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
아침 겨울 하늘이 잿빛이다. 또 경주남산에 오른다. 서남산 냉골(삼릉골) 계곡을 따라 금오봉 정상으로 향한다. 냉골, 찬 골짜기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길은 처음 완만했으나 능선에 가까올 수록 제법 가파르기 시작한다.
1 시간 반 남짓 숨을 헐떡거리며 산허리 쯤 올라 왔나 이윽고 작은 암자 상선암이 보인다. 상선암 오르는 길, 예쁜 오솔길이었었는데.... 언제 놓았는지 오솔길이 나무계단으로 변해있다. 이런 산사의 암자 길까지 돈 드려가며 속세의 편리한 이기(利器)로 바꾼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한 것인지 알지 못하나? 계단을 오르는 마음이 내내 편치가 않다. 계단은 모두 68개 였다.
겨울 암자는 너무 춥고 쓸쓸하다. 절집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초라한 암자 건물.... 속세의 가난한 여염집 모습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건물이 두체, 주말이면 등산객들로 늘 붐비던 것과는 달리... 나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남산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이면 반드시 거쳐 가야하는 암자인데도 시주(施主)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지 절은 그렇게 궁색해 보였다.
그래도 암자임을 증명하듯 건너편 법당 안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여자 목소리다. 낭랑한 염불소리가 아니라 피곤함이 섞인 목소리.... 비구니인가...? 법당 안을 기웃거려 보니 잿빛 옷을 입은 보살님이시다. 보살은 불단을 향하여 연신 절을 올리며 관세음보살을 외고 계신다. 무슨 간절한 소망을 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업장의 소멸을 기원하고 있는 것인지... 그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찡해 온다.
제법 찬바람이 암자 지붕을 타고 지나간다.
나는 암자 쪽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다. 갈증과 시장기로 배 속에서 쪼르륵 소리를 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아침 식사도 빵 한 조각과 우유한 잔으로 때웠는데... 작은 쪽마루 바닥 냉기가 엉덩이를 타고 올라왔다. 담아 온 물병을 입에 대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마루 구석에 작은 소쿠리 하나가 보인다. 소쿠리에는 하얀 인절미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아무 것도 덥지 않은 소쿠리는 개방된 상태였다. 인절미를 보는 순간 시장기가 엄습해 온다. 꿀꺽~ 군침이 나오면서 또 배에서 쪼르륵 소리를 낸다. 식욕은 인간의 본능인가 ? 그렇다고 어찌 남의 것을 흠처 먹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갈등했다. 인절미를 하나 흠처 먹을까 참을까 하고.... 건너편 법당에서는 여전히 보살의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벌떡 일어나 잽싸게 소쿠리의 인절미를 두 개 집어서 입에 쑤셔 넣고는 황급히 암자를 벗어났다. 보살의 염불소리가 내 꽁무니를 잡고 늘어졌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다. 인절미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아니야, 아마도 그 인절미는 암자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나씩 집어 먹으라고 부처님이 마루 끝에 놔두신 것일 거야...“
나는 이렇게 혼자 중얼 거리며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상선암을 벗어나 가파른 길을 조금 올라가 앞을 바라보니 눈앞에 커다란 바위를 등지고 눈을 지그시 감으신 큰 부처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부처님은 산 너머 아주 멀리 속세를 바라보고 않아 계셨다. 방금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 같은 모습으로...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58호로 지정된 공식 명칭이다. 보통 “상선암마애대불”이라고 부른다.
자연암반을 파내어 광배(光背)로 삼고 마애불을 새겼는데 불상의 머리 부분은 선각이 아닌 고부조(高浮彫)의 높은 돋을새김인 입체에 가깝게 새겼고, 몸은 선각(線刻)으로 표현하여 마치 바위 속에서 홀연히 솟아 나온듯한 모습이다. 석불은 대불이며 이는 남산에 현존하는 석불 중 두 번째로 큰 석불이다.(높이 5.2m, 너비 3.5m)
옷자락의 선이 유연하고, 보일 듯 말듯 한 미소와 뜬 듯 안 뜬 듯 한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옷깃을 여미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만큼 석불의 인상이 근엄하고 위엄하기 때문일까?
부처님이 앉아 계신 대좌(臺座)는 두 겹의 연꽃 보상화 무늬다. 옷 주름은 유연하지만 안개에 싸인 듯 선이 뚜렷하지가 않다. 석불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조각술은 신의 마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아까 상선암에서 인절미를 흠처 먹은 것을 후회하며 대불 앞에 엎드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어찌 부처님이 떡 하나 흠처 먹은 나를 책(策)하시겠는가.... 나의 부질없는 마음일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집착(執着)이 아니겠는가?
금오봉 정상에 올랐다 하산을 하니 벌써 빠른 겨울의 어둠이 남산에 드리우기 시작한다.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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