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고 느낀 국보급 문화재(18)
▶국보 제19호 ●부석사 조사당 -고려시대
정면 3칸, 측면 1칸. 간결한 맞배지봉.... 정말 단아한 작은 건물 한 체가 늦가을 햇살을 안고 서있다. 스님이 빗질을 해서 그런지 마당이 방금 세수를 한 것처럼 깨끗하다. 조사당, 의상대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건물은 고려 우왕 때 세웠고, 조선 성종 때에 다시 고쳤다 전한다. 이 작은 건물이 국보급 문화재이다. 보기만 해도 그 속에 한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의상하면 원효가 생각나고 원효하면 의상이 생각난다. 두 분 대사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렇지만 두 분의 이야기를 굳이 여기에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상대사하면 생각나는 또한 분이 있으니 바로 의상을 연모하다 죽은 당나라의 선묘낭자이다. 의상도 선묘를 좋아했고 선묘낭자도 의상스님을 좋아한듯하다.
원효와 의상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너무도 닮았으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원효와 요석공주가 서로 사랑하여 설총을 낳은 것이나, 선묘낭자가 의상을 사랑하여 용의 화신이 된 후 의상을 도와 부석사을 무사히 창건할 수 있었던 것이나 같은 인연인가 싶다.
의상대사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 앞에는 골담초(선비화) 나무가 있다. 의상대사가 자신의 지팡이를 꽂아 두었는데 그게 자란 나무라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죽도록 의상을 사랑했던 선묘낭자의 영정을 모신 작은 건물도 있다. 바로 선묘각이다.
해질녘 부석사를 나온다. 부석사의 4가지 국보급 문화재를 돌아 보았지만 아무래도 부석사는 국보급 문화재 보다는 전체 가람과 사찰 주변의 자연 경관과의 조화가 더 아름답고 마음에 와 닿는다.
마지막으로 시인 정호승님의 부석사 관한 시한 수를 여기에 옮긴다.
‘그리운 부석사’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미지로 생각
■ 문화재 설명(*문화재청)
●국보 제19호-부석사 조사당(浮石寺 祖師堂)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 21년(1490)과 성종 24년(1493)에 다시 고쳤다.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를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건물 안쪽의 좌우에는 사천왕상·보살상 등 고려 후기에 그려진 벽화가 있었다. 이것들은 고려시대 회화 가운데 매우 희귀한 것으로,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그림 중 하나였다. 지금은 보호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으며, 원래 벽화가 있던 자리에는 본떠 그린 그림을 놓아 당시 벽화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다. (*자료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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