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함양 정자문화 탐방기(제1편 농월정과 경모정~)

migiroo 2012. 5. 21. 21:21

 

 >2012.5.21


■함양 정자문화 탐방기(제1편 농월정과 경모정~)


1.농월정(弄月亭)은 간 곳 없고~

 


친구 몇이서 아침 8시 울산을 출발  210km를 달려 3시간 만에 함양 ‘농월정국민관광단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활기찰 것이라 생각했던 관광단지의 모습이 영 말이 아니다.
식당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고, 이곳저곳의 편의시설들은 낡고 퇴색되어 도무지
관광지라고 생각하기조차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우리는 출발 전에 단지 내 식당에서 우선 매밀 묵을 안주 삼아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컬컬한 막걸리가 식도를 타고 들어가니 뱃속이 얼얼해 진다.
식당 아저씨가 시키지도 않은 농월정 얘기를 늘어 놓는다.

나는 올커니 싶어 아저씨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줄거리를 메모했다.
왜, 불타 없어진 정자를 다시 못 짖고(복원)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아저씨의 설명은 이러했다.
당국(함양군)에서 불탄 농월정을 다시 복원하려하는데 원래 정자와 땅이 모두 P씨 문중 것이라 했다.

그래서 당국에서 정자를 다시 지을 테니 땅을 내 놓으라 했는데 문중 종손들이 땅을 내 주지 않아

지금까지 정자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복원하겠다는 당국의 강한 의지만 있다면 문중들을 왜 설득하지 못하겠는가.

 

 

 

조금은 상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와 이어진 계곡으로 내려가니 바람소리에 섞여
맑은 계곡물소리가 속진의 귀를 씻어 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옥빛처럼 투명해야 할 계곡물이 뿌옇게 혼탁해 있지 않은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물속의 돌들도 미끌미끌 누런 이끼가 끼어 있다.
바위틈을 헤집고 흐르는 물살에도 하얀 거품들이 둥둥 떠내려간다.
계곡물이 어디서 오염(?)이 된 것일까?
관광단지의 식당들은 계곡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 위쪽 계곡물이 오염 될 리 없고...
아무래도 계곡 상류 쪽 마을로부터 오염이 됐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래도 물은 조금 혼탁했지만 농월정 주변 계곡은 확실히 절경이었다.
그러나 정자는 오간데 없고 무심한 물소리만 들릴 뿐이니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정자들은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낡고 퇴락했으나 계곡의 바위들은 무구한 세월동안

물살에 깎이고 씻겨 움푹움푹 파여 물을 담고 누워 밤에는 각기 달 하나씩을 품고 있으려니

상상하니 그 모습이 보고 싶어 달 밝은 밤에 한번 와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2003년 화재로 소실 되기 전의 농월정(사진출처-함양군청)


1994년 ‘유홍준’ 씨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2권’ 을 처음 냈을 때 그 해 책을 사서 읽어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나는 그 다음해에 농월정을 찾았었다. 그때 본 농월정이 20여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런데 2003년 10월5월 농월정이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정자를 모두 태우고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예조참판과 관찰사를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傅)가 은퇴 후에 낙향하여 1899년에 완공된 정자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자는 빈터만 남아 있고 옛 선비들이 탁족(濯足)을 즐기던 계곡은 여름철 피서객들이 텐트 치고 삼겹살 구어 먹으며

물놀이 하는 곳으로 변해 있다. 어쨌든 탁족이든 물놀이든 풍류는 풍류이니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 하다.

 


●濯足(탁족)


여기서 탁족(濯足)에 대하여 조금 이해하고 넘어 가자.
이런 구시대 용어가 무슨 소용이 있을 까만은 그래도 알아 둬서 남 주겠는가.
탁족은 말 그대로 발을 씻는 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으니 탁족문화라고 해야 옮을 것이다.
인터넷 사전을 뒤져 보니 탁족에 대하여 이렇게 나와 있다.


濯足은 산간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일이고. 집에서 대야에 물을 떠놓고 발을 담그는 것은

세족(洗足)이라고 한다고 하니 절로 재미가 있다.

 
탁족은 전통적으로 선비들의 피서법이다. 선비들은 몸을 노출하는 것을 꺼렸으므로 발만 물에 담근 것이다.

그러나 발은 온도에 민감한 부분이고, 특히 발바닥은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이 시원해진다.

또한 흐르는 물은 몸의 기(氣)가 흐르는 길을 자극해 주므로 건강에도 좋다. 음식이나 기구로 더위를 쫓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더위를 잊는 탁족은 참으로 선비다운 피서법이다.
탁족은 피서법일 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의 방법이기도 하다. 선비들은 산간 계곡에서 탁족을 함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씻기도 하였다.


탁족이라는 용어는 『맹자(孟子)』의 “창랑의 물이 맑음이여 나의 갓끈을 씻으리라. 창랑의 물이 흐림이여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

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한 구절에서 취한 것이다. 굴원(屈原)의 고사에서 유래한 이 구절은 물의 맑음과 흐림이

그러하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의 처신 방법과 인격 수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부터 탁족은 문사들과 화백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에는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정의 노옹탁족도(老翁濯足圖), 작가 미상의 고승탁족도(高僧濯足圖),

최북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가 있다. 한결 같이 간결하고 고답적인 분위기의 그림들이다. 그런데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이 중국에

서는 송(宋) 무렵부터 등장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에 등장한 것을 고려하면 선비들의 탁족 풍속은 중국에서 유래한 듯하다.

그러나 고답적인 해석과 관계없이, 서민들의 피서법인 산유(山遊)에서 탁족을 하는 일은 자연 발생적 풍속이라고 여겨진다.

기계문명을 떠난 자연친화적이고 소박하고 건강한 피서법이랄 수 있다.(이상 자료출처:네이버 백과)
 
 


2.경모정(景慕亭)에 그림자 지고~


멀리서 불타 없어진 농월정 터만 바라보고 경모정으로 향한다.
예쁘게 나 있는 나무데크 길로 올라서니 머리 위에 그 옛날 육십령 길이 포장길로 변하여 꾸불꾸불 뱀처럼 누어있다.


 


육십령(六十嶺) 길~


육십령 길이란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에 소재한 고개이다. 장수군 장계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을 연결하는 재이기도 하다.

육십령이란 지명은 60명 이상이 모여서 넘어야 안전하게 재를 넘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육십령 고개엔 터널이 뻥 뚫려 있고 굽이굽이 휘어진 그 옛날 길은 2차선 3차선 포장길로 변하여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으니 거리도 육십리가 안 되고 고개도 없어 졌으니 아직도 육십령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그런것 같다.

 

 

                             ▲시원하게 뚫려 있는 육십령 길(함양 방향)


옛 선비들은 험준한 육십령 길을 지나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갔다가,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좋아서 정자에 앉아 시한 수 짓고,
과거에 낙방한 선비는 신세를 한탄 하며 정자에 앉아 시 한 수 읊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내 마음도 애틋해 지는 것 같다.
 
농월정에서 조금 가니 황암사가 계곡 반대편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다.
계곡 물길이 깊어 건너지 못하고 그냥 먼발치서나마 바라보니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선열들이 생각난다.
잠시 선열들의 명복을 빌면서 카메라 렌즈를 최대한 당겨 황암사 건물을 담는다.   
 


●황암사(黃巖祠) 어떤 곳인가?

 

 

 

  황암사는 절이 아니고 호국선열들의 사당이다.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에 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서 순국한 곽준(1551~1597), 조종도(趙宗道, 1537~1597) 등 3,500명 선열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714년(숙종 40) 황석산 아래에 사당을 짓고‘황암사’라는 사액을 받아 봄가을로 위령제를 지내왔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
1985년 김재연 등의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황석산성순국선열추모위원회를 발족 하여 해마다 추모행사를 지내왔다. 1987년 황석산성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제322호로 지정되자, 1998년 사당복원계획을 세워 2001년 호국의총(護國義塚)을 정화하고 사당을 중건하였다. 해마다 음력 8월 18일에 순국선열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낸다.
 

향사인물 곽준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 양정(養靜), 호 존재(存齋), 본관은 현풍이다. 임진왜란 때는 김면 등과 함께 출전하여 공을 세웠으며 1594년에는 안음 현감으로 부임, 외침에 대비하여 황석산성을 축조하였다. 이후 정유재란 때는 황석산성에서 가토기요마사
[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싸우다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조종도는 자 백유(伯由), 호 대소헌(大笑軒),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1558년(명종13) 생원시에 합격한 뒤 안기도 찰방(察訪), 금구(金溝) 현령,  장악원 첨정 등을 거쳐 함양군수로 재직하였다. 정유재란 때 안음현감 곽준과 함께 황석산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순절하였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이다.(*이상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

 


경모정 가는 탐방 길에 바위 의자가 앉아 있다.
오가는 탐방객 잠시 쉬었다 가라는 의자이다.
황토길 산길도 정겹지만 이런 세심한 배려심 또한 너무 정겹다.
경모정 가는 길은 계속 이어진다.


 


연초록 빛 숲이 너무 싱그럽고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그야말로 숲 향에 취해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다.
초록빛 색깔은 인간의 감성을 가장 유연하고 맑게 해 주는 색이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인간 본성 과 자연이 곧 초록이고,
초록이 바로 자연이라는 진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경모정 이정표가 나타났다.
앞으로 0.4km.

 

 

 

이정표를 지나니 작은 팔각정 하나가 나타난다. 람천정 이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올린기와가 새것이다.
그러나 전망 하나는 참 좋다.
정자에 잠시 쉬면서 물 한 모금에 갈증을 푼다.
옛 정자가 아니라 요즘 흔한 정자이다.


여행길이 재미는 목적에 와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 여러 것들과 만나는 여정(旅情)이다.
길에서 만나는 것들은 숲만이 아니다.
여린 봄꽃 앙증맞은‘애기똥풀’도 만났고, ‘큰꽃으아리’도 만났다.
볼그스럼한 ‘지칭개’도 만났고, 구절초와 너무도 흡사한 ‘데이지’도 만났다.
민들레 홀씨도 만났고, 양지꽃도 만났다.
민들레는 벌써 풍선 같은 바람 주머니를 만들어 툭 건드리니 ‘고마워’ 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얀 홀씨들을 일제히 하늘로 날린다.

 

                                                                                            ▲민들레 홀씨
 


●경모정(景慕亭)

 

 

 

초록빛 숲속으로 길게 뻗어 있는 나무데크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은 사뭇 상쾌하다.
그러나 어찌 이렇게 걷기 편한 좋은 길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인생의 길처럼 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
오른쪽으로 길게 누워 있는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드디어 풍광 좋은 자리에
정자 다운 예쁜 정자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경모정이다.

 

 

경모정은 그리 오래된 건물이 아닌 것 같고, 상량문을 보니
1978년에 배씨 문중이 지은 것으로 되어있다.

 

 

 

 

건물은 단단한 자연 암반 위에 짧은 밑기둥 누마루를 얹고
다시 팔작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정자는 무열공 배현경(裵玄慶)의 후손들이 1978년도에 지은 것이라 한다.
배현경 선생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분이다.
그의 후손인 개은 배상매씨가 조선 영조시대에 산청에서 이 곳 함양군 서하면 호성마을로

이사를 와 후학을 가르치며 쉬던 곳인데 그 후손들이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정자를 짓고

경모정(景慕亭)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전한다.
정자 주변의 넓은 바위와 뛰어난 자연경관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것 같고,
특히 달 밝은 밤의 정경은 더욱 아름답다울 것같다.


그런 달 밝은 밤에 한번 이 곳을 찾아 봤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시상(詩想)적 정서가 메말라 있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니
어찌 달 밝은 밤에 찾아 볼 열정이 남아 있겠는가.


마침 지나는 배씨 문중 한 분을 만나 양해를 구하고
우리는  정자에 앉아서 늦은 도시락을 먹었다.
계곡물소리 바람소리 반찬 삼아 도시락을 먹으니 바로 우리들이 신선이다.
배를 채우고 경모정을 떠나 동호정으로 향한다.

 


●호성마을 길~

 


경모정을 조금 지나니 배씨 문중들이 사는 호성마을이 나온다.
마을은 조용하고 깨끗한데 그런데 이게 웬일....
마을 앞 계곡의 절경을 마구 파헤치는 주범(?)이 있었으니
바로 굴삭기‘포크레인’이다.



포크레인은 계곡 바닥을 마구 파헤치며 그 멋진 바위와 돌들을 다 들어내고
그 위에 뻘건 흙을 채우고 있다.


현대 토목 공사의 총아 ‘포크레인.....


이‘포크레인’한 대면 산도 무너트리고, 강물도 막는다.
집체만한 바위도 잘게 깨부술 수도 있고,
수령 수 백 년 짜리 아름드리나무도 통 체로 뽑아 버리기도 한다. 
수백 노동자들의 일거리를 앗아 가기도 한다.
그래서 현대 토목공사의 주체가 됐고 총아가 됐다.


그러나 이런 토목공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이런 총아도 때로는
자연 파괴의 주범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자연 파괴의 본보기 엠비 정부의‘4대강 사업’같은 대 역사도
포크레인 이라는 흉측(?)한 장비가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한국의 절경 화림동 계곡도 이렇게 한곳 두 곳씩 포크레인의 강인한
이빨에 먹혀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어디 이런 곳이 여기뿐이겠는가. 전국 방방곳곳의 자연이 이렇게
포크레인의 먹이가 되고 있는 현대 토목공사장의 현실이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니 바로 필요악(必要惡)인 셈이다.

 

 

다음은 정자 문화 탐방기 제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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