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南山 斷想

●불곡 감실불(龕室佛)

migiroo 2009. 10. 20. 00:00

 

 

●불곡 감실불(龕室佛)

 
금년 들어 두 번째 경주남산을 헤맨다.
정초부터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하고 착잡한 걸까?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이유 일까?
늙음을 한탄함일까?
아니면 人生의 무상함 때문일까? 


산길은 엊그제 내린 비로 젖은 땅이 꽁꽁 얼어있었다.
동남산 남천이 흐르는 갯마을 너머 불곡(佛谷)이다.
살얼음이 살짝 낀 작은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키 작은 대 숲이 길 양쪽에 빼곡히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윽고 감실(龕室)에 이르렀다.
감실 안에는 어머니 같은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주변은 찬 냉기로 가득했고 대 숲 소리만이 간간이 들릴 뿐
고요한 적막(寂寞)만이 부처님과 함께 하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겨울 산 속.....
밤새 꽁꽁 얼어 있었던 땅 바닥은 누런 속살을 다 드러낸 체
한 낮 따뜻한 햇볕에 살짝 녹아 신발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부처님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좌정하고 계시고....
당신을 찾아 온 나에게 눈길은커녕 미동조차 없으시다. 
 
 

 

 


어쩜 저리도 우리 어머니의 모습일까....
어쩜 저리도 우리 할머니의 모습일까...
근엄하고 자비에 가득 찬 부처의 상이 아니다.
자식들 걱정에 근심으로 가득 찬 어머니의 모습이다.

 
오전 11시 30분, 해가 중천에 떴다.
마침 따뜻한 햇살이 감실 안을 비추어 차디찬 냉기를 식혀 주었다.
밤새 얼마나 추우셨을까?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실까?

 
불계(佛界)의 千年은 속계(俗界)의 一年쯤이나 되는 것일까...?
아님 十年 쯤 되는 시간 개념일까...?
어찌 천 수 백 년 동안을....
저렇듯 한 점 미동조차 없이 앉아 계실 수 있을까.
고개를 조용히 숙이시고 눈을 지그시 감으신 체
깊은 명상에 드셔 계신 부처님....

 

             

 

바위 속에 있다고 해서 “감실(龕室)부처”이다.
문화재 당국에서 붙인 공식 명칭은 “경주남산 불곡석불좌상” 이다.
불곡(佛谷), 불(佛)의 골짜기라는 뜻인데 이름이 조금은 길고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저 이 석불을 “감실부처” 라 부른다.
감실이라 해 봤다 깊이 한자 반 정도 밖에 안 되는 굴이다.
겨우 비바람을 직접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감실이다.


그 감실 안에 좌정하고 계시는 부처님....
아직도 끝나지 않는 어쩜 영원의 명상에 잠겨 계신다.
나는 오늘 이 분 앞에 서서 나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닌 허상(虛像)임을 안다.
온갖 욕망과 집착과 가식과 자만과 이기에 찬 모습이다.
본래 내 모습이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내 모습은 부처였었는데...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럼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감실부처님은 알고 계실까?
찬바람이 내 어께를 스치고 대 숲속으로 사라진다.

이윽고 나는 부처님께 미처 작별의 인사도 없이 감실을 뜬다.
오래 있기엔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서둘러 하산을 하여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뿔싸~
장갑 한 짝을 잃어 버렸다.
아무리 찾아 봐도 장갑이 없다.
분명히 산에 올라 갈 때 끼고 갔었는데...
어디서 잃었을까 행방이 묘연하다.

 

 갈색의 쎄무 가죽 장갑....
20년 넘게 나와 함께한 장갑이었다.
그 장갑 한 짝을 잃어 버렸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쉬울까.


장갑을 찾기 위해 다시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감실까지 오면서 주변을 샅샅이 찾아 봐도
잃어버린 장갑은 끝내 보이질 않았다.
다시 하산 하면서 길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래도 없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다가...
20년의 긴 세월을 함께한 지기(知己)를 추운 산속에
버려두고 가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보기로 했다.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다.
감실부처님 앞까지 왔다.
그러나 역시 장갑은 발견하지 못했다.
감실 부처님이 오랜 침묵을 깨시고 나에게 물으신다.

 

 
“왜 자꾸 왔다 갔다 하노...?” 
“네 부처님, 제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려서요.”
“그 놈의 장갑 하나에 왜 그리도 집착 하노...” 
“부처님 제 장갑 좀 찾아 주세요.”
“집착을 버리고 그냥 가거라...”
“안 됩니다.”


나는 모자를 벗어 합장하며 부처님께 작별 인사를 했다.
그 때다.
잃어버린 장갑 한 짝이 발밑으로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장갑이 하늘에서 떨어져나, 땅에서 솟았나....
.........?

장갑은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 부처님이 장갑을 찾아 주신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찾게 된 것일까?
..........
.........

장갑은 찾았지만....
잃어버린 내 자신은 찾지 못했다.
해는 어느새 산머리를 넘어 가고 있다.
감실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신다.


“그래 맞아, 부처님이 찾아 주신 거야... ”


혼자 중얼거리며 하산을 한다.
장갑을 낀 손이 따뜻해 온다.
부처님의 체온이 장갑을 통하여 온 몸으로 전해 왔다.


>未知로 가는 길....(1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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