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삼존불, 그 심연의 미소여!
오늘은 일요일 또 남산에 간다. 경주남산에 미친 사람이 여럿 있다 들었는데... 나도 그 대열에 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열정적으로 한 가지 일에 미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열정이 없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천년 신라인들의 정신적 성지(聖地)였던 남산에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기도 하지만 산 또한 정말 좋다. 비록 500여 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높지 않는 산이지만 설악산, 지리산, 태백산 같은 거산(居山)들을 한데 합쳐 축소 해 놓은 듯한 산이 바로 경주 남산이다. 그리고 경주 남산은 그냥 단순한 산이 아니고 신라인들에게는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須彌山)이다.
그러니 산이나 문화유적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경주남산에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리라. 남산에 오르면 수많은 문화유적을 접할 수 있고 덩달아 산행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인 셈이다.
이제 6월도 중반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 한여름이 아닌데도 한낮의 더위가 보통이 아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체감으로 느껴온다. 벌써 남쪽지방 바다 속에는 열대성 해조류와 어종이 서식, 기존의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는 소식이다.
작금의 온난화 현상은 자연현상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는 인간의 무분별한 행태에서 비롯되고 있는 자업자득의 현상이다. 아마도 머지않아 인간의 과학문명이 지구를 망가트릴지도 모른다. 신에 대한 인간의 자만과 오만, 그것은 자멸로 이어질 것이다.
이야기가 엉뚱한 길로 새 버렸다.
날씨가 덥다고 피해봤자 더위가 피해 가겠는가? 더위도 못된 인간에 대한 신의 자비로운 보속(補贖)일 것이다. 겸허히 받아 드려야 한다.
해서 또 경주 남산을 찾는다.
오늘은 남산의 선방(禪房)골 불적(佛蹟)을 찾아보기로 한다. 선방골이란 남산의 한 골짜기 이름이다. 부근에 선방사(禪房寺)라는 옛 신라시대 절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그런데 선방골이 배리(拜里)로 변했다. 마을 이름도 선방마을이 아니라 배리마을이다. 그 유명한 보물63호인 삼존불 이름도 ‘배리삼존불’이다. 배리의 배(拜)자는 절 배(拜)자인데 왜 절 배자가 붙었는지 알아보자. 쉽게 말해서 부처님께 절 많이 올려 복 받으라는 뜻이다. 배리마을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 된다.
아주 옛날 남산 서쪽 어느 마을에 지체 높은 한 재상(宰相)이 살았다. 그는 부모님 기일에 덕망 높은 스님을 모셔와 제(祭)를 올리기로 했다. 당시의 관습은 조상님 제사에 스님을 모셔와 불공을 드리는 것이 관례였고 지극한 효심으로 여겼다.
제상은 부모님 기일을 맞아 아랫사람을 시켜 덕망 높은 고승 한분을 모셔오도록 했는데 아랫사람이 덕망 높다고 모셔온 스님의 행색을 보니 남루한 옷차림에 몰골이 꾀죄죄한 길거리의 탁발승으로 밖에 안 보였다. 이에 기분이 상한 재상은 염불하는 스님에게 다가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제상은 아랫사람을 소리쳐 이렇게 꾸짖었다.
“네 이놈, 훌륭한 스님을 모셔오라 했거늘 이런 초라한 떠돌이 중을.....”
하고 소리치더니 이번에는 염불을 하려는 스님에게 다가가
“네가 무슨 고승이냐 썩 물러가라!” 하고 스님을 밖으로 나가라 했다.
그리고 아랫사람에게 다시 다른 스님을 모셔 오도록 지시했다. 이에 스님은 재상을 한 동안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조용히 일어나 자신의 옷 속에서 한 마리의 사자를 꺼내더니 그 사자를 타고 하늘로 날아 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제야 정신 번뜩 든 재상은 자신의 실수와 경솔함을 깨닫고 스님이 사라진 방향을 향하여 수 없이 절을 올리며 잘못을 빌었다. 그로부터 이 마을을 절하는 마을이라는 뜻의 배리 마을이 된 것이란다.
덕망 높은 스님을 알아보는 안목이 신분이 낮은 아랫사람보다 못한 제상의 안목....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는 전설이다.
옛 전설이나 설화가 현대에서는 어쩌면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반듯이 그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새겨 두어야할 교훈과 가르침이 있다.
위의 전설은 상대의 얼굴 모습이나 겉으로 보이는 외양만 보고 그 사람의 가치를 따지지 말라는 교훈이고 가르침 일 것이다.
이런 의미를 마음속에 새기면서 “배리삼존불”을 친견해 보자.
배리삼존불은 통일신라시대 이전 7세기경에 조성된 세분의 석불입상이다. 이 삼존불은 그 은은한 미소 때문에 서산마애삼존불, 그리고 남산의 장창골 삼존불과 더불어 유명해진 석불이다.
가운데 본존불은 아미타여래이고, 우협시불은 대세지보살, 좌협시불은 관세음보살이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절을 올리고 간다. 절을 올리는 행위는 단순히 예배 의식의 차원을 넘어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수행이다.
특히나 본존불을 비롯하여 세분의 얼굴 표정이 어쩜 그리도 티 없이 맑은 동안(童顔)의 미소인지.... 그 미소를 한번 흉내 보려 하지만 어색하기만 하다. 미소는 표정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가시적인 표현이다.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생각이 진솔하지 못하니 아무리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지어보려 하지만 그런 미소가 나올 리 없다.
석불을 쪼아 만든 석공은 아마도 저 같은 미소를 지울 수 있는 마음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배리삼존불 유적지의 달라진 주변 환경 정비
배리삼존불은 인근의 선방사라는 옛 절터 땅 바닥에 흩어져 누워 있던 것을 1923년에 모아 세워 놓은 것이다. 그 후,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 전에 불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담장을 설치하고 비바람을 막기 위한 보호 건물을 지었다.(위 사진) 그런데 석불의 규모에 비하여 건물과 담장이 너무 작고 좁아서 답답하고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음습하기까지 하여 오히려 석불의 보호역할에서 역기능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 하고 있다는 여론과 학계의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런 주장은 저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의 보호 전각과 같다. 그래서 서산마애불도 전각을 헐어내고 원래대로 원상회복을 했다.
남산의 배리삼존석불도 원래 건물 속이 아닌 밖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한다. 그래서 비바람을 맞긴 했지만 햇빛이 석불에 비칠 때면 빛의 방향과 명암도의 정도에 따라 부처의 미소가 신비스럽게 달라지는 불상으로 이름이 나 있는데 후대에 설치한 보호각 때문에 그 신비스런 미소를 볼 수 없게 됐었다.
이제 다행히 경주시가 용단을 내려 2008년 4월에 담장을 헐어내고 주변 나무와 터를 정비하여 시원스럽게 정비를 했다. 석불에 낀 이끼와 끈적끈적한 떼도 말끔히 씻어 냈다. 다만 비바람을 막을 보호 전각 건물은 당분간 그대로 두기로 했다니 아쉽지만 어찌하겠는가.
이제까지 어둡고 칙칙했던 주변과 석불의 몸도 깨끗해 졌으니 세분 부처님도 기분이 좋아 옛 날의 신비스러운 미소를 다시 지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배리삼존불이 있는 뒤편 송림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제까지 담장에 가려 볼 수 없었는데 담장을 헐어내고 불필요한 나무를 베어내고 주변을 정비하니 송림과 삼불사와 배리삼존불 전각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미지로
*배리 삼존불 가는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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