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왜 ....왜 그러지요?"
그러나 김유신의 시퍼런 칼날은 햇빛에 한번 번쩍하더니
순간 “얏.” 기압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며 정확하게
애마(愛馬, 말)의 목을 내려친다.
▲애마의 목을 자르는 김유신(배우 이종수 분)
단칼에 목이 떨어져 나간 말은 단말마적인 비명을 지르며
앞발을 허공으로 몇 번 치켜 새우더니
그대로 땅 바닥에 쓰러져 사지를 파르르 떨고는 숨을 멋는다.
말의 목에서 솟구쳐 뿜어 나온 시뻘건 피가 김유신의 얼굴과 몸에 튄다.
자신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처참한 장면을 목격한 천관녀는
비명소리를 지르고는 그대로 땅 바닥에 쓰러져 혼절하고 만다.
그러나 김유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잰 걸음으로 천관녀를 떠난다.
만 하루가 지나 천관녀는 간신히 혼절에서 깨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
대문 앞에 목이 잘려 죽어 있는 김유신의 애마를 거두어 땅에 묻는다.
그리고 김유신에 대한 자신의 사랑도 애마와 함께 땅에 묻었다.
천관녀는 생각했다.
김유신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었다면 어찌 그와 같은 끔찍한 행동을
자신 앞에서 보일 수 있는 것일까.
그의(김유신) 사랑은 거짓이었나....?
아니 아예 처음부터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김유신은 귀하디귀한 화랑(花郞)의 신분...
자신은 일개 천민(賤民)의 신분...
귀천(貴賤) 차이를 사랑으로 극복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수도 없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맹서했던 그였었는데...
입신양명이 사랑을 단칼에 베 버릴 정도로 더 중요한 것이었나?
그 동안 그와의 달콤했던 시간들은 모두 부질없는 허무였던가?
굳게 변치 않는 사랑이라고 믿었었는데....
천관녀는 절망했다.
한순간에 애마의 목이 잘린 것처럼 김유신에 대한 자신의 사랑도
그의 장검에 잘려 나갔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잃고, 사랑을 배신당한 천관녀는 더 이상 살 의미를 잃었다.
그 후 천관녀는 세속을 떠나 승복을 입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탈속을 하고 승복을 입었지만...
자신은 결코 승려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녀의 몸속에는 이미 김유신의 씨가 잉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사약발을 마시는 천관녀 (배우 박시언 분)
그녀는 애마의 무덤 앞에서 흐느끼며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스스로 약사발을 기울여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몸속에 자라고 있던 태아(胎兒)도 함께 죽었다.
장군 김유신은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출세와 명예의 정점에 다다랐다.
왕(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와는 절친한 친구요 처남매부 지간이 되어
왕과 버금가는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그(김유신)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업(業)이 가슴 한 켠에
늘 달라붙어 따라 다녔다.
바로 화랑도 시절 천관녀와 맺었던 사랑의 맹서를 지키지 못한
절연(切戀)에 대한 업이다.
천관녀가 죽고 수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김유신은 자신의 애마를
죽인 천관녀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의 집은 온데간데없고 빈터만 황량이 남아 있었다.
김유신은 그 자리에 천관녀의 이름 따서 천관사(天官寺)를 세우고
그녀의 원혼을 달랬다.
▲천관사지의 석탑재들과 집터
그러고 또 세월은 그로부터 천 수백 년이 흘렀다.
서기 2008년 6월 어느 날....
나는 천관사 터를 찾았다.
비극적으로 끝난 천관녀의 사랑을 느껴 보기 위해서다.
나에게도 너무도 애절했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관사 터는 오릉(五陵) 옆 천관마을 뒤편에 있다.
천관녀가 김유신과 사랑을 속삭이던 그녀의 집터는 논밭으로
포위되어 잡초만 무성하고 주춧돌 몇 개가 풀 섶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황량한 천관녀의 집터
문득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생각해 본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
자기희생이 아닐까?
사랑을 위하여 생사(生死)를 불문하는 본질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일것이다.
그런데 김유신은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하여 사랑을 버렸다.
서양의 많은 역사나 신화 이야기에는 사랑을 위하여(한 여자를 위하여...)
목숨을 던지고 심지어는 전쟁까지 불사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나 설화에는 그것이 아니고 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위해서는 사랑(여자)을 기꺼이 버린다.
그것이 정도인양....
어디선가 천관녀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목이 잘린 애마의 비명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 보면 간간히 일어나는 바람 소리 일뿐....
천관녀의 흐느낌이나 애마의 비명소리는 허공에 맴돌 뿐이다.
천관녀 집터 어디엔가 애마가 흘린 진홍빛 핏 자국이 보일 듯한데...
탑재와 주춧돌, 조각난 기왓장(瓦片)들과 그리고 무성한 잡초들만
보이니 세월의 무상함만 덧없이 느낄 뿐이다.
▲겨울철에 찍은 사진- 잡초가 없어 절터가 잘 보인다.
-주춧돌과 석탑재들이 보인다.
비극으로 끝난 천관녀의 러브 스토리....
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맺는다.
21세기, 지금도 김유신 같은 사람들이 많다.
사랑의 맹서를 버리고 출세와 명예를 쫒아 다니는 사람들이...
그러나 결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을
폄하(貶下)할 의도도 전혀 없다.
다만 천관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생각했을 뿐이다.
●천관사지 찾가 가기
천관사 터는 경주박물관 과 오릉 중간 지점 천관마을 뒤편에 있다.
●천관사지(天官寺址)에 대한 문화재 정보
-사적 제340호
-경북 경주시 교동(校洞) 244번지 위치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2000-2001년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 때의 천관사터 모습
지금은 땅에 묻혀 있다.(사진출처-경주문화재연구소)
천관사지는 2000~2001년도에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출토 유물은 건물지 석재들과 와면 등 작은 불상 등이 나왔다.
천관사지<天官寺址>는 오릉< 五陵 > 동쪽 논 가운데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석탑재 몇 개와
와편들이 보일 뿐 전체적인 규모·배치 건물내용들은 알 수 없다.
이 점은 사지에서 출토되는 기와나 김유신장군과 천관이라는 기생의 전설로 보아 통일신라 초기에
이룩된 절이 아닌가, 추측된다.
>未知路(200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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