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5.
불계로 들어가는 길목 ~
경주남산 옥룡암
오랜만에 경주 남산을 찾는다.
산사로 들어가는 길은 이미 만추의 절정에 들어 있다.
암자에는 일주문이 없다.
속계와 불계의 경계가 없다는 뜻인가,
암자 문은 항상 열려있고 드는 이가 곧 주인이다.
암자에 가면 부처를 만날 수 있을까.
경주남산 옥룡암.
암자 아래 계곡에 작은 소(沼)가 있다.
그 곳에서 용이 나왔다하여 옥룡암이 됐는지....
어찌됐던 옥룡암은 불계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암자 뒤편 거대한 바위 면에 불계를 상징하는
불상군(보물 제201호) 그림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불교의 서방정토 이었던 경주 남산....,
그래서 무수한 불교 유적들이 산재해 있는 산이다.
그 산 동쪽 기슭 작은 골자기 끝에 암자 하나가 있다.
옥룡암이다. 옛 신인사라는 절터에 지은 암자이다.
사람들은 옥룡암을 보려 왔다가 암자는 건성으로 보고
찬란한 불계의 세계가 새겨진 마애불상군으로 가곤 한다.
그래서 옥룡암은 늘 외롭고 서운하다.
그러나 암자로 들어가는 길은 환상의 길이다.
혼자 걷기엔 너무 쓸쓸한 길이고 둘이 걷기엔 아쉬운 길이다.
연인과 함께 걷는 다면 환상의 데이트 코스가 될 것이나
아쉽게도 나는 이미 그런 열정을 잃어버린 지 오래됐다.
인생에 있어 열정을 잃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가을이 되면 숲들은 왜 붉게 타오르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식물의 광합성이나
엽록소 작용 같은 것을 말함이 아니고
감성적 물음이다.
그렇다면 숲에도 감성이 있는가?
물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숲이 가을이 되면 붉은 숲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낼 줄도 알고 흔들일 줄도 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줄도 달콤한 열매도 맺을 줄 안다.
암자의 단풍은 그렇게 열정적으로 붉게 물들었다가
추운 겨울을 맞는다.
암자 앞에 안양교(安養橋)가 계곡을 가로 질러 놓여있다.
불교에서 안양(安養)은 극락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니
안양교는 바로 극락으로 들어가는 다리인 셈이다.
불국사 안양문 같은 거창한 문이 어찌 암자에 놓여 있는지.....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 않음을 곧 알 수가 있다.
옥룡암에는 천계(天界)의 거대한 불(佛)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해탈의 문이고 부처의 세계가 있는 곳.
암자는 너무 조용하다. 스님은 계시는지 출타를 하셨는지 기척이 없고
나그네들만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까지 기웃 거리고 있다.
암자 마당 화단에 작은 삼층석탑이 서 있다.
그런데 세 개의 지붕돌(옥개석)과 탑신의 비율이 맞지 않다.
아마도 남산 이곳저곳 절터 같은 곳에서 하나씩 수습하여
올려놓은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
그래도 탑 석에 오랜 시간의 흔적이 엿 보이니
졸작이라고 폄하 할 수는 없다.
불가에서의 탑은 곧 부처의 세계를 상징한다.
경주남산에는 무수한 신라시대 석탑이 아직도 남아 있다.
어떤 것은 무너져 있고 어떤 것은 부서지고 깨져 있다.
그중 다행히 근간에 복원된 탑들도 있다.
절 마당에 아담한 한 옥 한 체가 앉아 있다.
만추의 따뜻한 하얀 햇살이 내려 앉아 있는 요사채(寮舍寨) 건물이다.
댓돌 위에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으니 스님이 계신 듯 한데....
그러나 스님은 묵언삼매 좌선에 드셨는지 일체 기척이 없으시다.
불자들의 염원이 담긴 불사(佛事)용 기와들이 마당 한켠에 쌓여 있다.
불가에서는 찰나의 시간도 있지만 억 겹의 시간도 있다.
기왓장들은 조용히 기다림의 시간을 싸 가고 있다.
언젠가는 팔작지붕 멋진 법당의 지붕 역할을 할 것이다.
암자에 들 때는 무거운 짐을 지고 들었는데.....
나갈 때도 비우지 못하고 나간다.
집착과 욕망,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결과이리다.
이제 만추의 옥룡암은 서서히 침묵 속으로 들어
내년 봄에 다시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하여
긴 동면에 들 것이다.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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