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토기
이종섶
토기에 물을 담아 사용했던 신석기시대
음각된 사선이나 점선들은 하늘이 보여준 계시의 문자,
비의 음성을 들어야 살 수 있었던 세상에서
빗살을 새겨 넣은 경전을 만들며
오직 비의 뜻만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릇의 뼈로 자리 잡은 하늘 무늬를 받들며
정결한 물을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는 사람들,
손바닥으로 펼쳐 목구멍으로 깨우쳐야 하는 말씀을
더 이상 모시지 못하게 되었을 때
몸은 토기를 위해 흙으로 돌아가고
빗살문양을 닮은 영혼만 하늘로 올라가
천상의 영롱한 빗살이 되었다
빗살이 토기의 신앙이었던 오래전,
빗살 회초리가 허공을 가로질러
거대한 원형빗살토기를 만들었던 때가 있었다
비가 쏟아지고 깊은 샘이 터져
다급하게 새겨진 무수한 생채기들,
살아남은 자손들은 목숨 걸고 빗살의 기록을 전했다
한 어미가 강물에 아이를 띄워 물살을 새긴 것도
그 아이가 자라 빗살지팡이로 바다를 가르며
빗살이 살아있음을 만천하에 알린 것도
대대로 물려받은 비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을 알려주는 비의 살,
영원히 울려 퍼져야 할 그 토기의 말씀이
박물관 유리벽 속에 갇혀 구경거리로 전락한 세상에서
남몰래 하늘 한 귀퉁이 바라보며 눈물 흘릴 때
저 멀리, 비 긋는 소리가 들린다
-수주문학 2011년 제8집
*네이버 블로그에서 스크렙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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