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 이야기~
▷2011.9.6
빛과 그림자, 가야의 붉은간토기~
오랜만에 국립김해박물관에 왔다. 전시실에는 가야시대 유물들이 즐비하고 관내 환경도 정원처럼 깨끗했다. 내가 자주 가는 경주박물관에 비하면 전시 유물이 다소 왜소하고 토기 위주의 전시였지만 가야사를 공부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지난주에는 김해박물관장(관장 송의정)의 가야사 강의를 들은 바 있다. 그리고 강의를 듣고는 삼국 역사에 묻혀 축소 된 가야사에 대한 인식을 다시 수정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내친 김에 김해를 찾아 가야 유물부터 직접 만나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김해박물관은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했다. 전시실에는 붉은 토기를 비롯한 청동기시대 가야 유물들이 은은한 조명 불빛 아래 숨을 죽이고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연신 사진만 찍어댔다. 전시 유물들을 꼼꼼히 살피고 설명서도 일일이 읽어 봐야 하는데도 한다는 공부는 안 하고 지가 무슨 사진작가라도 되는 양 셔터만 눌러대고 있으니 박물관에 온 목적이 모호하다.
그러나 어쩌랴! 마음이 가는 쪽에 매달릴 수밖에.... 공부는 접어 두고 사진만 찍기로 마음을 굳힌다.
전시실에는 깨져 조각난 청동기 시대 토기들이 다시 복원되어 어둠 속의 조명을 받아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천년, 2천년도 넘은 유물들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빛과 그리고 그림자, 한 면을 어둡고 그 반대 면은 조명 빛에 노출되어 붉은 흙빛이 황금빛으로 보이니 바로 청동기 시대 가야 유물인 ‘붉은간토기’들이다.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앞에서도 찍고 뒤에서도 찍어 본다. 박물관에서 카메라 플래시 사용은 금물이니 빛이 많이 들어오게 조리개는 활짝 열고 노출은 느리게, 초점은 수동으로 맞춘다.
사진이 찍혀 카메라 뷰파인더에 나타난 토기 들이 명암이 뚜렷한 찬란한 흙빛을 발하고 있어 제법 작품사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오만이자 거짓이다. 내가 빛을 조절하고 방향을 잡아 초점을 맞춰 찍은 작품사진이 아니고 전시실에 고정되어 있는 조명에 의해 찍힌 사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 하는 어느 사진작가 한 분이 말하기를 사진은 빛의 조화이고 예술이라 했다. 빛을 어떻게 받아들여 피사체를 어떤 방향과 초점거리에 놓고 셔터를 누르느냐하는 노하우(기술)와 예술적 감수성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고 했다.
이 분 말에 의한다면 박물관에 전시 된 유물들은 모두 최적의 일정한 온도와 빛을 받고 있어 어떤 점에서는 사진 찍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일 수 있지만 언제나 고정된 빛과 촬영 환경조건이므로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각과 감성 (빛의 변화)이 배제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달항아리에 대한 불로그에 올린 내 글과 사진을 보고 어떤 분이 빛과 도자기에 대하여 이렇게 댓글을 달아 주기도 했다.
달 항아리의 참 모습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보는 각도, 조명, 거리에 따라 보는 사람에 마음에 따라 변한다는 것은 알고 계신지요. 금사리가마의 색상 또한 오묘하게 변화 하죠. 도자기 표면이 푸른색조가 강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붉고 황금색조의 부드러운 흰빛 유백색이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 금사리 달항아리 입니다.
여러분들이 박물관에서 보신 것은 같은 조도 같은 거리에서 달항아리의 한 단면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다음에 달항아리를 보실 때는 여러 각도, 거리, 조도에서 보시면 도자기 표면에서 우려 나오는 많은 색깔의 변화와 무상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같은 아름다움을 박물관에서는 왜 보여주지 않는지가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에도 이러한 빛의 변화와 예지 그리고 감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고 박물관의
전시유물처럼 획일적이고 고정 된 빛의 조도에서는 한 단면만을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해서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아주 조금 포샵으로 콘트라스트, 조도 등을 양념하듯 살짝 수정했으나 왠지 내 사진 같지가 않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래도 빛과 그림자(명암)의 조화가 참 좋다. 그리고 사진 속 붉은간토기의 비대칭 영상도 참 좋다. 순전히 내 안목과 실력으로 이 정도의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사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내 의지나 욕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정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어느 장인이 단단한 화강암을 정으로 쪼아 불멸의 마애불을 조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친구가 말했다.
“사진은 눈으로 봐서 좋으면 잘 찍은 거 아냐...?“
어쩜 친구의 말이 진리의 말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좋은 사진 찍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찍은 사진 한 장 나오면 하루 종일 기분 좋지만, 수 십장, 수백 장 찍고도 맘에 드는 사진이 없으면 며칠이고 우울하다.
아래 사진들은 디카에 찍힌 사진을 빛의 방향과 강도를 조급 변형하여 명암을 강조 약간 다듬은 것들이다.
내 사진 솜씨만으로 이 정도의 사진만 찍을 수만 있다면 작가로서 등단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감생심, 언제 내가 그런 경지에 도달 하겠는가...?
앞으로 살아 있을 날들도 별로 많지 않은데......
그저 욕심이고 집착이다.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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