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2.
주련(柱聯)을 달다.
동생이 폐 가옥에서 얻어 왔다며 폐목 한 트럭을 싣고 왔다.
곧 추워지니 아궁이 땔감으로 가져온 것이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때는 형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불 지핀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있는데 가장자리가
심하게 썩은 널빤지 두 쪽이 눈에 들어 왔다.
어떤 용도로 사용했던 목재였을까....?
아마도 한옥의 툇마루나 풍판용으로 사용 됐던 것 같았다.
무심코 아궁이에 집어넣을까 하다가 순간 손이 멈춰졌다.
어디 다시 사용할 곳이 없을까 하고 옆에 재껴두고 대신
다른 나무를 아궁이에 집어넣었다.
다음 날 그 널빤지를 다듬어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매끈하게 페이퍼 질을 하니 자연스러운 나뭇결이 나타나고
제법 부드러운 목감(木感)이 느껴왔다.
어떤 용도로 쓸까 생각 하다가 문득 주련을 만들기로 했다.
주련(柱聯)이란 집이나 사찰 전각 같은 기둥에 의미 있는
글귀를 써서 걸어 둔 것을 말한다.
어떤 글귀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문화재청이 *소개한
강릉 선교장의 정자 활래정(活來亭) 주련 글귀가 생각났다.
활래정에는 여러 주련이 걸려 있는데 그 중 한 글귀이다.
주련의 내용은 ‘자연에 묻혀 정신수양을 하는 은둔자의 모습’을
적은 글귀인데 지금 산촌에 은둔자처럼 살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과 조금은 닮아 보인 듯 했다.
山明神境悟 산명신경오 - 산이 수려하니 정신의 경지가 깨우쳐 지고,
林肅道心高) 임숙도심고- 숲이 엄숙하니 도심이 높아진다.
그런데 한자의 글씨체가 문제였다.
아무 한자 체를 집자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서 엉성한 나의 임의체로 쓰기로 했다.
엉성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한문체이다.
우선 널빤지에 먹을 듬뿍 바르고 물로 한번 씻어 냈다.
먹물이 나무에 까맣게 뱄다. 색감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먹물의 감촉은 육감이 아니라 영감에 가까웠다.
칼로 글귀를 음각으로 조각했다.
나뭇결이 심하여 조각이 잘 되질 않았다.
칼끝이 엉뚱한 곳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러니 글자의 획이 생길 리 없었다.
한문은 획이 삐침이 생명인데 말이다.
파고 보니 글자가 아니라 그저 체(글꼴)없는 한문에 불과했다
그러나 투박하지만 꼬박 이틀에 걸쳐 주련 2개를 완성했다.
정자에 걸어 둘 작은 현판도 하나 팠다.
정자 이름이 ‘단속정(斷俗亭)이다.
속세를 끊는다는 뜻이니.....
출가한 것도 아닌데 내겐 좀 과한 듯 하다.
다행히 나뭇결이 부드러워 컴퓨터로 수집한
해서체로 새길 수 있었다.
오늘은 모처럼 해가 잠시 잠시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입동이 지났지만 기온은 비교적 따뜻했다.
산촌은 병풍처럼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山이다.
산이 수려하고 숲이 엄숙하니 나의 도심(?)도 높아질까.
그러나 나에게 있어 道心이 있기나 한 걸까.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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