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사무치게 그리운 부석사, 그녀를 찾아갔네~

migiroo 2012. 11. 1. 16:54

>2012.10.27(토)

 

사무치게 그리운 부석사, 그녀를 찾아갔네~


가을 비 촉촉이 내리는 부석사 무량수전,
그 처마 밑에 서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사무친 그리움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원망하며 애틋이 흐느껴 우는 선묘를 생각한다.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리고 국경도 신분도 시대의 구별도 없다.
의상을 사랑한 선묘낭자나, 원효를 사랑한 요석공주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가 비 내리는 이 가을에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원효는 파계를 불사하고 요석공주의 사랑을 받아 설총을 낳았지만....
의상은 끝내 선묘의 사랑을 외면 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선묘는 자신의 몸을 던져 사랑하는 의상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니
오늘 날의 부석사를 낳게 한 것이리라.

 
사랑은 해 본 사람만이 안다.
사랑이 얼마나 큰 고통인 줄을....
그것도 이룰 수없는 사랑이라면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으리라.

바로 선묘의 고통이다.


의상을 사랑한 선묘낭자,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
그리움, 원망, 애틋함, 사무침 이런 것들에 대한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사랑을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다.
고통 그 자체가 곧 행복임을....
선묘는 사랑하는 의상을 위하여 아낌없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의상이 수행승의 최대 목표인 진리의 깨침을 이루도록
모든 사악함으로부터 의상을 보호 했다.
바닷길에서는 해룡으로 변신하여 의상의 안전한 뱃길을 도왔고,
땅에서는 허공을 나는 큰 바위(부석)로 변신하여 사악한 무리를 물리쳤다.


그러나 선묘의 가슴은 의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까맣게 탓을 것이다.
그 선묘낭자의 한과 애틋한 사랑이 서린 부석사....
그 부석사를 오늘 찾는다.

비가 온다. 하필 오늘...


 

부석사의 만추....

 

 

 


10월 말의 부석사는 선묘낭자의 가슴처럼 활활 타고 있었다.
일주문부터 절간 온 천지가 만추의 단풍으로 물들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무친 그리움으로 빨갛게 타들어간
한 서린 선묘 낭자의 가슴 속을 보는 듯 하다. 


 

 

 


무슨 연고로 절에서는 은행나무를 그렇게도 많이 심었는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들이 낙엽이 되어 하늘과 땅을
온통 황금빛으로 채색해 놓았다.

 
그리고 어쩌자고 오늘 같은 날, 하늘은 비를 내리시는 지.....
땅 바닥에 떨어진 은행나무 낙엽들이 빗물에 젖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빗물에 촉촉이 젖어 있는 단풍잎들이 너무도 투명하다.

무명을 벗어난 성불한 스님들의 청결한 마음 같은 그런 투명함이다.
마지막 모든 열정을 다해 자신의 몸을 태워 장렬하게 한해를 마무리하는
자연의 섭리야 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낯선 새 건물이 보인다.
천왕문 낡은 건물을 깡그리 헐고 새로 집을 지은 듯하다.
보수나 증수가 아니고 아예 새로 복원하듯 건물을 짓다니....
고색이 찬연한 고찰다운 맛이 싹 가신다.
알고 보니 여기저기 새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몇몇 건물을 제외하곤 지붕의 기와는 거의 다 새것이고, 새 건물들은
검붉은 색을 칠하여 고(古) 티가 나게 눈가림을 하고 있다.
목조건물 특성상 건물이 낡으며 새로 짓던가 보수를 해야 됨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아예 헌 것을 헐어 버리고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은
너무 실리적인 것 같고, 고찰다운 맛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천만 다행 범종류와 안양루 그리고 무량수전은 그대로인 듯 하다.

 

 

 

 

누구처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폼 한번 잡아 보려고 했는데....
기둥마다 젊은 여인들이 줄줄이 서서 자리를 내 주지 않으니
늙은 내가 어찌 그 빈틈을 뚫고 배흘림기둥에 한번 서 보겠는가.
어찌됐던 무량수전 처마 밑에 서서 안양루 그 너머를 바라보니
첩첩산중 신기루처럼 보인다는 서방정토는 보이지 않고 자욱한 비안개만 보일뿐이다.
무량수전 빗물이 낙숫물이 되어 뚝, 뚝 떨어지고 있다.
처마 밑에 서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사무친 그리움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원망하며
애틋이 흐느껴 울고 있었을 것 같은 선묘를 생각한다.

 


의상과 선묘낭자


수행승에 있어서의 여인은 한낱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토록 의상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선묘낭자를 모신 사당이 왜 이리 초라할까?
국보라는 작위(?)를 받아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는 무량수전과는 달리  
선묘낭자의 영정을 봉안한 선묘각은 너무 작고 초라하다.


 

 

 

역시 이것도 옛것을 헐어 없애 버리고 새로 지은 건물이다.
의상의 격에 비하여 너무나 초라한 집, 그 좁은 방안에 선묘 낭자의 영정이
옷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왠지 쓸쓸하고 슬픈 표정으로 서 있다.
선묘낭자는 아직도 의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사랑이 국경을 넘고, 천년 시공을 초월하여 애틋하게 전해 온다.
이제는 사랑이 말라버린 메마른 내 가슴에도 선묘의 사랑이 짜릿하게 느껴 온다.


‘이룰 수 없는 사랑’ .....


선묘의 사랑이 가을비처럼 촉촉이 젖어 온다.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 속으로...


의상과 원효는 당의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도중에 원효는 깨친 바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오고,
의상은 바다를 건너 당에 닿아 한 민가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 집의 딸 선묘낭자가 그만 의상에게 반해 버렸다.

 

 

드디어 의상은 종남산의 지엄에게 화엄학을 배우고 귀국 길에 잠시 선묘 집에 들른다.
이때 선묘는 의상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의상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옷가지를 들고
선창가로 갔으나 의상이 탄 배는 이미 바다로 떠난 뒤였다.


그 후 선묘는 의상의 마음을 얻을 수 없자 부처님께 귀의하여 의상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소원을 발원한다.


슬픔에 젖은 선묘는 자신이 죽어 해룡이 되어 의상이 탄 배가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면서 기어코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만다.
의상을 실은 배가 서해 바다로 나가자 폭풍우가 치고 파도가 험난하여 위험에 처해졌다.
이 때 해룡으로 변한 선묘낭자가 나타나 바다를 평온하게 하고 바람을 일으켜 배가
순풍을 받게 하여 안전하게 항해 하게 하니 이에 의상은 무사히 귀국하게 된다.


 

 

 

귀국 후 의상은 전국을 돌면서 화엄 학을 강론하다 지금의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짓고자
했는데 사교의 무리 500이 자리 잡고 앉아 절 짓기를 방해 하니 이때에도
선묘는 큰 바위를 허공에 들어 사교 무리들을 쫒아 버리니 의상은 비로소
절을 짓고 수많은 대중들에게 화엄경을 강의할 수 있었다 한다.
그 때의 바위가 바로 무량수전 옆에 있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이다.

 

 

 

 

또한 부석사에는 선묘와 얽힌 작은 우물이 하나 있다.
바로 지장전 뒤편에 있는 선묘정(善妙井)이라는 우물이다.
이 우물도 의상을 위하여 선묘가 판 것인데 늘 맑은 물이 나오고 있단다.


선묘정에 대한 노산 이은상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살아서 못 만난다면
죽어서 따라가죠.


걸어서 못 간다니
구름타고 날아가죠.

몸으로 못 안긴 다길래
물이 되오니 마시옵소서.

 

오늘날 부석사하면 가을 단풍이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다.
그리고 의상과 선묘에 대한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서려 있는 선묘에 대한 흔적들이

부석사라는 대찰로서 선묘에 대한 대접이 너무도 인색한 듯 하다.

아마도 수행처인 절에는 여인의 흔적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의지일지 모르겠다.

 

 


무량수전(국보18호)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화려함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일까,
아니며 웅장함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일까?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은 화려함도 웅장함도 아니다.
바로 정제된 단순함과 편안함, 그리고 건축물의 안정적 체감비율에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단순함에서 느끼는 극적인 미적 감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천년의 끈적끈적한 시간이 묻어 있는 퇴색된 늙은
목재들에게서 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주름진 늙은 배흘림기둥은 늙은 인생과 닮아 있고,
수백, 수천 개로 갈라지고 터져 속살이 다 보이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법당의 창호는 또 어떤가.
그야말로 간결함의 극치이다.
사찰의 창살은 실용이 아니고 장엄이다.
그런데도 당연히 장엄해야할 화려한 꽃 창살도 아니다.
무량수전의 창호는 그저 보통 여염집 문살 이다.
화려함이 아닌 텅 빔이디.
꾸밈이나 치장이 아닌 그냥 원래 그대로다.
그런데도 아름답다.
사람으로 말하면 지적이고 우아하다.
다만 처마를 보면 석가래 와 공포만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그 복잡성마저도 어지럽지 않고 질서 정연하다.
 

 

 

 

절제와 겸손, 단순함과 간결함....
안정감과 아늑함...
닫혀 있지 않고 늘 열려 있는 평온함...
소유가 아니 무소유....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부석사 무량수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량(無量)?


이 무량을 불가에서는 어떤 의미로 해석하는 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수량적 뜻이 아닌 참 의미는 무엇일까?

무량수전, 극락보전, 대광명전, 아미타전은 모두 같은 이름으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신 전각들이다.
아미타불은 한량없는 광명을 지니고 중생의 번뇌와 어둠을 밝히는 한없는 지혜와 생명을 지닌 부처를 말한다.
그래서 무량수(無量壽)이고 무량불(無量佛)이다.
 

 

 

 

 

무량수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은 건물의 외모와는 달리 화려하고 장엄의 극치이다.
불단 위에는 닫집인 천개(天蓋)를 달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나 극락조로 장식한다.
천장에는 화려한 꽃비 단청을 하고 본존 후면에는 극락의 법회 장면의 극락회상도
또는 극락구품탱화 등을 걸고, 후불탱화로 아미타불내영도, 관음도 등을 걸기도 한다.
그런데 부석사의 아미타여래는 혼자 있는 것을 즐겨 하시는 걸까?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양 협시 불도 물리치고, 후불탱화도 마다하시고
오로지 홀로 근엄하게 앉아 계신다. 그것도 정면이 아닌 동쪽을 보고 계신다.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은 왜 동쪽을 보고 계시는 걸까?
서쪽에 앉아 동쪽을 보고 계시니 바로 서방정토에서 사바세계인 동편을
바라보면서 어리석은 중생 구제에 골몰하고 계시기 모습이다.
그리고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을 향하여 참배하는 사람은 부처님을 서쪽으로
보고 있으니 바로 서방정토에 계시는 부처님을 보고 경배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래서 부석사 부처님은 서방정토에서 동편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다.


 

 

 


무량수전의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는데, 안양루 2층의 부석사
편액은 어이없게도 독재자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란다.
어찌 독재자의 편액이 여기에 걸리게 됐는지....
절대 권력의 흔적이 찜찜하게 고찰에까지 남아 있으니
그것도 역사인가, 절 측의 의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

 


무량수전 앞 석등

 

 

 


석등(국보17호) 주변에는 사람들이 끝없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석등이 왜 국보가 됐는지 눈여겨보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체감비율이 앙증맞게 예쁜 이 작은 석등이 무량수전 앞에 없었다면,
그리고 석등 앞에 안양루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어진다.
아마도 석등 자신도, 무량수전도, 안양루도 빛 잃은
한 낱 건축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자연 경관과의 극적인 조화가 이루어 지지 못했을 것이다.
 

 

 


석등의 하대석은  연꽃을 엎어 놓은 복련이 조각되었고,
꽃잎 끝은 말려서 귀꽃이 되었다. 특히, 복련 중심에는 3단의
받침이 있어 연꽃 속에서 간주를 받쳐 올리는 듯이 표현되어
그 굵기와 높이가 가장 안정적 비례를 보이고 있다.


상대석은 8엽의 앙련(仰蓮)이 조각되어 있고, 화사석 네 면에는
보살입상이 조각되었는데 그 조각술이 매우 정교하고 예술적이다.
옥개석 정상에도 복련이 조각되어 있고,
상륜부에는 작은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안양루


 

 

 


무량수전 앞에 석등, 석등 앞에 안양루...
안양루는 허공에 뜬 듯 구름에 걸려 있다.
부석사에 이 안양루가 없었다면 국보 무량수전의 빛도 별거 없었을 것이다.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흐린 대로....
안개가 끼면 뿌연 운무현상이, 하얀 눈이 쌓이면 쌍인 대로...
해기 뜨면 뜬 대로, 석양이 지면 지는 대로....
안양루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보여 준다.
1층 누각 아래에는 늙은 기둥들이 잔뜩 주름살을 지고 있고,
무량수 아미타 세계로 오르는 석계단은 극락으로 오르는 계단이 된다.


 

 

 

건물전체의 형식은 2층 누각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아래 층 좁은 석계단을 올라야 아미타불이 계신 무량수전으로 오를 수 있다.
2층 누각이지만, 무량수전 쪽에서 보면 단층 전각처럼 보인다.
1층은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고, 2층은 누각으로 이중의 기능으로 되어 있다.
건물 전면에는 ‘안양루’, 뒷면에는 ‘안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한다.


2층 누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부석사 경내의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야를 들어 서쪽을 보면 멀리 소백산맥의 준봉들이 첩첩이 펼쳐져 있어
경이로운 자연 경관이 극적으로 전개 된다.


무량수전 뜰에 올라서서 앞의 석등(국보17호)을 바라보는 것도...
허공에 뜬 안양루를 바라보는 것도....
무량수전에서 운무에 쌓인 첩첩산중에 드리운 석양을 바라보는 것도...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더 해 주는 모습들이다.

 

 

 

 

부석사 종루는 별개의 건물에 있고,
안양루 2층 누각에는 달랑 북과 목어 밖에 없다.
목어는 어룡의 얼굴을 하고 있고,
커다란 북은 대들보에 매달려 불음을 전하고 있다.


 

 

 


안개 낀 날 무량수전 뜰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그야 말로 첩첩 산수가 안개에 묻힌 체 아련히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속세에서 서방정토를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이 펼쳐진다.
그래서 무량수전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러나 오늘 만은 그게 아니다.
서방정토가 뿌연 안개비에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 또한 부석사의 극적인 아름다움 중 하나이다.
텅 빈 허공 속에 안양루가 신기루처럼 떠 있으니 말이다.
 

 

 

 

석등 옥개석 위에 이끼가 덕지덕지 끼어 있다.
안양루 지붕의 기와에서는 줄줄 빗물이 흐르고 있고.....
석등도 기와도 모두 천년의 침묵 속에 잠겨 있다.


 

불타는 부석사....

 

 

 

10월과 11월 초에 이르면 부석사는 겨울채비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온 몸을 불살라 붉게 물든다.
그리고 긴 겨울의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절간도 침묵 속으로 들어가고 스님들도 침묵의 세계로 들어간다.
시간도 침묵으로 들어가고, 무량수젖도 침묵에 묻힌다.


이제 부석사를 나온다.
선묘낭자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영원 속으로 묻혔지만 사랑은 영원히
묻히지 않고 우리 가슴을 울린다.


자, 그러면 단풍 속에 파묻혀 있는 부석사의 모습들을 둘러보자.

 

 

 

▲부석사 일주문.태백산 부석사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건물도 새로 지은 것이라 고색의 느낌이 안 난다.

  속세에서 절간으로 들어가느 문이지만 문은 문이되 문이 아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 나가는 사람 아무도

  말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속세와 불계인 산사로 들어가는 마음의 경계 일 뿐이다.

 

 

▲붉게 타는 부석사 일주문 안 단풍이다.

 

 

 

 

▲부석사 경내 앞에 있는 유일한 부석사 당간지주 이다. 훤칠한 키에 시원스럽게 쭉 뻗은 모습이다.

   부석사는 조선 중기에 다시 지어졌지만, 당간지주는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할 때부터 여기에 말없이 서 있다.  

 

 

▲10,11월의 부석사는 그야말로 단풍의 게절이다.

 

 

▲안개 자욱한 부석사 경내이다. 은행나무 낙엽들이 처연하게 땅에 깔려 사람들의 발 길에 뭉개져 있다.

 

 

▲삼층석탑, 이 탑은 경북도 유형문화제이다. 부석사에는 삼층 석탑이 2기 있는데 또 다른 한기는 보물로 지정되어

  무량수전  왼편 언덕 위에 있다.

 

 

▲비 내리는 부석사 경내.... 안개가 자욱하다.

 

 

▲새로 진 요사체 건물이다. 이 새 건물도 수백년 세월이 지나면 품격이 달라 질 것이다.

   절집은 새 것 보다는 오래된 건물이 더 멋지다. 

 

 

▲국보 17호 무량수전 앞 석등이다. 우산 반, 사람 반, 비 반으로 비가 내리는데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다.

 

 

▲부석사 삼성각이다. 팔작지붕의 작은 전각이다. 아마도 팔작지붕을 한 가장 작은 절간이 아닌가 싶다.

 

 

▲그 유명한 부석사의 부석이다. 관리가 허술하여 부석인지 그냥 단순한 바위인지 분별이 안 된다.

  이끼를 잔뜩 머금고 있는 바위가 허공으로 떠 있는 것이라고 믿어 지지 않는다.

  다시 선묘낭자의 신력을 빌려야 바위가 허공에 뜰려나....

 

 

▲부석사 지장전이다. 지정전 뒷편에 의상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이 있다.

 

 

▲현판도 없는 새로 지은 건물이다. 흑갈색으로 색을 입혀 고티가 나게 했다.

  쪽마루에 앉아 있는 젊은 아가씨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안양루 2층 누각이다.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지만 여기서 아래를 바라보면 부석사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다 보이고,

  서쪽에는 태백산의 준령들이 첩첩히 시야에 들어 온다.

 

 

▲새로 지은 요사체 건물이다. 나무에 흙갈색을 입혀 고티가 나게 했다.

  흑백의 간결한 조화가 마음을 비우게 한다.

 

 

▲부석사 범종각. 북과 목어는 안양루 2층 누각에 있다.

 

 

▲안개비가 자욱한 부석사 경내이다. 사랑하는 연인 둘이 그 길을 걷고 있다.

 

 

 

▲안개비가 자욱한 부석사 지역에서 바라본 태백산 준령이다.

  소나무와 산과 안개와 비가 만들어 낸 멋지 자연의 모습니다.

 

 


 

부석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은 것들....

 

 

 ▲이끼를 잔뜩 머금은 석축이다. 완전한 그랭이질은 아니지만 한국식 석축술이 참으로 예술적이다.

 

 

 ▲안양루 아래 석축에 있는 담쟁이의 아름다운 단풍이다. 녹,적, 황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빨간 단풍 잎에 마치 선묘의 눈무처럼 빗불이 떨어 지고 있다.

   역광을 받은 빨간 잎이 더욱 투명하고 영롱하다. 

 

 ▲ 노란 은행나무 낙엽 위에 빨간 단풍나무 낙엽이 떨어져 적,황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은행나무 낙엽들.... 황금빛으로 있다가 점차 흙갈색으로 변한다.

  은행나무 낙엽은 병충해 예방에 좋고, 아파트 씽크대 밑에 뿌려 놓으면 바퀴벌레 같은 병충해가 없어진진다고 한다.

 

 

 

촬영 카메라 : 케논  EOS 60D Av mode

카메라렌즈 : 탐론 18-250mm 망원렌즈

 

위 사진중 벽화 그림은 사찰 벽화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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