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대좌위에 계시는 용장계삼륜대좌불좌상
- (보물 제187호)
태봉을 넘어 가파른 암반 길을 따라 탑상골 쪽으로 향한다.
오전에 구름 속에 숨어 있던 해가 어느 사이 구름을 걷어내고 환하게 얼굴을 내민다.
5월의 햇빛에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서니 커다란 암반 앞에 삼륜대좌불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시야 속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왜 이리도 높은 대좌 위에 앉아 계시는 걸까?
그것도 3단의 원형 대좌에 옷자락을 바람에 펄럭이며 서쪽을 보고 앉아 계신다.
또 머리는 어데 두시고 몸만 나투시고 계신지....
때마침 서산으로 기우는 햇살을 받아 석불은 하얗게 광체를 내고 있다.
3단의 대좌 위에 불상을 조성한 예는 아마도 여기뿐일 것이다.
3단 대좌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기 저기 자료 찾아보니 대략 이런 뜻임을 알았다.
결가부좌의 앉음 자세에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흘러내리는
옷자락에 무릎을 가린 *상현좌(裳懸坐)임을 뜻하고...
3단의 그 첫 번째 원반석 위는 구름으로 형성된 *도리천(?利天)을 의미하고,
두 번째 원반석 위는 염마천왕이 관장하고 있는 야마천(夜摩天),
세 번째 대좌 위는 연화(蓮華)로 장엄된 미륵보살의 *도솔천(兜率天)이라는 뜻이니
당연히 불상은 미륵불(彌勒佛)임을 뜻한단다.
그런데 더 의미심장한 것은 하단 원반석 밑의 기단석을 전혀 인공으로 다듬지 않는
자연석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용장계삼륜대좌불좌상
해설 전문가의 말로는 자연석으로 된 기단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창조주의 작품이고,
곱게 다듬은 대좌와 불상은 인간의 작품으로 창조주(여래)와 인간의 조화를 의미한단다.
삼륜대좌불을 바라보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 정리해 보니 비로소 3단의 대좌불을 어떤
의미와 사상으로 조성했는지 신라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이 절실히 느껴 온다.
이 작은 돌 조각 몇 개 안에 불정토의 깊고 넓은 의미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조상들의
지혜 앞에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삼륜대좌불 앞에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대현(大賢)스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유가종의 조사이고 용장사의 주지였던 대현 스님은 자주 미륵상(삼륜대좌불)밑에서
탑돌이 하듯 빙빙 돌았는데 그러면 미륵상 역시 스님을 따라 빙빙 돌곤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전한다.
대현 스님의 활동 기간이 8세기 중엽이니 이 불상도 동일한 시기 이었으리라 보고 있다.
삼륜대좌불은 용장사지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없어진 불두는 지금 어디 있을까?
주변의 흙을 파 헤쳐 샅샅이 뒤져보면 혹시 불두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 때 기록에 의하면 1923년 용장사지 삼층석탑과 삼륜대좌불에 도굴꾼들이
들어 쓰러져 있던 것을 발견,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다시 복원했다고 전한다.
●삼륜대좌불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구전에 의하면 탑과 불상을 쓰러트린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배후에는 일인(日人)들이 사주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사례들이 어찌 여기뿐 이였겠는가. 숭유억불 정책으로 조선시대 때에
파괴된 것들도 많았겠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 사람들은 교묘하게 위장하여
탑이나 불상 속의 귀중한 부장품들을 약탈해 갔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한탄스러운 것은 지금도 도굴꾼 들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아닌 한국인 도굴꾼들이라는 점이 다른 점이다.
>용장계에서...
■문화재 정보
●용장계삼륜대좌불좌상 (보물 제187호)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목에는 3줄의 뚜렷한 삼도(三道)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으며, 가슴 또한 풍만하지 않은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圓形)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유가종의 조사인 고승 대현(大賢)은 남산 용장사에 살고 있었다. 그 절에는 돌로 만든
미륵보살의 장육상이 있었다. 대현은 항상 이 장육상을 기도하면서 돌았는데, 이 장육상도
역시 대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三國遺事 第四卷 義解 第五 賢瑜伽, 海華嚴)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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