 걸었다.
기력이 거의 소진하여 기진맥진 상태다.
선창가에 허름한 포장집 국수집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국수집으로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버스에서 빵빵빵~ 경적을 울린다.
돌아다보니 지금 출발한다는 신호이다.


아, 이럴 수가....
국수를 포기하고 버스에 오른다.아침에 타고 왔던 그 버스다.
이럴 때는 한 30여분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는 것이 좋은데....
배에서 자꾸 꼬로륵 소리를 낸다.


버스는 달랑 나 한 사람을 태우고 출발했다.
그리고 1시간 뒤....
하단역에서 노포역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집에 오니 밤 열시가 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기도를 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하게 걷게 해준
나의 두 다리에 감사 하다고...


*추기: 사진 중 몇 장은 부득이 인터넷 자료 사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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