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9.타지마할, 그 순백의 아름다움....

migiroo 2009. 10. 18. 00:28

 

 

 

서서히 여명이 떠오르고 햇빛을 받은 타즈마할은
순백색에서 점차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태양이 다 떠오를 때까지 한곳에 서서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타즈마할의 모습을 지켜보며 순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본문 중에서...)

 

 

타즈마할의 일출을 보려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해가 떠오를 때 흰 대리석의 타즈마할이 붉게 물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매연을 뿜는 오토릭샤는 근처에 갈수 없다 하여 사이클 릭샤를 타고 새벽의 추운 길을 숄로 몸을 감싼 체 떨면서 갔다. 인도를 상징하는 유적지인 타즈마할은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자한의 부인인 뭄타즈 마할의 무덤이다.


 

 


샤자한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였던지 14번째 출산을 하다 세상을 떠난 왕비를 위해 무려 22년간에 걸쳐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타즈마할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국고를 너무 낭비한 나머지 국민의 원성을 사게 되고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아그라성에 갇혀 쓸쓸히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아직 동이트기 전에 타즈마할에 도착하였는데 입장료도 엄청 비싸서 5달러에 다시 200루피를 더하여 지불하였다. 검문검색도 얼마나 철저한지 국제공항의 검색대를 방불케 했다. 아무런 짐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며 뾰족한 물건은 볼펜도 안 되고 껌 하나라도 절대 안 되며 심지어는 전자계산기도 안 된다고 했다. 전자계산기가 타즈마할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인도는 타즈마할 하나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유난스럽게 검색을 하니 더욱더 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아냈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득히 아침안개에 쌓인 타즈마할이 시야에 들어왔다. 중앙의 긴 연못을 걸어서 가까이 다가가자 점점 더 명확한 자태를 볼 수 있었다.

온통 붉은색 투성이의 건물만 보다가 순백색의 대리석으로 된 아름
다운 타즈마할을 보니 신선한 충격으로 무아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지저분하고 혼잡하며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잿빛 도시의 인도만 각인되어진 나의 눈에는 타즈마할이 도저히 인도의 한 곳이라고 믿기지가 않았다. 이렇게 황홀하게 아름다운 건물이 보석처럼 숨어서 빛나고 있었다니…
서서히 여명이 떠오르고 햇빛을 받은 타즈마할은 순백색에서 점차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태양이 다 떠오를 때까지 한곳에 서서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순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타즈마할의 내부에는 3개의 가묘가 있었는데 진짜 묘는 지하에 위치해 있고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건물 내부와 외벽에는 대리석에 꽃 모양의 무늬를 떠서 파낸 후 각종 색깔의 돌로 끼워 맞춘 상감기법(象嵌技法)의 화려한 장식을 볼 수 있었는데 얼마나 정교한지 그저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부인을 위하여 이렇게 공을 들이다니 왕이 아니더라도 남편감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살아서나 죽어서도 한없는 사랑을 받는 뭄타즈마할이 여자로서 부럽기만 하다. 나도 그런 사랑을 받아보았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인도에 온 후로 최고의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타즈마할을 본 것 하나만으로도 인도에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자꾸 뒤돌아보며 내 곁에서 멀어져가는 타즈마할에 미련을 남긴 체 발걸음은 아그라 포트로 향했다.

무굴제국의 5대왕인 샤자한은 광적일 정도로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3대 왕인 "악바르"가 건설한 아그라 포트 또한 웅장하고 화려한 성으로 바꾸어 놓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이 성에 유배되어 8년 동안 비참한 말년을 보내었다.


그가 갇혀 지냈던 아그라 성안의 "무삼만버즈"는 포로의 탑이라고

하는데 그 곳에서 왕비가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쓸쓸히 생을 마감했을 샤자한을 생각하니 그의 슬픔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무삼만버즈에서 바라본 타즈마할은 아름다운 자태로 아그라 성을 같이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샤자한과 뭄타즈마할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영적인 교감을 가졌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그들의 애잔한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그라 포트를 보고난 뒤 타즈마할 남문 근처에 있는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갔다. 식당이름이 "싼까라"이고 주인은 인도사람 이었는데 한국인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우리들은 수제비와 김치볶음밥을 시켰는데 배추가 귀한 곳이라 무김치로 볶음밥을 만들어 왔다. 수제비도 한국의 수제비와는 맛이 조금 달랐지만 우리음식을 먹는다는 기쁨 하나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비웠다. 후식으로 바나나 라시를 먹었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었다.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파테뿌르시크리로 관광을 나섰다. 버스의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인도의 거리풍경은 너무나 삭막하다. 가로수들과 집들은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그로인해 사람들의 옷차림도 하나같이 잿빛이다. 피부도 까만 그들에게 옷마저 색깔이 없으니 우중충하고 무미건조하였다.
버스 운전사에게 초콜릿을 건네니 어느 시장에 잠시 차를 멈추고 땅콩을 사서 우리에게 준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보아왔던지라 답례로 무언가를 받아보기로는 인도에 와서 처음인 것 같다. 대체적으로 서민층의 인도 사람들은 순박하다. 늘 먼저 인사를 하는 쪽도 그들이며 순수한 호기심으로 우리를 대했다. 관광지의 릭샤꾼과 장사치들은 그저 단순히 몇 푼의 돈을 더 받으려고 너무 잔머리를 굴리는 정도이다. 아그라의 릭샤꾼들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니 조심하라고 가이드북에 써있었지만 우리가 만난 릭샤꾼들은 생각 외로 너무나 순박하였다. 어느 나라에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들이 뒤섞이어 살고 있듯이 인도에도 그런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갈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파테뿌르시크리는 악바르 황제가 15년간 잠시 수도로 삼았던 곳인데 이곳을 수도로 삼은 이유가 이러하다. 후사가 없던 왕에게 파테뿌르시크리에 살던 수피성자가 세 명의 아들을 얻을 것이란 예언을 해주게 되고 후사를 얻게 되자 감사의 마음으로 수도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물이 부족하여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되자 다시 수도를 아그라도 옮겼고 파테뿌르시크리는 점차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화려한 타즈마할과 아그라포트와는 달리 이곳 에서는 투박하고 장엄한 폐허를 볼 수 있었는데 손상이 거의 없는 파테뿌르시크리는 조용한 중세기의 한 지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여기서도 조잡한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걸인들이 줄줄이 따라 다녔
는데 얼마나 끈질긴지 무언가를 줄때까지 따라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떤 아이에게는 초콜릿을 주기도 하고 집요하게 따라오는 사람에게는 들고 있던 양말을 주기도 했다.

 

 

 

인도여인들은 장식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거리의 걸인일지라도 팔찌 귀걸이는 기본이고 코걸이와 발찌에 발가락 마디마디 마다 링을 끼고 있다. 신분이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모두들 치렁치렁하게 장식을 하고 있는데 부유한 사람들의 장신구는 좀 더 고급스럽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저녁에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같은 일행들과 맥주를 마시며 오늘 본
것에 대해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찌된 일인지 인도에 와서 그 비싼 맥주를 매일 마다 마셔대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사면 그 다음은 또 내가 사야하므로 자주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살을 빼려는 목표가 확고했었는데 이제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버렸다. 더 찌지나 않으면 천만다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너무 많은 곳을 보니 모든 영상들이
뒤섞이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타즈마할의 아름다운 모습은 명확하게
나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으니
오늘밤 꿈에는 타즈마할을
한 번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 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