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고구려인(?)의 무덤 은현리적석총
몇 개의 마을길을 지난다. 이제는 농촌의 마을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마을 곳곳에 크고 작은 공장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농촌인지 공장지대인지 분별하기조차 혼란스럽다.
네모, 세모난 흉물스러운(?) 조립식 공장 건물들이 전원적인 우리네 농촌의 전통적인 풍경을 여지없이 헤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 흉한 공장 건물들이 많아야 우리 농촌의 경제가 더 좋아 질 수 있다하니.....
은현리 적석총(銀峴里積石塚) 가는 길, 좁고 미로 같은 마을길을 걷는 것도 참 재미있는 여정 중의 하나이다. 이집 저집 대문 안을 넘겨보기도 하고, 잘 생긴 집, 못 생긴 집.... 늙고 병든 집도 기웃거려 보면서 어릴 적 살던 고향 모습도 그려 본다. 마을길을 지날 때마다 개들이 멍멍멍~ 요란하게 짖어대는 것도 모처럼 느껴보는 정겨운 풍경들이다.
은현리 적석총은 서리마을이 끝나는 산 속 소나무 숲에 있었다. 울산에 이런 옛 돌무덤이 있었다니 정말 의외이다. 지석묘(고인돌)라면 몰라도 적석총이라니....
저 무거운 돌무지 안에 누가 잠들어 있을까? 어느 시대의 사람이었을까? 왕일까, 귀족일까, 아니면 어느 호족의 촌장일까? 사람은 죽어 100년도 못 가서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돌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단순한 돌 앞에서도 인간이 잘났다고 뽐낼 가치도 없는 것 같다. 정말 인간은 돌보다도 못한 하찮은 동물인지도 모른다. 너무 비하한 것일까?
적석총은 고구려 무덤 양식에서나 볼 수 있는 무덤 형식인데...??? 왜 여기에 이런 적석총이 있는 것일까? 먼저 의문부터 생긴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여기 저기 자료를 찾아 떠나 본다. 우선 울산시청 자료를 먼저 살펴본다.
은현리적석총은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웅촌에서 5km 지점인 새검단 마을 오른쪽 서리마을 뒷산에 있다.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현재는 많이 붕괴되어 확실한 구조와 크기를 알 수 없다.
자연석으로 쌓은 네모형 기단부는 1변의 길이가 약 20m에 이르고, 높이는 6~7m, 길이 18.5~19.4cm, 폭 5~6m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단부로 올라갈수록 피라미드와 같이 계단상의 좁은 형태를 이루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적 제214호로 지정된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금관가야 10대 왕인 전구형 왕릉과 비슷하나, 규모는 더 컸다고 전해오고 있다.
자료가 좀 만족스럽지 못하다. 다시 인터넷 여기저기를 헤집고 찾은 다른 자료를 살펴본다. 내용을 알기 쉽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적석총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접근하려면 우선 울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울산의 옛 이름은 우시산국(于尸山國)이라 하며 이곳 웅촌면과 웅상면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주 작은 나라였다. 이 ‘우시산’ 이 발음상 ‘울산’으로 바뀌었고, 조선 태종(1413) 때 처음 울산이라는 지명이름이 문헌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울주란 이름은 그보다 먼저 고려 현종 9년(1014)부터 사용하였다 전 한다. 삼국시대 초기, 고구려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세웠다는 우시산국의 중심지는 지금의 웅촌면 검단리 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대왕 석탈해 때 '거도'라는 사람이 이곳에 쳐들어와 우신산국을 신라에 귀속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가 이곳 적석총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 같지만 왜 여기에 적석총이 있게 됐는지 그 배경이 이야기 안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 분야의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무덤의 주인은 남쪽으로 내려온 고구려인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은현리적석총과 규모와 형식이 거의 같은 산청의 구형왕릉의 주인은 가야인 인데 딱히 은현리 돌무덤의 주인이 고구려인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고구려 무덤 형식인 적석총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우시산국의 지배층이 고구려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아무튼 현재 무덤은 많이 무너져 내려 규모가 작아진 형태이지만 주변에 남아 있는 여러 정황과 구조로 보아 산청의 구형왕릉과 거의 같은 크기의 규모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있으니 현재의 무덤 바로 옆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저수지를 만들 때 적석총의 돌을 옮겨와 사용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무덤의 돌이 많이 유실되어 규모가 작아 진 듯 하다.
오늘 본 적석총은 그 관리상태가 많이 허술한 듯 보였다. 소나무 가지가 무덤 위까지 내려와 있어 시야를 가리고 있고, 낙엽도 무덤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무덤 주변의 나무와 주변 환경을 좀 정리 했으면 싶다. 적석총의 돌 하나하나에 천수백년의 시간들이 묻어 있다고 생각하며 적석총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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