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의 窓門/태화강 이야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에 대한 단상~

migiroo 2011. 12. 16. 15:58

>2011.12.16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에 대한 단상~

 


(1) 여정~


울산에 시립박물관이 생겨 참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삭막한(?) 공업도시 이미지에 어엿한 박물관이 생겼으니
시민들의 문화 의식에 대한 자긍심도 한층 높아 졌으리라 믿는다.

 

 


나는 시간만 나면 뻔질나게 울산박물관에 간다.
그래서 제1기 UMA(울산박물관아카데미)도 수료했다.
아직은 전시 유물이 빈약한 편이지만 은은한 조명 불빛 속에
전시된 간토기 같은 선사시대 유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행복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오늘은 ‘태화사지 사리탑’을 보고 왔다.
사리탑 보다는 우리는 ‘부도’라는 이름에 더 익숙해 있다.
부도하면 종 모양으로 생긴 석종형부도을 생각하게 되고
크고 작은 사찰에 가면 수많은 부도들을 보곤 한다.


태화사지 사리탑은 부도인지, 승탑인지, 사리탑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명칭에 대한 특별한 설명문이 없으니 궁금하기만 하고 의문이 가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십이지상이 새겨져 있고 감실이 있으니 사리탑일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좀 더 명확한 설명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도, 승탑, 사리탑 모두 비슷한 이름이다.
지금까지는 흔히 부도라고 불렀지만 금년부터(2011)는 문화재청에서
부도라는 이름을 버리고 승탑으로 고쳐 부르기로 통일 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한다면 부도와 승탑은 명망 있는 고승의 사리나 뼈를
묻은 것이고, 사리탑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묻은 탑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태화사지의 십이지상 사리탑은 어느 고승의 승탑이 아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라고 여겨지는데 보다 확신을 갖도록
학계의 깊은 조사와 연구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 든다.

 

 

 

 

 

(2) 행적


태화사지 사리탑의 그간의 행적으로 볼 때 그리 순탄지만은 않은 듯 하다.
동 사리탑은 1962년에 태화사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태화동 반탕골이라는 곳의 산비탈에 묻혀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한다.
그 후 무슨 연유인지 부산으로 옮겨갔다가 엉뚱하게도
다시 울산학성공원(울산왜성)으로 옮겨져 오랫동안 천대(?)를 받아 오다가
2011년 6월 드디어 새로 개관한 울산박물관으로 옮겨졌으니 그의 운명도
기구했던 것 같다.


이제는 박물관 전시실의 가장 좋은 중앙 로얄 석에 모셔 졌으니 비로소
사리탑이 안전하게 자리를 찾은 듯하다.
그러나 더 바람직 한 것은 태화사가 있는 절터를 찾아 정비하고
그 곳에 사리탑을 안치 한다면 더 좋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이런 태화사지 사리탑을 어찌 한낱 보물급 문화재로서만이 대접할 수 있는가.
십이지상이 조각된 가장 오래된 유일한 사리탑이고 불교사적으로도 아주 귀중한
유물일 뿐만 아니라 불자들에게는 신앙적 대상으로도 숭앙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동 사리탑을 처음 만난 것은 십 수 년 전 울산학성공원에서이다.
그때 난 생각하기를 이 귀중한 부도(당시에는 부도라 불렀다)가 왜 하필
왜성인 학성에 와 있게 됐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울산박물관에서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됐으니 참으로 잘 됐다.

 

 

(3) 십이지상

 

 


태화사가 신라 27대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 했다 하더라도
동 사리탑이 창건 당시에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창건 수 백 년 후에 새운
탑이라고도 불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십이지상 출현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처음 등장한 시기는
대략 8,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주로 능묘의 호석에
배치했다.


경주에 있는 33대 성덕왕릉을 시작으로 35대 경덕왕릉, 38대 원성왕릉(괘릉)
그리고 42대 흥덕왕릉 등에서 12지상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태화사지 사리탑은 태화사지 창건 때가 아니고 그 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이건 순전한 나의 생각이다.)
어찌 됐던 태화사지 사리탑은 12지신상이 새겨진 유일무이한 탑이다.
비록 이제는 사리는 없어지고 없지만 이 부도가 어느 고승의 승탑이 아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던 진정한 사리탑이라며 그 귀중함으로 비춰 볼 때
보물급 문화재에서 국보급 문화재로 격상 지정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4) 문화 수준 높은 시민의식


그러나 세계적 문화유산인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 하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염치로 태화사지 사리탑을 국보로 격상 해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울산에 어엿한 박물관이 생겼으니 몇 점 안 되는 국, 보물급 문화재를
더 잘 관리하고 울산 지방에서 출토된 작은 토기나 와편 하나라도 애지중지
관리하고 보호하는 수준 높은 시민의 문화의식이 더욱 높아 졌으면 싶다.
특히 지방자치 단체장을 비롯한 관련 공무원들의 우리지방 문화재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고, 수준 또한 더욱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을 감상해 보자.
빛과 조화된 사리탑의 모습을 가슴으로 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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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정보


●보물  제441호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蔚山 太和寺址 十二支像 舍利塔) 


태화사터에 묻혀 있던 것을 1962년에 발굴하여 일시적으로 부산으로 옮겼다가, 다시 울산의 학성공원으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었다. 2011년 현재는 울산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존하고 있다.


태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시기에 없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아있는 유물로는 이 사리탑이 유일하다.


일반적인 사리탑들과는 달리 널따란 바닥돌 위에 종 모양의 몸돌이 놓인 간단한 구조로, 바닥돌에는 앞면과 옆면에 가느다란 안상(眼象)이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 종 모양을 하고 있는 몸돌은 윗부분에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 입구를 만들고, 그 안쪽으로 깊숙이 파놓아 사리를 모셔 두도록 하였다. 감실 입구 아래로는 12지신상을 돌려가며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는데, 머리는 짐승이고 몸은 사람의 모습으로 거의 나체에 가깝다. 12지신은 띠를 나타내는 12동물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능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로 조각되어 세워지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에서처럼 사리탑에 새겨지는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사리탑을 하나의 묘로 보아 이들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인다.(*문화재청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