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마곡사, 그 겨울의 길목에서 (1)해탈로 가는 길~

migiroo 2012. 11. 23. 13:44

>2012.11.17

 

*아래 사진들은 대부분 본인의 스마트폰( I-Phone 4s)로 찍은 사진입니다.


마곡사, 그 겨울의 길목에서(1)~

 


●해탈로 가는 길~

 

 

 

 

 

겨울의 그림자가 드리운 스산한 날에 공주 마곡사를 찾는다.
낙엽이 흩날리는 산사 가는 길에 마곡사 일주문이 외롭게 서 있다.
찾아오는 사람 막지 않고 떠나는 사람 붙들지 않는 다는 문....
문은 문이되 문이 아니다.
산사의 일주문은 이렇게 항상 열려 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문이 왜 서 있는 것일까?
경계의 표시이다.
일주문 밖은 속세요, 일주문 안은 불계라는 경계이다.
경계라는 뜻은 여기와 저기를 구분 짓는 단순한 선을 말함이 아니고
속된 마음을 버리고 참된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을 상징하는 문이다.


 

 

 

 


바로, ‘세심단속문(洗心斷俗門)’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산사로 드는 길에 이미 겨울이 찾아와 있다.
길옆으로 흐르는 상원계곡 물소리가 차지만 청량하다. 
속진으로 찌든 나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는 듯 맑고 청아하다.


물은 왜 아래로만 흐르는가?
바람은 또 어디로 불어 가는 걸까?
나는 왜 방황하고 있는 가?

 

 

 

 

해탈문 앞에서 엉뚱한(?) 화두를 꺼내 생각해 본다.
불가에서 해탈(解脫)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전에 나와 있는 내용을 간추려 본다.


업(業)이나,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 번뇌의 속박을 풀고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상태를 해탈의 경지라 한다.  
불가에서는 해탈을 깨달음의 경지로 열반(涅槃)과 동일시한다.
불교의 인식은 모든 사물은 인과나 숙명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緣起)에 의해 존재하는데, 이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고
그 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해탈이라고 하였다.


알 듯 하지만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다 늙은 이 순간에도 집착과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해탈은 요원한 남의 문제인 듯 멀기만 하다.

 

 

 

 

해탈문으로 들어서니 금강역사 두 분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다.
그러나 그 위엄(?)스런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익살스럽고 해학적으로 보인다.
무섭다기 보단 인자한 할아버지가 아흠~ 하고 익살을 부리는 듯한 모습이다.

 

 

 

 

두 분의 금강역사도 부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왼편은 밀적금강(密迹金剛), 오른편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다.
이 중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力士)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하고,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이다.


보통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흔히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라 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하는데, 이때의‘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이다. 그러니‘아훔‘의 두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두 분 곁에 동자승이 말 위에 앉아 있다.
문수, 보현동자이다.


문수동자는 문수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이다.
석가모니불의 좌협시보살로 지혜를 맡아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자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우협시보살인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이 보현동자이다.
보현보살은 진리의 광대행을 맡고 있으며, 행원의 실천을 나타내기 위하여
코끼리를 타고 있다.


마곡사 해탈문은 그 늙음의 고색이 해탈한 건물 같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육중한 팔작지붕을 굳건히 받히고 있는 원주 기둥이
해탈의 경지에 이른듯하다.
덤벙주초 원주 기둥 밑 둥이 힘에 부친 듯 갈라지고, 터지고 으스러져 있다.


 

 

 


해탈문을 나오니 천왕문이 앞에 보인다.
그런데 해탈문 중앙 통로에서 바라본 천왕문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조금 빗겨가 있다.
왜 그럴까, 지형적인 문제도 아닌 듯 한데 말이다.
대칭을 피하고 비대칭으로 살짝 빗겨 세운 것이다.
다른 사찰은 해탈문(금강문),천왕문,대웅전이 대부분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마곡사는 무슨 의도로 직선을 피하고 조금씩 빗겨가 배치한 것일까?
지붕도 보니 해탈문은 팔작지붕이고, 천왕문은 맞배지붕이다.
건물형태는 동일한데 지붕만 다르다.

 

 

 

 

그렇다 옛 건축가들은 이미 비대칭의 미학을 알고 사찰에 적용한 것으로
직선이 아닌 의도적으로 축선을 어긋나게 배치한 듯 하다.
비대칭의 효과는 대칭의 평면적 공간의 효과보다도 더 깊이가 있고
건물 배치가 한눈에 펼쳐지지 않아 답답한 것 같지만 그 답답함에 감추어진
비밀이 숨어 있다 들었다. 바로 은밀과 신비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바로 금당을 보여 주지 않고 궁금증을 유발케 함으로서 종교적인 신비를
극대화 한 건축술의 지혜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천왕문에서 바로 앞에 있는 극락교도 비틀려 있고,
극락교에서 대광보전과 그 앞 오층석탑도, 대광보전 뒤에 있는
대웅보전 또한 조금씩 어긋나게 배치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천왕문 천정 대들보 위에 용두(龍頭)가 보인다.
해탈문엔 지붕 용마루의 치미 뒤에 용두가 양편에 있는데
천왕문에는 건물 안쪽 대들보 천정에 용두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러니깐 해탈문 용두는 밖에, 천왕문 용두는 안에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 또한 비대층의 효과일까?

 

모르겠다.

 


다음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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