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27.불교회화의 진수, 아잔타 석굴

migiroo 2009. 11. 7. 14:35

 

 

 

아잔타 석굴에는 수많은 조각상을 볼 수가 있었는데
4번 굴의 화가 난 코끼리를 피해 달아나는 남녀의
조각상은 차가운 돌에 감정까지 표현한 솜씨가
너무나 훌륭하였다.
(본문 중에서...)


 

  

 

아침 일찍부터 호텔 로비에서 스님이 지프차를 구하려고 지배인과 협상 중이다. "아잔타"로 가는 길을 지프차로 이동하려고 여러 번 전화를 걸어가며 힘썼는데 지배인은 지프차가 곧 도착한다고 계속 기다리라고 하였다.

 

 

1시간을 기다려도 지프차는 오지 않고 결국 나중에는 못 온다는 연락만 왔으니 괜스레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였다. 하는 수없이 버스를 이용하려고 릭샤를 타고 버스 스탠드로 향했다.
마침 3번 홈의 아잔타행 버스가 막 떠나려 하기에 올라타고 운전사에게 일행이 많이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하자 흔쾌히 그러겠다고 한다. 맨 먼저 자리에 앉은 우리는 속속 릭샤를 타고 도착하는 일행들에게 빨리 타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일행을 모두 태운 버스는 드디어 아잔타로 출발하였다.


30여분 달리다가 차장이 요금을 거두는데 1인당 170루피나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버스요금은 분명히 65루피로 알고 있는데 170루피나 달라니 이게 웬 바가지란 말인가. 스님이 나서서 65루피 이상 줄 수 없다고 하자 차장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옥신각신 요금 때문에 실랑이를 벌인 끝에 75루피만 내라고 차장이 말했지만 기분이 상한 우리는 차를 오던 길로 돌려 버스 스탠드에 내려달라고 하였다. 이래저래 시간만 다 허비하고 다시 차편을 알아 봐야 했는데 부산에서 온 선생님이 정류장 옆에 서있는 지프차를 왕복 160루피에 흥정하여 우리는 지프차를 타고 아잔타로 향했다. 나중에 스님이 알아낸 사실이지만 우리가 타고 가던 버스는 일반 시내버스가 아닌 아잔타 행 직행버스로 요금이 170루피가 맞다고 했다. 서로가 잘 몰라서 벌어진 헤프닝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2시간 30분을 달려 아잔타에 도착하니 겨울에 거의 오지 않는 다는 보슬비가 촉촉 히 내리고 있었다.


아잔타는 엘로라 석굴과 함께 최고의 볼거리로 손꼽히는 곳으로 BC 2세기에 시작하여 AD7세기까지 조성되었는데 사원에는 많은 건축물과 회화, 조각 등이 남아있어 불교 미술의 보고다. 8세기 경 불교가 쇠퇴하자 무려 1,100년 동안 밀림에 숨겨져 있다가 1819년 영국군 병사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견당시 천년동안이나 흐른 세월 속에서도 벽화의 화려한 색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수많은 방문객의 손길로 인해 현재는 보존될 수 없을 만큼 훼손 되었다고 하니 귀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모두 28개의 석굴이 조성되어 있는데 1,2,16,17번 굴이 대표적이라 하여 제일먼저 1번 굴로 들어갔다. 1번 굴은 아잔타 석굴 중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굴로 아름다운 벽화가 많이 남아 있었다. 보살에게 꽃을 공양하고 있는 왕의 모습도 보이고 아름다운 흑인 공주의 그림도 있었다. 연꽃을 들고 있는 보살상은 너무나 유명한데 백제의 담징이 그린 일본의 법륭사 금당벽화와 똑같이 닮아 있었다.

그밖에 무수히 많은 회화들이 벽 전체에 그려져 있었는데 불교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는 모두를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하였다.


2번 굴에는 천정에도 정교한 그림이 남아 있고 벽에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었는데 붓다를 안고 있는 마야부인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16번 굴에는 내부를 장식한 화려한 벽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붓다의 이복동생 "난다"가 출가를 결심하자 그의 아내인 "순다리"가 고통과 슬픔에 잠겨 죽었다는 빈사의 공주(Dying Princess) 그림은 너무나 표정이 사실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였다.


17번 굴은 벽화의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곳으로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붓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속세의 부인과 두 아들에게 탁발하는 그림이 있었는데 붓다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애처로운 눈빛이 담겨있어 사실감 넘치는 표현에 내 마음도 슬픔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밖에도 석굴에는 수많은 조각상을 볼 수가 있었는데 4번 굴의 화가 난 코끼리를 피해 달아나는 남녀의 조각상은 차가운 돌에 감정까지 표현한 솜씨가 너무나 훌륭하였다.


일렬로 나열된 석굴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는데 벗고 신기가 번거로워서 아예 맨발로 걸어 다니며 28번 굴까지 모두 관람 하였다. 석굴을 내려 올 때는 건너편의 산책로를 따라 걸었는데 숲과 나무로 우거진 작은 오솔길은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앞에 걸어가는 인도인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면서 길을 내려 왔다. 부인은 나보다 한살 작은 나이였는데 내 나이를 말하자 깜짝 놀라며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도사람들의 나이가 실제보다 많아 보이는 까닭은 너무 강렬한 태양으로 피부가 더위에 지친 때문인지 겨울의 건조한 기후 때문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부부는 결혼한 첫딸과 미혼인 둘째딸과 함께 나들이를 왔다고 하며 시종 밝은 웃음으로 무척 친절하게 우리를 대했는데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재밌게 대화를 화면서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왔다. 나는 엄마와 딸에게 일회용 샴푸와 로션을 기념으로 주었다.


 

        

 

이제는 인도 여행의 막바지로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늘부터 서서히 짐정리를 하기로 생각하고 그동안 사용하던 물건들을 하나 둘씩 현지인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유용하게 사용하던 등산용 깔판은 버스에 탄 중년 부인에게 주었는데 그렇게 생긴 물건은 처음 보는지 아주 신기해했다. 내가 직접 깔고 앉아 보이면서 방석이라고 설명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었다. 보온병은 아잔타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내 옆에 앉아 말을 건네던 기념품 가게 주인에게 주었는데 그 남자는 자기 가게로 가더니 목걸이 하나를 가져와서 나에게 주었다. 조금 있다가 또 가더니 목걸이를 두개나 더 가져와서 선물이라 고하니 안 받는다고 손을 저었지만 손에다가 쥐어주기까지 하니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그냥 받고 말았다.  

 
아잔타에서 지프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 5시경이 되었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뭄바이"로 가는 야간 버스를 기다리며 배낭을 꾸렸다. 밤9시 경 뭄바이로 가는 침대 버스가 호텔에 도착 하였다. 그동안 침대칸 야간열차는 타보았지만 침대버스는 처음 타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1층은 앉는 좌석으로 되어있고 2층은 누워서 갈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우리를 인솔하는 스님도 침대버스를 처음 본다고 하였다. 그동안 인도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는 침대버스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침대칸에는 더블 과 싱글 칸이 있는데 더블에는 3명도 누울 수가 있어서 친구 2명과 함께 3명이 침낭을 덮고 나란히 누워서 뭄바이로 출발 하였다.


버스에 누워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보니 별들이 총총히 반짝이었다. 달리는 버스의 2층 침대에 누워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것도 색 다른 재미를 가져다주었는데 창문을 열어도 남쪽으로 많이 내려온 곳이라 날씨도 춥지 않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도 상쾌하였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새벽 2시쯤에야 잠이 들었다.
인도에서 타본 2층 침대버스는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글: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