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원산 스님이 계시는 백련암
백련암 들어가는 길도 참 좋다.
오백 나한 같은 소나무들이 열 지어 서 있는 길...
그 길 위에 하얀 겨울 햇살이 내려 앉아 있어 더욱 좋다.
백련암은 몇 년 전인가 딱 한번 와 본 곳이다.
지인 한분(지월)의 안내로 암자를 방문했었는데 뜻밖에도
동산처럼 둥글고 부드러우신 원산(圓山) 큰 스님을 뵌 적이 있었다.
그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님께 절을 올리고 직접 따라 주신 따끈한 차를 마시면서
스님은 네게 참으로 어려운 화두하나를 내려 주셨다.
“信受奉行“
‘신수봉행‘ 나는 아직도 이 화두를 풀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욕망의 집착을 끊지 못하는 한 원산 큰 스님이
내려주신 이 화두를 몸으로, 마음으로 옮기지 못하고 말 것이다.
원산 큰 스님이 누구이시던가.
일찍이 경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하신 분으로
1995년 조계종 초대 교육원장을 역임하신 큰 스님이시다.
한 때는 지금 백련암 뒤편에 있는 죽림(竹林)굴에서 3년간
무문관(無門關) 이라는 수행에 들기도 하신 분으로
지금은 백련암 감원의 소임을 맡아 포교에 힘쓰시고 있는
통도사의 큰 스님이시다.
나에겐 특별한 인연이 있는 백련암에 오늘 오니 감회가 깊어
행여 큰 스님을 뵈올 수 있을까 은근히 바랬지만....
이것이야 말로 큰 욕망임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큰 법당 문 앞에 묵언의 패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필시 스님이 묵언(黙?) 정진에 들어 계실지도 모르잖은가.
큰 법당 창호에 그려진 문살무늬가 정말 화려하다.
삼색의 화려한 연꽃무늬와 창호 밑에
그려진 귀면이 또한 화려하다.
암자의 전각들이 수 백 년 묵은 건물은 아니지만
정성을 드려 지은 것이 역역하다.
그런데 법당 마당 한 켠에 있는 석조(石槽)에 어인 일인지
가득 담겨져 있어야할 감로수가 한 방울도 없는 빈 그릇이다.
서운암 둥근 석조에는 맑은 감로수가 철철 넘쳐 났었는데...
일행 모두들 빈 석조를 보고 서운한 표정들이다.
내가 점잖게 한 마디 한다.
“왜 물이 없는지 아십니까?”
“속이 텅 빈 석조처럼 여기 백련암에 와서 마음을 비우고
가라는 큰 스님의 뜻일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내 말이 그럴 듯 했는지 웃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석조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돌거북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씽긋 웃는다.
장독 뒤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땔감이 장작인가, 나뭇잎인가?
연기 냄새가 너무나 좋다.
희미하게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뿌연 연기를 보니 사라지는
무상함 같은 감정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백련암을 나가려 하니 산문 앞에 서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눈길을 붙잡는다. 젊은 스님이 수령이 500년이나 된다고 하신다.
500년. 아직도 그 자태가 싱싱하니 앞으로 얼마나 더 살까.
사람이 아무리 영장이라 하지만 한 낱 나무만도 못함을 깨달으며
백련암의 산문을 나온다.
백련암을 백련정사라 하기도 한다.
오던 길을 다시 내려온다.
시간은 어느 새 정오를 가르치니 아무래도 서둘러야지만
계획된 8곳의 암자를 모두 둘러 볼 수 있을 것 같다 .
백련암을 벗어나니 바로 갈래 길에서 사명암 가는 길이 나 있다.
다음 장에 계속
>未知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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