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14
환승버스
어젠 간간히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아침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
오랜 가뭄과 폭염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데 구름 많은 하늘을 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 진다.
시내버스를 타고 경주를 간다.
교통카드를 버스 단말기에 갔다 대니 처음 오를 때는 ‘감사합니다.’하고,
내릴 때는 ‘하차입니다.’하더니 다시 버스를 갈아타니 이번에는
‘환승입니다’ 하고 반긴다.
짧은 거리도 자가용 몰고 다니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데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가려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내 하고 몇 차례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불편함이 편리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우선 목적지까지의 2시간 여 동안...
기다림(버스)의 아련함이 좋았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맛도 꽤나 괜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일상을 읽을 수 있었고,
비록 대화는 없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다만 가슴 아픈 것은 젊은이나 학생들이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고
큰 소리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이 아니고 때로는 기분 좋은 모습도 볼 수 있다.
돌아 올 때는 마침 퇴근 시간 때라 차량정체가 심하여 시간이 더 걸린다.
나이든 시골 아주머니 한분이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힘겹게 버스에 오른다.
재빨리 짐을 들어 옮겨 주고 자리를 양보 한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 내릴 때도 짐을 들어 버스 밖에 내려 주고
다시 차에 오른다.
또 배가 부른 임신부가 아기 손을 잡고 버스에 오른다.
이번에도 좌석을 양보하고 아이를 보고 씽긋 웃어준다.
호계 근방을 지나면 외국인 남녀 근로자들이 유독 많이 탄다.
그들은 자국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 수다를 벌린다.
코리아드림의 꿈을 안고 일하는 그들...
부디 돈 많이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빌어준다.
세상에 양보만큼 기분 좋고 즐거운 일은 없다.
양보는 내 편안함을 상대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행복해 지는 행위이다.
내일 모래 또 버스타고 경주에 갈 것이다.
자가용 몰고 가면 1시간, 버스 타고 가면 2시간 반....
1시간 반이 더 많이 걸리지만 그 2시간 여 동안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고,
남을 위해 배려와 양보 할 수 있는
행복한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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