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들판의 절름발이 당간지주들...
추수기를 앞둔 늦가을 보문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당간지주들... 어떤 것은 한쪽 다리가 잘려 있고, 어떤 것은 양쪽 다리가 모두 잘려있다. 인간들에 의해 다듬어 지고, 인간들에 의해 파괴된
“지체장애 당간지주”들이다.
▲한쪽 다리가 잘린 황룡사지 서편 당간지주
억 겹의 시간을 덕지덕지 뒤집어쓰고 차디찬 대지 위에 고독하게 서있는 그들... 목(幢)을 내어주고, 팔(竿)을 내어주고... 그것도 부족해 몸과 다리(支柱)마저 다 내어 주고도 천년 역사를 다 담아 고고하게 서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애절하면서도 간절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사찰의 가장 외곽에 서서 바람에 깃발을 펄럭이며 불음(佛音)의 소식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주던 당간... 이제는 쓸쓸한 폐사지(廢寺址)에서 오직 홀로 남아 천년 사지(寺址)라는 메시지를 알려 주고 있다.
▲황룡사지 서편 당간지주
일명 황룡사지 서편 당간 지주이다. 거찰 황룡사의 ‘당간지주’라고 하긴 너무나 초라하고 작다. 그나마 왼쪽 것인지, 오른쪽 것인지.... 한쪽 것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아마도 누군가가 가져가 비석이나, 빨래판이나.... 아니면 댓돌 같은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외발이 ‘황룡사서편당간지주’... 다리가 하나 없어도 당당하게 천년이상을 서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천년 이상을 이렇게 서 있을 것이다.
▲다리가 모두 잘린 황룡사지 당간지주
황룡사지에 있는 또 다른 당간지주이다. 아! 이것은 해도 너무 했다. 아예 양 다리(지주)가 몽땅 잘리고 겨우 밑 부분만 남았다.
육중한 쇠망치로 단번에 내리쳐 잘려 나간 지주... 그 때 무자비하게 잘린 상처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다리가 잘릴 때 얼마나 아팠겠는가! 또 붉은 피는 얼마나 흘렸을까? 도대체 잘라간 지주를 무슨 용도로 사용했을까?
▲한쪽 목이 잘린 보문리 당간지주
한쪽 목이 잘린 보문들판 논 가운데에 서 있는 보문리당간지주이다.(보물 제123호) 바람에 의해 목이 잘렸나? 이 풍진 세상에 목이 잘렸나? 아니다. 모진 인간들에 의해 목이 잘렸을 것이다. 그래도 한 쪽 것은 온전하니 그나마 다행한 일.... 지주에 뚫린 간공(杆孔)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니 지나간 천년 세월이 두 개의 구멍 안에 다 들어있다.
지체장애 당간지주들... 그 안쓰러움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오늘 따라 바람은 왜 이리 부는가?
황량한 보문들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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