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1.경주남산, 무덤과 소나무의 공존, 그 경이로운 조화로움....

migiroo 2015. 11. 20. 21:02

 

 

>2015.11.16.

 

경주남산, 그 천년의 시간 여행(1)

서남산(삼릉골에서~용장골까지의 탐방 길)

탐방 날자 : 2015.11.16

 

삼릉골 유적탐방(1)

 - 삼릉, 삼릉계곡석불좌상, 마애관음보살상

 

 

비가 내릴 듯 말 듯 하늘이 온통 잿빛이다.

경주 지역 예보는 오후 3시경부터 비가 내릴 것이라 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경주남산의 西남산 종주길 탐방

 

지금 나는 경주남산을 걷고 있다.

그러나 몸은 현재의 길을 걷고 있지만....

보는 눈과 마음은 천 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신라인이 되어 걷는다.

 

산행을 겸한 유적지 탐방이다. 꼬박 3년 만이다. 그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안방 들듯이 다니던 남산 이었는데 3년 만에 다시 찾으니 탐방 길도 많이 변해 있다. 옛날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요즈음은 불과 2,3년 만에 강산이 변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변화가 자연적 변화가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편의를 위한 인위적인 변화라는 것이 문제이다. 경주남산에도 점점 그 편의적 인공시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경주남산을 오른다는 것은 산행이 아니라 문화재 탐방이라고 해야 맞다.

 

오늘 탐방 코스는 西남산 탐방 코스 중 가장 핵심코스인 삼릉골과 용장골 코스로 총 연장 5km 정도의 종주 코스이다. 거리상 5km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는 단순히 거리의 수치 일뿐 탐방 길의 난이도가 꽤 높고 탐방 코스에 줄지어 있는 문화유적을 관심 있게 살피다 보면 탐방 길 소요시간은 빨라야 5시간-7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코스이다. 이 코스에 위치한 문화유적은 대략 15개소로 남산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아기자기한 이 코스에는 걷기의 즐거움과 문화유적지를 둘러보는 재미가 심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 그럼 들어가 보자 그 천년의 역사 속으로…….

 

1.무덤과 소나무의 공존, 그 경이로운 조화로움....

 

 

 

 

왕릉과 소나무....,

 

문화유적 해설사는 능 주변의 소나무는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말한다. 그럴까, 그러나 여기서는 왕릉이 주인인지 소나무가 주인인지 우열을 다투지 않는다. 오직 공존만이 있을 뿐이다.

 

경주남산에 위치한 3기의 왕릉이 나란히 있는 곳을 삼릉이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삼릉을 보러왔다가 왕릉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그만 반해 버리고 만다. 물론 사진작가라면 전국적으로 다녀가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아니 사진작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라도 사진작가가 된다. 카메라가 없으면 핸드폰으로라도 소나무를 찍곤 한다. 여기에 올린 사진도 스마트 폰으로 찍은 것이다. 요즘 핸폰의 사진 해상도도 꽤 높아 쓸 만하.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로 유명한 명승지를 꼽는다면 경주 삼릉송림을 비롯한 울진의 월송정과 불영사 송림, 영주 소수서원 송림 그리고 예천의 석송정, 안동의 하회마을의 솔 숲, 영월의 장릉 송림 숲 등이 유명하다.

 

삼릉의 소나무,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 어떤 숲의 아름다움도 경주남산 삼릉골 송림의 아름다움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용트림 치듯 구부러져 힘차게 솟아 있는 소나무를 보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숲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 교수의 소나무 사진을 보면 그야말로 소나무들이 숨 쉬는 심장 소리로 가득하다. 자욱한 안개 속에 묻힌 굵직굵직한 노송들이 젊고 어린 소나무들을 감싸 안고 하늘도 뻗어있는 모습 앞에서는 전율을 느낄 정도로 그 경이로움에 압도당한다.

 

 

 

 

노송의 껍질은 거북이의 등처럼 귀갑(龜甲) 문양을 닮아있다. 그러나 단단하지도 않은데 강하하다. 그렇지만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 조화로운 입체적 균열은 그야말로 한 폭의 예술품이다. 크고 작고, 규칙과 불규칙 그리고 연속성과 비연속성으로 나열된 목피(木皮)의 무늬를 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사람이 저런 문양을 만들 수 있겠는가, 오직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신의 문양이다.

삼릉, 고분은 삶과 죽음을 사색하는 현대인의 사유의 장....

 

 

 

 

신라 아달라왕릉, 신덕왕릉, 경명왕릉이 한 줄로 나란히 한 곳에 있다하여 삼릉(三陵)이다. 그러나 이들의 무덤인지는 명확히 밝혀진바 가없다. 8대 아달라왕(사진의 크게 보이는 능) 이후 700년이란 시차를 두고 53대왕 신덕왕릉(중앙), 54대왕 경명왕릉(맨 위쪽)의 아버지와 아들의 묘가 나란히 있으니 좀 묘한 동거이다.

 

신덕왕과 경명왕은 신라의 쇠퇴기 마지막 시기 왕들이다. 그리고 삼릉 옆에는 사실상 신라의 마지막 왕이나 다름이 없는 경애왕릉이 있다. 경애왕은 경명왕의 동생이다. 그러니 아버지 신덕왕릉과 두 아들의 무덤이 함께 있는 셈이다. 함께 나란히 있는 아달라왕릉은 8대왕이니 무려 700년의 시차가 생긴다. 그러니 두 능과는 함께 있는 연관성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 세 능의 주인이 실지로 맞는지 의구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유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을 보통 경순왕이라 하지만 그는 신라 천년사직이 망하고 지배세력의 힘에 의해서 강제로 임명된 왕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포석정에 들이닥쳐 경애왕을 죽이고 그의 이종사촌을 왕으로 추대하니 바로 그 유명한 마의태자의 아버지 경순왕이다. 그 후 후백제를 물리치고 고려를 세운 왕건이 신라를 접수하고 지금의 경주지역을 경순왕에게 식읍으로 내주었으니 사실상 왕이 아니라 지금으로 말하자면 일개 군수정도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왕건은 경순왕이 경주에서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경순왕을 경주에 머물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수하에 두었다. 그래서 죽어서도 경순왕은 경주로 오지 못하고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에 묻히니 바로 경순왕릉이다.

 

삼릉 중 신덕왕릉은 1953, 1963년에 도굴되어 1963년에 발굴된바 있고 삼릉 모두 무덤 형식은 원형봉토분이다.

 

 

 

 

 

경주에는 수많은 신라 왕릉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고분들이 산재해있다. 이들 고분들은 무덤이지만 그 유연하고 부드러운 봉분들이 주는 감정은 죽은 자의 무덤이라기 보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과 죽음을 사색케 하는 사유와 명상의 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무덤은 계절에 따라 그 색을 변화 시킨다. 하절기에는 능의 봉분이 초록빛이다 그래서 녹릉 이고, 가을이 되면 누렇게 변하니 황릉이다. 그리고 겨울눈이 무덤에 쌓이면 바로 하얀 백릉이 된다. 그래서 변화하는 무덤을 바라보면서 현대의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엄숙함을 경외하며 생()과 멸() , 삶과 죽음의 무상함을 사유하는 것이리라.

 

 

 

 

 

삼릉을 나와 이어진 삼릉골로 향한다. 흙길이었던 산길은 이미 오래전에 마루판을 깐 목판 길로 변해 있다, 수많은 사람들로 유실되는 토사를 방지하가 위하여 설치한 시설이라지만 평평한 산길까지 목판을 깔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목도(木道)의 부드러운 마루판을 걸으니 좋긴 좋다.

 

폐불 폐탑, 그 가슴 아픈 시간이여!

 

 

 

 

문득 길옆에 깨어진 석탑 일부와 석불이 보인다. 자칫하면 그냥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석탑은 지붕돌 한 개와 탑신 한 개이고, 석불은 머리와 손발이 유실된 약사여래불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개는 애석하게도 몸통만 남은 석불의 입상(立像)인데 옷 주름 문양이 선명하다.

이 불적들은 원래 몇 년 전만해도 삼릉 위쪽 골짜기 바위들 틈에 방치되어 있던 것들인데 아마도 당국에서 수습하여 탐방로 옆에 가지런히 갖다 놓은 것 같았다.

 

 

 

 

원래 제자리가 어디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산 어떤 절터에서 밀려와 돌 틈에 나뒹굴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그 기막힌 사연은 오직

부처님 당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온전한 석탑이나 석불보다는 깨지고 부서진 불적들을 보면 가슴이 찡해온다.

한때는 불자들의 간절한 예배 대상으로 숭앙 받다가 이제는 한 낱 떠도는

폐탑, 폐불(廢佛)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그 무상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경주남산에는 이런 폐탑, 폐불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한낱 돌이 아니라 영혼이 깃들어 있는 불적(佛跡) 들이다.

아직도 모양과 문양이 선명히 남아 있음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 이제 다음 코스로 가자.

 

1편 끝,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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