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11.여행자들의 휴식처 '오차'...

migiroo 2009. 10. 22. 01:15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화려한 침실에서 잠을 자는 왕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고 호사스러운 생활과....
막대한 권력을 누리며.... 
하지만 수세기가 흐른 지금 산천은 그대로 인데 찰나를 사는
인간은 가고 없고 당시의 영광은 폐허로만 남아 후세들에게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지금까지 보지 못한 또 다른 인도의 모습이 펼쳐졌다. 온통 푸른 숲과 아름다운 새소리, 맑고 상쾌한 공기는 여기가 정말 인도인가 싶을 정도였다.
어젯밤 깊은 밤중에 도착하여 주위의 경치를 볼 여유도 없이 바로 잠들고 말았는데 날이 밝은 오늘 아침의 풍경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잔디가 잘 정돈된 호텔 정원에는 야외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하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는데 일찍 일어난 일행들은 벌써 그곳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룸메이트를 깨워 서둘러 정원으로 나갔다. 모두들 전원적인 풍경에 기분이 좋아서인지 어제의 힘든 일정을 잊은 듯 표정들이 밝았다. 환한 웃음으로 서로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다.
아침 식사를 시키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텔 앞에는 맑은 "베트와"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낮은 구릉의 언덕에는 폐허가 된 궁전들이 옆서의 그림처럼 고풍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푸른 잔디위에서 아름다운 경치와 더블어하는 식사는 우아하기까지 했다. 따끈한 모닝커피를 마시며 분위기에 젖으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기가 아쉬웠다.

 

 

 

"오차"는 한적한 시골의 한 마을인데 주위에는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이곳은 1,600년 경 무굴제국의 제항기르 황제의 치세 때에 최고의 번성기를 누린 곳으로 그 시절에 지은 궁전과 성이 무려55개에 달한다고 하니 굉장히 융성한 도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은 곳곳에 그때의 궁전들이 폐허로 남아 피곤한 여행객의 심신을 쉬게 해주는 작은 시골마을로 전락해 버렸다.

우리는 제일먼저 오차의 유적지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거대한 건물인 제항기르 궁전을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한적한 시골길은 시끄러운 차 소리도 안 들리고 매연을 뿜는 오토릭샤도 없고 동물들의 배설물도 없어 자꾸 인도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였다.
"베트와"강을 건너는 다리에는 노인들이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다.
이제는 걸인들을 보아도 마음에 큰 동요가 일어나지 않고 담담하기만 하다. 수많은 걸인들에게 몇 푼의 돈을 던져 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니 바로 제항기르 궁전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궁전의 곳곳에는 정교한 솜씨의 조각들이 수려하게 남아있었는데 건물의 기둥 위에는 코끼리가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 많이 있었다. 이렇게 크고 웅장한 궁전을 떠받들고 있으려면 코끼리처럼 힘이 센 동물이라야 된다는 생각에 조각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상상을 하면서 요리조리 나있는 미로를 따라 넓은 궁전을 돌아다녔다.

 

바로 옆에 위치한 "쉬시마할" 궁전은 호텔로 개조하여 관광객을 받고 있다. 우리 일행 중 20여명도 어젯밤 이곳에 묵었는데 밤늦게 도착하여 숙소를 보니 공포 영화에서 보던 유령의 성처럼 으스스해 보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캄캄한 한밤중에 호텔이라고 하는 곳이 폐허가 다된 궁전이니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굉장히 운치가 있어 보인다. 수백 년 된 궁전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행운이 나에게는 없어서 안타까운데 이곳에 묵은 사람은 유령의 집 같아서 잠을 못 잤다고 하니 저마다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성 밖에는 후궁들이 살았던 여러 체의 별궁들이 폐허가 된 체 방치되어 있었는데 허물어진 벽에는 아직도 색체가 선명한 그림들이 속살처럼 밖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 한번 찾아줄지 모르는 왕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았을 후궁들을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궁전을 쳐다보며 오지 않는 왕을 그리며 한숨 지며 세월을 보내었을 것이다.


 

 

"라즈마할"궁전에는 전망이 탁 트인 2층에 왕의 침실이 있었는데 벽에는 아름다운 벽화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유적지를 볼 때는 폐허가 된 현재의 상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보아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전망 좋은 화려한 침실에서 잠을 자는 왕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고 호사스러운 생활 속에 나날이 즐거운 유흥을 즐기기도 했으며 막대한 권력을 누리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일생을 살았으리라…….
하지만 수세기가 흐른 지금 산천은 그대로 인데 찰나를 사는 인간은 가고 없고 당시의 영광은 폐허로만 남아 후세들에게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을 뿐이다. 

 

 궁전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로 길거리에 즐비한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에도 한국인이 많이 오는 듯 식당이름이 한글로 표시된 곳도 여러 곳이다. 원빈식당이라 이름 붙여진 데도 있고 한글로 된 메뉴판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간 식당에는 한글로 이렇게 써있었다. 김치볶음밥 40루피, 수제비 35루피, 김치 5루피, 인도에서 한글을 보는 느낌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경제력이 높아서 이 먼 곳 인도까지 여행객이 많이 온다는 사실에 우쭐한 마음과 함께 인도인이 한국인을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의문점이다. 한국인들을 모두 돈 많은 부자로 여겨 바가지를 엄청 씌우는 그들은 우리를 완전히 봉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할 것이다. 인도식당의 김치는 가늘고 길쭉한 인도 무로 만든 깍두기 비슷한 것인데 허여멀건 것이 김치 흉내만 낸 것이지만 그래도 김치라서 그런지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이 있다. 베지터블 프라이드 라이스에 고추장을 넣고 비벼서 김치를 한 그릇 다 먹고 자리를 일어났다.

 

 

 

오후에는 "차투르부즈 만디르"라는 사원에 갔다. 우리들은 "오차"마을의 전경을 보기위해 사원의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기로 욕심을 내었다. 인도의 유적지에는 관광객들에게 슬며시 접근하여 괜스레 아는 척 설명을 해주며 주위를 서성이다가 나중에는 가이드 비용을 요구하는 현지인들이 많다. 평소에는 그들을 의식적으로 피해 다녔지만 탑 꼭대기까지 안내 받고 싶은 욕심에 그냥 못이기는 척 따라갔다. 폐허가 된 유적지 곳곳에는 앵무새들을 볼 수가 있는데 노랑과 초록색의 깃털로 장식된 새가 지붕에 앉아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좁아지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하여 플래시를 비추며 현지인을 따라 갔다. 탑에 가까이 가니 앵무새들의 둥지인 듯 분비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원형의 돔으로 된 지붕에는 수많은 앵무새가 앉아있고 인기척을 느낀 앵무새들이 푸르르 하늘로 날아올랐다.

탑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숲 속에 쌓여있는 고성들이 보이고 초록빛 밀밭과 아름드리나무는 마치 평화롭고 아늑한 수채화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기념촬영을 하느라 서있으려니 고소공포증으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탑 꼭대기까지 오르기를 참 잘 한 것 같다. 늘 상 밑에서만 구경하다가 탑에 오르니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탑까지 안내한 인도인에게 10루피를 주자 생각보다 적은 듯 표정이 굳어진다. 얼마를 예상 했을까? 이젠 루피의 가치도 어느 정도 알게 되어서 함부로 쓰지 않기로 했다. 고맙다는 말만 간단히 하고 뒤돌아서 다음 장소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락쉬미 나라얀 만디르"는 좁은 길을 따라 20여분 걸어가니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17-19세기 사이에 그려진 벽화들이 천정과 벽에 빼곡히 그려져 있는데 세포이 항쟁(영국의 식민 통치에 대항한 인도인들의 항쟁)당시에 "잔시"의 여왕이 영국군과 접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색체도 선명히 남아있었다. 리얼하게 묘사된 전투장면을 보니 얼마나 치열한 항쟁 이였는지 실감이 났다.
"잔시"의 여왕이었던 "락쉬미바이"는 현재에도 민중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고 하니 추앙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완두콩과 감자, 토마토, 당근을 샀다. 이곳은 아직 시골이라 그런지 장사꾼들도 그리 영악스럽지가 않았다. 눈이 예쁜 조그마한 인도 소년이 자기만큼이나 귀여운 새까만 아기염소를 안고 서있다. 내가 쳐다보자 수줍은 듯 살짝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앙증맞다.

저녁 무렵 몇몇의 일행들과 함께 "베트와" 강 주변을 산책했다. 강가에는 붉은색 화강암이 즐비하게 깔려 있고 맑은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성벽위로 올라가 강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다. 건너편에서 어떤 남자가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밤8시 호텔 정원에서 우리일행을 이끄는 가이드가 개인비용으로 가든파티를 열었다. 주위가 온통 어두운 밤에 장작불을 밝히니 한결 운치가 있어 보인다.


인도 음식을 뷔페로 하고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공연단도 불렀다. 모두가 즐거운 듯 인도무희가 추는 춤도 따라 추며 그들과 함께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장작불 옆에 앉아 "킹피셔"맥주를 마시면서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서 늦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오차는 고달픈 인도여행에서
심신을 쉬게 해준 아늑한 휴식처로 기억될 것이다. 


>글 : 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