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미탄사 석탑은 황룡사가 불타는 걸 보고 있었겠지!
경주 보문들판 미탄사지(味呑寺址) 삼층석탑 앞에 서 있습니다. 뿌연 아침 안개가 탑 주위를 감돌고 있고,
탑은 천년 시간 침묵의 열반에 들어 있습니다.
보문들판 초록빛 벼들이 미동도 없이 탑을 향하여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
시간이 정지 된 듯 천년사지 옛 절터에는 바람 한 점이 없습니다. 홀로 서 있는 탑도 외롭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 또한 외롭습니다. 지금도 탑은 멀리 보이는 불타 사라진 황룡사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몽전쟁(麗蒙戰爭)
여몽전쟁은 고려와 몽골간의 전쟁을 말합니다. 흔히 고려의 대몽항쟁이라고도 합니다. 몽골제국은 1231년(고종 19년)부터 1259년(고종 46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9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려의 전 국토가 몽골군에 의하여 잔혹하게 짓밟혔습니다. 결국 고려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나라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거덜 나 버렸습니다.
호국 사찰 황룡사의 소실(燒失)
몽골의 제3차 침입 때 였습니다. 서기 1238년 고려 고종 25년 때입니다. 몽골군은 남쪽지방 경주까지 쳐 들어와 황룡사를 불 태웠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황룡사의 사역이 얼마나 컸던지 불은 아흐레 동안 지속됐다고 합니다.
그 장엄한 9층탑도 화마 속에 사라졌고, 황금빛 장육존상도 녹아 사라졌습니다.
거대한 황룡사 범종도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9층목탑이 서 있던 심초석만이 절터에 덩그러니 않아 있습니다.
미탄사 석탑은 불타는 황룡사를 바라보며 망연자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탑자신도 울다 지쳐 끝내 가슴 속의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을 것입니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진지왕(眞智王), 진평왕(眞平王), 선덕여왕(善德女王) 등 4대 왕에 걸친 대규모 불사(佛事)를 통해 국찰(國刹)로서 건축되었습니다.
서기553년(진흥왕 14) 착공 때부터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 군대에 의해 소실될 때까지 오랜 기간 유지된 신라 최대의 사찰로서 건축되어 드디어 서기 645년 선덕여왕 14년에 완공 그 다음 해 646년 9층 목탑이 세워 졌습니다. 이후 신러가 고려에의해 멸망했으나 고려 역시 황룡사를 호국사찰로 삼아 유지 되어 왔었습니다.
미탄사는 황룡사 보다 훨씬 후대인 통일신라 말기 9세기경에 지어졌습니다. 황룡사와 미탄사(味呑寺)는 한 동안 서로 마주보며 존재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탄사는 황룡사가 불타는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봤을 것입니다. 그 후 미타사도 세월 속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1980년, 근대에 들어 쓰러진 미탄사의 삼층석탑을 다시 복원시켰습니다. 그러나 황룡사 9층탑은 이런저런 이유로 복원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미탄사지 석탑은 황룡사 9층탑이 복원되길 간절히 염원하며 황룡사지를 바라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황룡사 옛 절터에는 개망초만 무성하게 피어있습니다.
미탄사는 한문으로 味呑寺 라고 씁니다.
미탄(味呑)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 봅니다.
한자 사전에서 味자는 ‘맛미’ 자입니다.
맛, 감미로운 맛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呑자는 ‘삼킬탄’자입니다.
그러니 ‘味呑’이란 의미는 맛을 삼킨다. 라는 뜻이 됩니다. 절 이름이 왜 맛을 삼킨다는 의미인 ‘미탄’이라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이름을 달았는지 궁금합니다.
무식한 내 나름대로 한번 그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감미로운 맛은 목으로 삼켜야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맛은 물리적이 아닌 정신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아무리 맛이 좋은 음식이나 향기라 할지라도 목이나 코로 넘기지 않으면 그 맛과 향기를 알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깊은 ‘진리’도 내 마음(정신)속에 담지 않는 다면 그 참 진리를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절 이름을 ‘미탄사(味呑寺)라고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침 이슬이 가득 맺힌 논두렁의 풀들을 헤치고 미탄사지를 나옵니다. 나는 떠나는데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내 마음 조금 떼어 탑 앞에 남겨 두고 올 걸 그랬나 봅니다.
탑이 내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탑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마침내 탑도 나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에필로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탄사지, 황룡사지 옆으로 길게 기차 길이 누어있었습니다. 철길은 절대 만날 수 없다는 듯이 두 개의 레일이 평행선을 긋고 있었습니다. 왜 만날 수 없다는 것인지.... 만날 수 없는 고통이 얼마나 아픈지 아는 사람만 압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철마가 지축을 울리며 철길을 지나갔습니다. 호국사찰이었던 황룡사지,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신문왕릉, 미탄사지 등의 지맥(地脈)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일제강점기에 놓은 철길이었습니다, 바로 동해 남부선입니다. 이런 동해남부선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설치됐었는데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불과 몇 년 전에 노선이 경주외곽으로 바뀌어 비로소 중요 유적지가 철마의 굉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됐습니다. 그러나 철길 노선의 변경으로 좋아는 졌지만 그 이면에는 예기치 않게 나쁜 점도 생기기 마련, 바로 경주 시민들의 교통이 불편해 졌다는 점입니다. 동해남부선이 지나는 불국사역, 경주역을 비롯한 40여 곳의 간이역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앗차! 미탄사지 이야기를 하려다 옆길로 빠진 듯 합니다.
미탄사지를 나와 동궁과 월지로 향합니다. 안압지로 더 유명한 월지 주변 인공 연못에 조성된 연꽃 밭을 둘러봅니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연꽃도 잠시 후면 꽃이 지고 죽을 것입니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 진리입니다. 나도 당신도....
바로 생사(生死), 생멸(生滅) 진리입니다.
진흙 속에 피어 나는 한 송이 연화, 바로 진리입니다.
>20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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