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8.
蔚山
고헌산에 오르다.
2020년을 마지막으로 보내면서 오랜만에 울산 고헌산高獻山에 오른다. 하늘은 온통 회색빛인데 여전히 비 소식은 없다. 가을부터 시작된 긴 가뭄이 겨울 절기 대설이 지났는데도 무심한 하늘은 비를 내려 주시지 않고 있다. 인간들이 뭘 그리 잘못했는지.... 하늘이 좀 가혹하신 듯 하다.
조선시대 고헌산은 신성한 山이라 하여 가뭄이 들면 나라에서 고헌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전하는데 그래서 산 이름을 높을 高, 바칠 獻, 즉 바친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인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가뭄이 길어도 지금은 기우제 같은 것은 미신(?)이라 하여 지내지 않는다.
고헌산에 오르는 길은 동, 서, 남쪽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서로(西路) 택하여 오른다. 등산로 경사도가 원만할 줄 알았는데 제법 가파르다. 칠십대 후반의 노구로는 숨이 가빠 몇 번이고 포기할까 하기도 했지만 정말 기를 쓰고 올랐다. 내 나이 3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는 전국의 높은 산을 거의 다 올랐었다. 그래서 이름난 산악회원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고작 해발 1.000미터 고지도 오로기가 힘이 드니 늙음이 참으로 허망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오늘따라 등산객이 별로 없다. 내 곁을 몇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마스크를 한 사람도 있고 안한 사람도 있다. 산에서 까지 마스크를 써야 되나 하겠지만 등산 도중 코로나 확진 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도 있었으니 산 속이라 해서 안심할 일을 아니다.
산길은 오랜 가뭄으로 바싹 말라 발 디딜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났다. 울산 사람들은 고헌산을 울산의 설악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몇 년 전부터 전혀 눈이 내리지 않는 산으로 변했다. 물론 울산의 다른 산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그만큼 우리의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7부 능선 쯤 올라오니 등산로는 돌계단으로 바뀌었는데 계단 설치한지가 오래 됐는지 대부분 붕괴 되어 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작은 봉우리 3,4개를 넘으니 억새가 무성한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길 중간 중간에 누가 쌓은 것일까, 돌탑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크고 작은 탑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해 보인다. 옛 사람들은 이런 돌탑을 공든 탑이라 하여 탑을 쌓고 소원를 빌곤 했었다. 산의 돌탑은 보통 한 사람이 완성 한 것이 아니라 지나는 사람들이 돌 한 두 개씩을 탑 위에 얹고 다시 다른 사람들이 그 위에 얹고 하여 만들어진 탑들이니 여러 사람들의 염원이 깃든 탑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사이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하얀 햇살이 머리위에서 눈부시게 쏟아진다. 9부 능선 쯤 올라오니 ‘고헌산 서봉(西峯)’이라고 쓴 표지석이 보인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울산 상북면의 크고 작은 촌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들이 가물가물 보인다.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그런데 정상으로 가는 산길은 평탄한데 오래된 나무 데크로드로 되어 있었다. 1900년대 고헌산은 등산객들이 번창한 제법 유명 새를 탄 산 이었음을 데크로드가 말해 주는 듯했다.
기진맥진, 드디어 2시간 여 만에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는 표지석이 있고 낡은 이정표가 쓰러질 듯 서 있다. 그리고 고헌산 정상에는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쌓았는지 제법 큰 돌탑이 하나 서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인도의 ‘스투파’ 같았다. ‘스투파’는 인도 최초의 불탑으로 ‘산치대탑’으로 유명한 탑이다.
고헌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니 울산의 준봉 거산들이 내가 서 있는 고헌산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다. 양산의 영축산, 밀양의 천황산, 울산의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백운산..... 모두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들이다. 그래서 울산(蔚山)의 지명에 ‘山’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가.
정상에 오르니 사방천지 산 아래 인간세가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수없는 산의 준봉(峻峯)들 겹겹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정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하산을 한다. 정상에 오르기까진 힘들어도 하산은 쉬웠다. 인생사도 또한 그러하다.^^^^
山 정보
고헌산高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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