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화순 쌍봉사를 찾아 가다.
(1).비극의 주인공 쌍봉사 대웅전 목조삼층탑
쌍봉사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때 철감선사 도윤(道允)이 창건했다.
쌍봉이라는 절 이름은 철감선사의 도호(道號)를 딴 것이라는 말도 있고,
절 앞뒤에 봉우리가 하나씩 있어 쌍봉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쌍봉사가 현재까지 유명세를 잃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바로 신라 부도의 최대 걸작 국보 제57호 철감선사 부도탑과
비신은 사라졌지만 생동감 넘치는 보물 제170호인 철감선사탑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신라시대의 목조탑 양식으로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단 두개 남아 있다가 1984 초파일에 신도가 켜 놓은 촛불이 넘어져
일어난 화재로 홀랑 타버렸다 복원되어 보물에서 해제된 비극적인
목조삼층탑인 대웅전 건물이다.
(2).가장 단순함이 가장 아름다운 쌍봉사 극락전과 명부전
1984년 대웅전 화제 때 극적으로 화마를 피한 극락전과 명부전이다.
아주 단순한 측면 방풍판이 너무나 아름답다.
명부전에는 아름다운 목재 조각의 사천왕상들이 모셔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단아한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 주는
단순성에 또 한 가지 빛바랜 고색이 찬연한 극락전의 건물에서
화려함이 곧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전은 서방극락 정토의 주제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대웅전, 대적광전과 함께 3대 불전으로 불린다
(3).부도의 진수 철감선사 부도와 부도비....
도대체 스님들의 부도는 왜 이리도 화려한지 모르겠다.
가장 검소하고 가장 소박하게 한 세상을 살다간 노스님 일 덴데...
그 분들이 죽은 다음의 무덤(부도)은 왜 이리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도무지 어떤 석공들이었기에 단단한 돌을 떡 주무르듯
자유자제로 다루어 저토록 아름다운 조각 솜씨를 남길 수 있었는지...
징 한번 잘 못 쪼았다간 지금까지 만든 무늬나 조각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텐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저토록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저 부도 앞에 서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다.
얼마나 소중한 보물이기에(국보 제57호) 저토록 감시가 심한가?
부도 주변에 무려 4개의 감시 센서가 있고...
그 것도 모자라 최첨단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작동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인가 한 낮에 도굴꾼 들이 부도 옥개석을
들어 올려 도굴 시도의 흔적이 발견되어 전 매스컴에 대서특필된
사건이 있었다.
우리 문화재를 도굴해 가는 놈들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독 놈보다
더 악질이다. 그 것도 도굴한 문화재를 일본이나 다른 외국으로
팔아먹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런 놈들은 국적을 박탈하고 법정 최고의
형벌로 다스려야한다.
너무 심했나? 결코 심한 것이 아니다.
더 무거운 형벌로 다스려야지
>미지로
>2007.9월 쌍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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