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통도사 산내 암자 도보 순례(3편-자장암, 서축암)

migiroo 2013. 11. 22. 00:02

>2013.11.18


제3편, 자장암. 서축암


자장암 가는 길에서 만난 문수보살님...


안양암에서 한참을 걸어 자장암 길로 접어든다.
해는 구름이 가리고 제법 쌘 바람이 발목을 잡는다.
그런데 길목에 할머니 한분이 목도리를 두르고 앉아 계신다.
할머니 앞에는 감, 배추, 무, 도토리묵, 찐쌀 그리고 식혜 가 놓여 있다.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식혜를 담은 종이컵을 내밀면서 마셔 보란다.

 

 

 

 

“할머니, 추워서 그 차가운 것을 어떻게 마셔요.”
“그랴, 그럼 묵 하나 팔아 줘....”
“할머니 자장암 갔다 나오는 길에 살게요.”
“지금은 묵을 들고 가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라문 이따 나올 때 꼭 팔아줘...”


할머니를 뒤로하고 자장암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한다.
혹시 문수보살이 할머니로 화신(化身)하여 나타나신 것이 아닐까.
부처를 찾아 가면서 부처를 만나도 부처임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세조 왕이 오대산에서 병을 낫게 해준 문수동자을 만나고도
문수보살임을 알아보지 못한 거와 같음이다.

 
그 깐 묵 하나가 얼마나 무겁다고 나중에 사겠다고 했는지....
애초부터 살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뒤 늦은 후회를 한다.
자장암에는 금와(金蛙)보살님이 살고 계시다던데....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혹시 그 할머니가 금와보살의 화신이 아닐까?

 

 

 

자장암 마당은 늘 빗질 자국이 보인다.
무명(無明)을 벗어나기 위한 고행이다.

 
금와보살님이 살고 계신다는 바위에 뚫린 작은 구멍에 눈을 들이댄다.
구멍 속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다.
올 때마다 구멍 속을 들여다보았지만 개구리로 화신한 금와보살은
출타를 하셨는지 한 번도 만나질 못했다.
진실로 믿는 자에겐 보일 것이고, 의심 하면 안 보인다 했는데.....

 
그런데 금와보살을 볼 수 있는 조언자가 나타났다.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바위 구멍에 눈을 대고 있는 나를 보고


“그렇게 눈을 구멍에 바싹 대지 말고 조금 떨어져서 보세요.”


정말 눈을 조금 떼고 보니 분명히 금와보살(개구리)이 보였다.
색깔이 사진 상에서 보는 초록색이 아니고 조금 회색이었다.
믿는 자의 눈에는 보인다 했는데 정말 믿으니 보였다.

 

 

 

 

자장암에는 또 하나 진귀한 것이 있다.
바로 조선시대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자장암 관음전 전각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 면에 선각과 양각을
적당히 혼합하여 새긴 것으로 높이는 대략 4m 정도 되는 삼존불로서
중앙에 아미타불, 좌우 협시불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새겨져 있다.
숭유억불 조선시대에 새겨진 마애불이니 의외의 작품인 듯도 하고
조각 문양도 통일신라 때나 고려시대 마애불과는 판이하게 다른 듯 하다.
마애불의 조성 시기가 조선말기 고종33년(1896) 때임을 분명히 알리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억불정책이 많이 완화 된 조선말 시기에 조성된 마애불이다.

 

 

 


 
본존불인 아미타불은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까지 추켜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 수인이다.

경주남산 약수골 대불의 손모양과 닮은 수인이다.


아미타불은 가벼운 미소가 보이나 대체적으로 무겁고 엄숙한 느낌이 든다.
두광 주위에 군데군데 범어(梵語)가 음각되어 있다.

 

 


 
대세지보살 옆 면에 마애불 조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명문이 있다. 


聖上卽位三十三年 丙申七月日. 化主 吉山 定一 金翼來,
金弘祚, 鄭泰燮, 李善同, 朴漢淳, 張雲遠


성상즉위삼십삼년 병신칠월일. 화주 길산, 정일, 김익래,
김홍조, 정태섭, 이선동, 박한순, 장운원.
여기에서 성상(聖上)은 고종을 말한다.


자장암에서 금와보살님을 만났으니 기분이 좋다.
다시 터벅터벅 걸어 자장암을 나온다.


자장암 길목에서 만났던 묵 파는 할머니가 안 보인다.
자장암 갔다 내려 올 때 사겠다고 했는데....
나의 진심이 헛된 것임을 안 할머니가 다시 문수보살로 화신하여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하늘이 변덕을 부린다.
해가 나왔나 했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더니
다시 또 하얀 눈발까지 날린다.
바람도 심술을 부린다.

 

 


■ 다보여래가 있는 서축암(西鷲庵)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 서축암, 자장암 가는 길목에 있다.
산문으로 들어서니 생각과는 딴판인 귀티 나는 전각들이 너른 잔디밭 위에 서 있다.
경내 한 켠엔 잘생긴 미니 다보탑도 보인다.
다보탑 안에는 불사리를 모셨다한다.


서축암은 1996년에 새로 지은 절이다.
팔작지붕의 주법당 대웅전 격인 인법당(因法堂)을 중심으로 좌, 우로 
단아한 맞배지붕의 현무전(玄武殿)과 주작전(朱雀殿)이 배치되어 있다.
인법당이란 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신
절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전각들이 모두 무단청의 건물이다.
거므티티한 나무 색과 하얀 회벽이 조화된 질감이 너무 좋다.
군더더기 한점 없고 단조로움과 깔끔함, 그리고 단아함이 짙게 건물에 배여 있다.

다른 절집과는 전혀 다른 전각들이 마음을 붙잡는다.

 

 

 

 

인법당 안에 모셔진 삼존불상이 입체적으로 조명이 되어 있고
후불탱화 역시 채색화가 아니고 흑백탱화인 것이 특이하다.
법당 안의 구조도 어느 법당 구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서축암 다보탑은 불국사 다보탑을 꼭 빼 닮았다.
크기는 작지만 앙증맞게 예쁘다.
부처님 사리가 봉안 되어 있다니 더욱 아름답다.


그런데 작년까지만 해도 다보탑이 경내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는데
무슨 이유로 경내 한 쪽 옆으로 옮겨 세웠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의 생각 같아선 아무래도 대층적 공간구성보다 비대층적 공간구성이
미적 감성을 더 불러 오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서축암은 다른 절간에 비하여 건물 형식에 파격적(?)인
변화를 준 절간임에 틀림없다.
티끌 하나 조차도 없을 것 같은 정갈한 서축암에서
녹차 한 잔을 직접 끓여 마셨다.
종무소에 들르니 정말 젊고 예쁜 보살님이 미소 지으며 
따뜻하게 길손을 맞는다.


서축암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영축산 주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부처님이 상주하는 영축산(취서산) 서쪽에 있다하여
암자 이름이 서축암인 듯하다.

 

 

 

■통도사 김장 하는 날~


서축암을 나와 지름길로 통도사로 들어간다.
통도사 영산전 마당에 이르니 절인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젊은 스님들이 김장을 한다고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통도사 김장은 연 3일 동안 한다고 한다.
오늘은 그 둘째 날.....

 

 

 


젊은 스님에게서 누룽지 하나를 얻어먹으며 통도사를 나온다.
주차장에 이르니 눈이 제법 내린다.
첫눈 내린 오늘은 통도사 산내 8개 암자를 돌았다.
모두 다 차타고 돌면 금세 돌 수 있지만 암자를 보기 위함보다는
암자로 가는 길을 걷기 위함이었으니 늦가을 마지막 단풍도 즐기고
상념에 잠겨 십여 키로를 걸었으니 이만하면 오늘은 나에게 있어

의미 있는 날이  아니였지 않나 싶다.

 

 

 

*남어지 사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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