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명암(泗溟庵) 일승대에 올라...
사명암으로 들어가는 길은 왠지 쓸쓸하다.
암자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석표가 햇볕을 받고 서있다.
그저 작은 암자이려니 하고 300m 정도를 걸어 들어가니
길 끝에 맞배지붕 건물이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인다.
“그렇지 암자는 저렇게 작고 단출해야 암자 맛이 나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암자 마당에 들어섰다.
그런데 거기에 꽤 큰 규모의 사찰이 눈앞에 전개되는 것이 아니가.
길 끝에 보였던 건물 말고도 화려한 석계단과 난간이 설치된 석교 위에
정말 아름다운 전각들이 그림처럼 멋진 연못 위에 앉아 있다.
암자라고 하긴 너무 규모가 큰 웬만한 사찰과 맞먹을 정도의 전가들이
서 있었으니 모두 놀래는 기색이 역역하다.
전각 양편으로는 멋진 누각이 서 있고
누각 밑으로 그림 같은 연못에 물이 가득 담겨 있다.
“아니 왠 암자가 이렇게 크지...?“ 하면서도 가람 배치가 너무
아름다워 모두들 감탄해 마지않는다.
아마도 꽃피는 봄이나 단풍 먹은 가을에 사명암에 왔더라면
그 아름다움에 취해 쉬이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사명암에는 누구든지 와서 쉬어 가라는 정자가 두체 있다.
오른 쪽엔 일승대(日昇臺), 왼편엔 월명정(月明亭)이다.
해가 뜨고 달이 밝음을 동시에 볼 수 있으니 암자가 바로
부처님의 세계임을 상징하는 듯싶다.
석교를 지나 큰 법당 극락보전 앞마당을 둘러보니 월명정 뒷면에
무작정(無作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무작정...????”“아아! 이것이구나, 무작정이라는 의미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무작정”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는 정자를 만난 것이다.
일행 모두들 마음속으로 무작정의 진의를 되짚어 본다.
“無作亭” 굳이 뜻을 풀이 하자면
마음에 걸림을 두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일을 일으키지 말라는 의미로 마음을 비우라는 뜻인가도 싶다,
그러나 우리가 무작정 무엇을 한다, 무작정 어디로 간다. 의 의미는
이 무작정과는 엄밀히 따져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조금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우리가 늘 쓰는 무작정은 “無酌定”이다.
아무런 정한바 없이 행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無作亭”과는 다른 의미 이지만 조금은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싶다.
그러나 사명암의 무작정이 더 깊은 의미로 해석 되어야 함은
역시 수행 도량에서 느끼는 감정 일 것이다.
학처럼 날렵한 팔작지붕을 쓰고 있는 극락보전 화려한 수미단(닫집)에는
역시 주불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불로 배치되어 있다.
극락보전 앞 두 기의 석등은 화려하지만 기계로 깎아 만든 감정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 그런 석등이다.
차라리 마당 한 켠의 감로수 옆에 걸어둔 물 떠 마시는 표주박에서
감정이 일어남은 어인 일인가.
연못 위에 세워진 4개의 석비가 특이하다.
나무지장보살(南無地藏菩薩)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석비는 제법 세월의 흔적이 엿 보인다.
아마도 이 네 분의 부처님을 모셨다는 의미인 듯싶다.
여기에서 사명암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을 뻔 했다.
사명암이라 하니 필시 사명대사와 관련이 있는 암자임을 잊은 것이다.
사명암은 역시 사명대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곳이라고 전한다. 1573년(선조 6)에 사명대사를 흠모한 이기(爾奇)와
신백(信白) 두 승려가 암자를 지어 창건하였고 사명대사의 영정이 지금
조사당에 봉안 되어 있다.
사명암에는 정말 존경할만한 스님이 계신다.
바로 단청과 불화를 잘 그리시는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이신
동원스님이이 계시는 암자이다.
동원스님은 사명암의 화려한 전각보다도 더 멋있는 스님이시다.
문화재청은 故 혜각 스님의 상좌스님인 동원 스님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보유자로 지정했다.
동원 스님은 40년 간 단청과 불화 수행을 해 온 오랜 경험과 연륜으로
단청의 특성과 기능을 충실히 계승하는 것은 물론, 작품의 예술성 등
모든 면에서 완숙한 경지에 올랐다는 평을 받으시고 있다.
봄이나 가을철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사명암을 나온다.
못내 아쉬운 것은 날씨가 추워서 일승대나 월명정 정자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차 한 잔 못 마시고 나온 서운함과 동원스님의 화방에
들려 스님이 그린 불화를 감상하지 못함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만족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고 욕망일 것이다.
조금은 부족해야 다음에 채울 수 있음이다.
사명암을 나와 이번에는 수도암으로 향한다.
다음 장에 계속
>未知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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