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17)
▶국보 제17호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통일신라.
무량수전 마당에 오또마니 서있는 작은 석등 하나.... 석등 지붕돌에 이끼가 덕지덕지 끼어 억 겹의 시간의 흔적이 보인다. 불은 언제 밝혔고, 언데 꺼졌는지 가늠할 길이 없지만.... 그러나 비록 불은 꺼졌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현상일 뿐 석등의 불빛이 무량광의 화엄세계를 비추고 있음을 본다.
어찌 이 작은 석등 하나가 국보로 지정 됐을까? 아미타여래를 모신 무량수전이 국보이니 자신도 당연히 국보 이어야 하는 듯 몸은 비록 작지만 당당하기 그지없다.
우선 여느 다른 석등과 다른 특이점을 살펴본다. 바로 화사석 4면에 특이하게도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화사석에 보살상이 있는 석등은 이 석등이 유일할듯하다.
석등 화사석에 조각된 보살상은 모두 네 분으로 원형 두광이 있고, 삼면관을 머리에 쓰고 피어나는 연화대에 서 있다.
목에는 삼도 있고 수인은 늘어뜨린 천의를 잡기도 하고 연꽃과 보주를 어깨와 가슴에 들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약간 곡선을 이루어 늘씬 감이 들게 한다. 석등을 받치고 있는 연화대석은 팔각 중심에 복엽 연판 문이 새겨져있고, 그 끝 꼭지마다 특이하게도 귀꽃을 새겨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석등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석등 앞에는 연화문 배례석이 놓여있다.
옛 날에는 법당을 금당이라 불렀는데 금당 안이 너무 좁아 예불을 집전하는 스님 몇 분만 들어가 예불을 올렸다. 이때 일반 신도들은 금당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석등 배례석 위치에서 예불을 올렸는데 신라나 고려 시대 왕들도 배례석 위치에서 예불을 올렸다고 전한다.
지금은 금당 안이 넓어 건물 밖에서 예불을 올리는 사례는 별로 없다. 그래서 금당을 지금은 법당이라 부르게 됐다.
배례석은 석등 앞뿐이 아니고 탑 신앙이 성행했던 석탑 앞에도 배례석을 두었는데 연화문과 구름, 당초무늬 등으로 조각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석등은 마당을 밝히는 불이 아니고 온 화엄세계를 비추는 광명등이다. 그래 그 앞에 안양루가 있고, 안양루 너머에는 무한 광대한 서방세계가 펼쳐진다.
>미지로 생각
■문화재청 설명
●국보 제17호-무량수전 앞 석등
4각 바닥 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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