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부처님 어떻게 해야 편히 서 계실까요

migiroo 2009. 10. 6. 19:04

 

[조선일보] 2007/09/21 기사

 

“부처님 어떻게 해야 편히 서 계실까요”


경주 여래입상 초기 천재지변 있었던 듯 헬기·크레인도 안돼 유압 잭으로 세워야 ...

 

130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부처님은 잘생겼고 당당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10일, 경주 남산 열암곡에서 지난 5월 발견된 여래입상의 전체 모습을 공개했다. 바위에 조각한
이 불상은 발견 당시 왼쪽 다리 등 일부만을 제외하고는 흙 속에 묻혀 있었다.

이 불상은 지난 5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이 불상이 발견된 지역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는 원래 목 없는 좌불상이 하나 있었는데, 올해 들어 그 불상 주변에 있었을
암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때 발견한 게 여래입상이었다. 당시 여래
입상은 왼쪽 다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흙에 덮인 상태였다.

 

 



▲ 5월 말 경주 남산 열암곡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마애불상. 불상의 높이 5.6m,

무게는 70t에 달한다. /연합뉴스

 

최근 연구소측이 발표한 중간 발굴 결과에 따르면, 무게 70t, 높이 6.2m 돌에 높게 돋을새김(양각·
陽刻)한 이 여래입상은 불상 높이 5.6m, 얼굴 높이 1.2m의 ‘수퍼 헤비급’이다. 서기 8세기 후반~
9세기 초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주에는 여러 차례 지진이 있었다”
며 “불상 얼굴에 풍화된 흔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천재지변으로 조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으로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불상은 자연적으로, 또 인위적으로 훼손된다. 풍화가 자연적
훼손이라면, 불상 코를 갉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俗信)은 인위적 훼손을 낳는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엎어지면서 불상은 최상 조건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이 연구소 지병목 소장은 “모든 문화재는 원래 상태대로 있어야 하므로, 이 불상 역시 세워야 옳다”
고 했다. 한데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불상을 세울 때 헬기나 대형 크레인 등을 동원하면 된다. 연구소측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헬기는 보통 50t 이하의 물건을 세울 때 쓰인다고 한다. 70t에 이르는 불상을 세우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헬기는 그래서 ‘아웃’이다.

대형 크레인은 이게 가능하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크레인이 불상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길이
500~600m, 폭 2m 도로를 내야 한다. 불상은 현재 경사가 거의 45도에 이르는 비탈진 곳에 엎어져
있으며, 등산로조차 나 있지 않다. 경주 남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라 있다. 때문에 길을 내려면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에서 불상 하나 세우자고 남산에 길을 내는
것을 승인할 리가 없다. 크레인도 역시 ‘아웃’이다.

현재로서는 유압(油壓)잭(jack)을 사용하는 게 불상을 들어올리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유압잭은 그리
크지 않은 것 여러 개를 이용해 100t 가까운 물건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상을 세우기에 앞서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불상이 원래 서 있던 위치를 정확히 찾은
다음에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불상이 45도 가까운 급경사에서 앞으로 쓰려졌으므로, 원래 자리는
현재보다 경사면 위쪽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데 연구소측은 “불상 위쪽 지역을 조사했지만,
원래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지 소장은 “불상을 일단 옆으로 누인 뒤 그 자리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불상이 앞으로 쓰러지면서 그때 생긴 ‘탄력’으로 오히려 위쪽으로 밀렸을 가능성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소측은 “불상의 원래 자리를 찾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일단 눕혀서 관람객이나

참배객을 맞은 뒤 원래 자리를 찾으면 그 때 세우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측은 “불상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틀어서 눕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계 방향으로 90도를 틀면 누일 만한 공간

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 불상이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5㎝의 기적’ 덕분이기도 하다”고 했다.
불상 주변 토양은 기본적으로 암반층이었다. 불상이 엎어진 곳에도 큰 돌이 있었다.

만약 불상이 엎어질 때 얼굴이 돌에 직접 닿았다면 깨지는 등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데 불상

머리카락(=나발)이 삐죽 튀어나온 돌에 먼저 닿으면서 얼굴은 돌에 직접 닿지 않았다. 얼굴과 돌의

거리는 불과 5㎝였다.

 

▶ 글 : 신형준 기자 hjsh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