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3.경주남산, 신라인은 바위에 불화를 그렸다.

migiroo 2015. 11. 21. 22:41

 

 >2015.11.16

 

3.경주남산, 신라인은 바위에 불화를 그렸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눈은 있는데 보이질 않는다.

장님은 심안(心眼)으로 보지만 내겐 그런 능력이 없다.

오직 현자(賢者)의 눈만이 심안으로 볼 수 있고

우자(愚者)에겐 영적 눈이 없다.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 여섯 분의 불상을 바위 면에 선으로 그어 그렸다는 뜻이다. 기억자로 어긋난 거대한 바위 면에 새겨진 바위그림 앞에서 나의 눈은 부처(그림)를 알아보지 못한 우자임을 깨닫는다.

 

()은 두 종류의 선이 어지럽게 엉켜 있다. 한 선은 바위 면의 균열로 생긴 자연적인 선이고, 다른 한 선은 불상을 새긴 인위적인 선이다. 두 종류의 선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으니 어느 선이 불화이고 어느 선이 바위 선인지 우자의 눈은 그저 헷갈리기만 한다.

 

 

 

그러니 눈은 있는데 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도면을 들고 보고 나서야 겨우 양 삼존불을 알아본다. 암석은 콜타르를 발라놓은 것처럼 거므티티한 적갈색 이고. 양각(陽刻)이나 음각(陰刻)도 아닌 단순한 가는 선()만으로 불상을 그린 선각(線刻)이니 장구한 세월에 마멸되어 쉽게 분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심안이 열리자와 깨친 자,

그리고 선한 자는 그림이 잘 보인다고 하니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자가 아닌가싶다.

 

아미타삼존불, 석가여래삼존불, 이렇게 여섯 분의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하여 육존불이다.

바위 앞에서 바라봤을 때 왼편 그림이 아미타삼존불이고, 오른편이 석가여래삼존불이다.

 

 

 

아미타여래는 오른편에 대세지보살, 왼편에 관세음보살을 두고 계신다. 그래서 아미타 삼존불이라 부른다. 바위그림에는 서 계시는 아미타여래에게 양 협시불이 무릎을 꿇어 꽃을 바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미타여래를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미타부처님이 취하고 있는 수인은 아미타정인이나 설법인, 항마촉지인을 주로 취한다.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 유명하다.

 

아미타여래는 극락에 상주하시다 때가 되면 착하게 죽은 자를 서방정토(극락)로 인도하기 위하여 행차 하신다. 바로 그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가 바위 면에 새겨진 것이다.

 

 

 

 

석가여래는 오른편에 보현보살, 왼편에 문수보살을 두고 계신다. 그래서 석가여래삼존불이라 부른다. 보현, 문수 양 협시보살은 서 계시고 석가여래는 좌정하여 계신다.

 

오늘 아미타여래와 석가여래 두 분이 경주 남산에서 만났다. 그리고 두 분은 탐욕의 늪에 빠져 참해할 줄 모르고 있는 인간 세상을 걱정하신다. 세상에는 극락에 갈 사람보다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이 더 많으니 부처님들도 걱정이 왜 안 드시겠는가. 자비를 배 푸시는 것도 한도가 있지...

 

어찌할꼬. 어찌할꼬. 이를 어찌할꼬......‘

 

아미타여래도 석가여래도 한 숨만 쉬고 계신다.

 

육존불이 새겨진 바위 위로 올라가니 바위가 실로 거대하다.

바위 속에 우주보다 더 넓은 불계(佛界)가 있다고 하던데....

정말일까,

들어가 볼 수가 없으니 믿기도 어렵고 안 믿자니 두렵다.

이런 말이 있다.

 

岩卽佛 心卽佛(암즉불 심즉불)

 

바위가 곧 부처이고, 내가(마음) 바로 부처이다.

그러니 믿지 않은 것보다 믿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육존불 바위 위를 엉금엉금 기어서

다음 코스로 발길을 옮긴다.

 

3편 끝 4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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