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마곡사, 그 겨울의 길목에서 (2)극락교 건너 피안의 세계로~

migiroo 2012. 11. 23. 14:01

>2012.11.17


마곡사, 그 겨울의 길목에서(2)~

 


●극락교 건너 피안의 세계로~

 


천왕문을 지나니 극락교가 보인다.
극락교에는 벌써 겨울이 찾아 와 나무들은 알몸 인체 나목이 되어 서있다.
다리를 건너면 극락세계이다.
3개의 홍예를 이은 홍예 극락교는 만든지 얼마 되니 않은 듯 고색이
드러나지 않아 별로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의 첨단 기계로 깎아 만든 장인의 혼과 정신이 결여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리 밑 물속에 커다란 돌거북이 두 마리가 보인다.
거북 등에는 새끼 거북이 타고 있다.
사소한 것이지만 누구의 발상인지 재미가 있다.
거북 앞에 동전이 수북하다.
거북은 장수의 상서로운 동물이다.

 

 

 

 

극락교을 건넌다. 나도 극락의 세계를 체험 할 수 있을까?
마곡사 스님들은 극락교를 경계로 극락교 밖 일주문 지역은 수행도량으로 남원구역이라 부르고,
극락교 안 쪽 지역을 북원구역이라 부른다고 한다.

 

 


 

 


극라교을 건너니 먼저 보이는 것이 범종루이다.
팔작지붕을 십자형으로 이어 맞춰 지은 십자각 팔작지붕으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정면이 된다.
멋진 건축술이다.
마곡사 범종루는 근년에 지은 건물이다.
범종루를 건성으로 둘러보고 드디어 서방정토의 세계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대광보전 앞마당에 들어선다.
마당 한 가운데에 왠 낯선 석탑이 불안하게 서 있다.
바로 보물 799호 마곡사 오층석탑이다.


 

 

 


경주에서 비율이 잘 맞는 삼층석탑만 보아오다가 이렇게 이질적(?)인 탑을 보니
조금은 기분이 묘하다. 언뜻 보기엔 오층인지, 육층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기단도 두 단으로 되어 있고, 상륜부는 또 이상한 형태의 청동부재가 올려져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안정감이 없이 불안하다.
좀 더 살펴 볼 필요가 있어 관련 인터넷을 뒤져 상세한 정보를 알아본다.
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선명도가 떨어지지만 여기에 올려 상세히 살펴본다.


 

 

 

 


우선 문화재청에 나와 있는 내용은 이렇다.


절 마당에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탑 뒤로 고색이 찬연한 대광보전이 서 있다.
그리고 대광보전 용마루 너머로 중층건물인 대웅보전 건물이 보인다.
대광보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으로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있다.


 

 

 


대광보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웅장해 보이는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본 건물은 1788년(정조 12년)에 세워져, 정조 시대 지은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813년(순조 13년)에 다시 지은 것이고. 특히 대광보전의 현판 글은
영조와 정조 시대 이름난 화가이자 서예가인 표암 강세황의 글씨이다.
 

대광보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다.
비로자나불은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뜻을 지녔으며,
이 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 등으로도 부른다. 
 

 

 

 


기둥 위 추녀 밑으로는 처마의 무게를 지탱하고 또 장식도 겸해 짜 맞춘
포가 많이 배치되어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 외벽에는 흔히 그려져 있는 십우도나 팔상도 같은 벽화가 아니고
엉뚱하게도 상부 벽면에 금강역사 네분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나머지 면은 하얀 벽면으로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날렵한 처마선 아래로 퇴색된 단청의 복잡한 공포가 질서정연하게 짜여져 있고,

수백 수천 개의 나무 조각들이 서로 상호 관계를 유지하며 단단히 결구 되어 있다. 


 

 


 

늙은 민흘림기둥이 육중한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주름살투성이인 기둥너머로 오층석탑이 보인다.
탑 아래 여인들이 이 늙은 기둥의 나이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대광보전의 법당 

건물 안에 들어서면 본존인 비로자나불이 법당의 서쪽에 동쪽을 향해 모셔져 있다.
이런 배치는 대개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에서처럼 서방 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불이 앉아 있는 방식인데, 이곳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이처럼 앉아 있어 드문 예이다.

 

 

 

 

법당 천정의 조각과 꽃 단청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이다.
그러나 화려하면서도 결코 화려하지 않고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간결하다.
각종 형상의 섬세한 조각, 기둥 위의 용머리 조각, 천장의 연화봉과 문학문 단청 등
장식적 특성을 잘 살린 조선 후기 건축의 걸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대들보 위에 머리를 올린 용 한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불단을 수호하고 있다.
용의 표정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사납다.


 

 

 


법당 밖 처마 밑 공포와 맞물리게 법당 안쪽에도 복잡한 공포가 빈틈없이 결구 되어 있다.
대들보에는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 같은 꿈틀거리는 용 그림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천정은 백학이 날고 연화문 꽃 봉우리가 우물정자 안에 가득히 피어 있다.


살아서 극락정토에 가 볼 수가 없다면 법당 안의 장엄한 장식 세계를 보면 극락세계를
어림짐작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웅보전


절 마당에서 바라보면 대광보전에 가려 대웅보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뒤로 물러서서 보면 대광보전 용마루 너머로 대웅보전 이층 용마루가
가물가물 보인다. 마치 귀중한 보물을 단번에 보여 주지 않고
은밀히 감춰둔 것처럼 말이다.


 

 

 

 


같이 온 일행의 재촉에 못 이겨 대광보전도 대충 보고 대웅보전으로 간다.
보물 제80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마곡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3단의 석축
기단 위에 중층 건물로 서 있다.
앞 전각 대광보전이 1788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고, 대웅보전이 그 보다 앞선
1651년에 지어진 것이니 160년이나 더 오래된 전각이다.


 

 

 

 


대웅보전을 살피기 전에 우선 마곡사의 순탄치 못한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에 자장율사가 창건 했다는 설과 승려 무선이
지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 온다.
그리고 고려 전기에 와서 절은 폐사가 됐다가 1172년(고려 명종2년)에 보조국사가
다시 재건했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건재하다가 선조25년(1592) 임난 때 소실되고
그 60년 후 1651년(효종2년)에 각순대사와 공주목사가 힘을 합해 다시 짓고
현재까지 보수 중창을 거듭해 오다가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 존폐의 역사가
참으로 기구하다고 할 수 있다.


대웅보전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4칸의 중층(重層) 팔작집이다.
멋스런 4단 석축의 기단석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워 팔작지붕의 중층을 올렸다.
대웅보전 편액의 글씨는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이 쓴 것이라니 그동안 수차례의
폐사, 소실, 재건 등의 곡절을 겪었는데 어찌 김생이 친히 쓴 것이겠는가.
아마도 김생의 힘찬 글씨를 골라 집자한 것이 아닌가 생각 드는데 잘 모르겠다.


 

 

 

 

 
화려한 다포계 공포와 단청이 장엄 미려하고 건물의 나이만큼이나
고졸한 맛이 물씬 풍긴다.
추녀 아래에 매달려 있는 풍경이 불어오는 바람에 낭랑한 소리를 낸다.
산사의 풍경소리야 말로 마음을 울리는 심금의 소리 이다.


 

 

 

 

 
정면 5칸의 창호는 화려한 꽃살문을 마다하고 그냥 밋밋한 보통 집의 정자 창호이다.
화려함을 피하고 극히 단순함에서 품위를 나타나게 한 의도적인 선택일까?

 

 

 

 


대웅보전에는 석가불, 약사불, 아미타불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각각의 존상 후불탱으로 영산탱, 신중탱, 산신탱이 걸려 있다. 

 

 

 


그런데 불단 앞의 두 기둥이 예사롭지가 않다.
늙고 휘어져 수 백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늙었지만 아직도 힘차 보인다.
이 기둥들이야 말로 육중한 중층의 지붕을 떠받히고 있는 중심 기둥일 것이다.


아래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지 못하여 자료사진을 인용 편집한 것이다.


 

 

 

 

 


법당 안의 천정은 단청이 퇴색되긴 했지만 공작이 군무를 추고 있고,
무수한 꽃비가 내리는 듯 화려하고 장엄하다.

 

 

 

 

 


다음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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