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전국문화재 斷想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

migiroo 2009. 9. 27. 22:44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

 

소리가 들린다.

 

 

 

 


숭례문이 시뻘건 불길에 무너지는 소리...
온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다.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이 났다.
자연재앙이 아니라 인재(人災)였다.
복수심으로 가득 찬 한 나약한 노인에 의하여
저질러진 어처구니없는 실화다.

 

 


그러나 방화범은 그 노인만이 아니다.
우리들 모두가 방화범이다.
아무도 화재에 대비한 방비를 하지 않았고,
어떤 정부의 기관도 화마에 노출되어 있는 숭례문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더 기가 막힌 노릇은 불을 빤히 보고도
끄지 못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소방방재청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도 한 폭판.
불이나자 최첨단 소방차 30여대가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불을 끄러 온 것이 아니라
불구경을 하려 온듯했다.

문화재 하나 없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다.
숭례문이 어떤 문인가?
그 문은 나라의 대문이고 상징이고 자존심 이였다.
대한민국의 브랜드였다.


온 세계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타 무너지는 장면이 생중계 되듯이 전 세계에 알려 졌다.
창피하고 망신살이다.
국가의 위상이 곤두박질했다.

숭례문과 함께 온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고 말았다.


차라리 다 죽자.

 

대통령도 죽고, 국무총리도 죽고...,
서울 시장도 죽고, 문화재청장도 죽고,
소방방재청장도 죽어라...
그리고 우리도 다 죽자.

그거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나라인가.
그거 하나 지키지 못하는 국민이 국민인가.
차라리 다 죽자.

숭례문은 복원하다지만...
억장이 무너진 국민들의 가슴은 누가 복원해 줄 것인가.
숭례문을 잃은 지금은 모두 울분과 슬픔에 차 있겠지만...
봐라!


한 달만 지나면 우리들은 지금의 울분과 슬픔을 까맣게 잊을 것이다.
온 나라가 오로지 4월 총선에만 죽자 사자 매달려 싸울 것이기 때문이고...
국민들은 그 총선 소음에 정신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낙산사가 타 없어지고
또 미친놈이 수원화성 서장대를 태우더니
오늘은 국보 1호 숭례문이 타 없어 졌다.
아! 내일은 또 어떤 문화재가 타 없어질 것인가.

흥청망청 하지 말고...
이젠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숭례문의 명복을 빌면서 이 절규를 놓는다.

 

 

>미지로(2008.2.13)


문화재 정보

숭례문(崇禮門) (서울 중구)

 
개숭례문(崇禮門)은 조선 태조 5년(1396)에 최초로 축조되었고 1398년 2월 중건되었다.
이 문은 조선시대 한성 도성의 정문으로  4대문 가운데 남쪽에 위치하므로, 남대문으로도
불린다. 1448년에도 크게 고쳐지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도 남대문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양측에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1908년 도로를 내기 위하여 헐어
내고 성문만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있었으나, 2006년 복원 공사를 마치고 지금과 같은 모습
을 하게 되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보물에서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의 평면은 아래.위층이 모두 5칸, 측면 2칸이며,  건물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홍예의
윗면인 중앙칸만이 우물마루일 뿐, 다른 칸은 흙바닥으로 되어있고 위층은 널마루이다.
편액의 필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지봉유설> 에는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문의 편액은 가로로 쓰여 있으나 숭례문이 세로로 쓰여 있는것은 숭
례(崇禮)의 두 글자가 불꽃을 의미하여,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게 하
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존하는 성문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남대문은 전형적인 다포(多包)양식
의 건물로 견실한 목조건축물의 수범을 보이고 있는 한국 건축사상 중요한 건물의 하나이
다. 1997년 초 서울시에서 이 문의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조명설비를 새로이
한 바 있다.

 

서울 중구는 2005년 10월부터 통로 보수공사와 홍예문 입구 등 5곳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
시, 조선 세종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랫부분 석축 기단과 지대석(맨 아래 기초석), 박석
(바닥에 까는 돌), 문지도리(문을 다는 돌 구조물) 등을 발굴했다. 이는 1907년께 남대문
을 관통하던 전차선로를 내면서 문 주위로 흙을 1미터 가량 쌓아올려 아래쪽 기단과 박석
들이 완전히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따라서 중구는 시민들이 지반보다 1.6m 아래
에 있는 이들 구조물을 볼 수 있도록 중앙통로 시굴 부분을 그대로 남겨둔 채 관람시설을
설치했다. 숭례문 개방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까지이며며, 숭례문의 중앙통
로인 홍예문을 따라 숭례문을 둘러볼 수 있다.(출처: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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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