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28.인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뭄바이...

migiroo 2009. 11. 7. 15:03

 

 

 

조그마한 소녀가 꽃을 실로 역어 팔찌를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
그저 손만 내밀고 동냥하는 걸인들보다 손으로 직접 만든 꽃팔찌를
파는 것이 기특해서 10루피에 사서 손목에 걸었다.
꽃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수첩에 메모를 할 때마다 손목에서 향기가
솔솔 나니 기분이 좋았다.
(본문 중에서...)

 

 

 

아침 6시 30분 희미한 여명이 떠오르는 "뭄바이"에 도착하였다. 어슴푸레한 여명 속에 인도양으로 연결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다를 향해 우뚝 선 “인디아 게이트웨이”가 보인다.
길 건너편에는 고풍스러운 타즈마할 호텔이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며 조용히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이른 아침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은 쌀쌀하였지만 긴 밤을 버스 속에 보내어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것 같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을 하는 사람도 간간히 눈에 띠고 인디아 게이트 앞에는 수많은 비둘기가 날아다니며 땅에 뿌려진 먹이를 쪼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자니 어느새 환한 햇살을 비추며 뭄바이의 아침이 밝았다.


뭄바이는 미국의 뉴욕에 비유할 수 있는 인도의 경제도시로 최대의 증권시장과 대표적인 기업들의 본사가 빌딩 숲을 이루고 있고, 공항과 항만을 통한 수출입 물량이 전체의 50%를 차지하는 인도의 핵심 도시이다.


1660년대만 해도 작은 어촌에 불과해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영국의 찰스2세에게 시집을 갈 때 혼수품목에 포함될 정도였지만 미국의 남북전쟁을 계기로 인도의 면(綿)이 세계시장에 각광받게 되면서부터 상업도시로 변모하였다. 특히나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런던과 뭄바이 간의 항로가 단축되자 동인도 회사를 중심으로 뭄바이의 무역상들이 폭발적인 호경기를 누리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명실 공히 인도 최대의 무역항으로 자리를 굳히고 인도의 경제를 장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화려한 빌딩 숲 뒤에는 아시아 최대의 빈민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종교 간의 갈등으로 폭동과 테러가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를 낳기도 하는 첨예한 대립의 도시 이기도하다. 예전에는 "봄베이"란 이름으로 불린 곳인데 나는 아직도 뭄바이라는 이름이 낮 설고 봄베이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특급호텔인 타즈마할에서 묵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저렴한 경비로 여행하는 배낭족이라 타즈마할 호텔을 뒤로한 체 예약해둔 숙소로 이동하였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3개의 호텔로 각각 분산해야 했는데 나는 별 3개짜리인 "슈바 팔라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하얀 페인트를 칠한 호텔은 비록 별 다섯 개의 특급은 아니지만 아담하고 깨끗하여 마음에 들었다. 아침도 거른 체 엘레판타 섬으로 가기위해 서둘러 숙소를 나와 선착장으로 향하였다.
인디아 게이트웨이 앞에 위치한 선착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성거리고 있다. 타즈마할 호텔과 인디아 게이트 웨이 위를 날아다니는 비둘기 떼는 바다와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였다. 

 

인디아 게이트웨이(Gateway of India)는 영국의 조지 5세가 인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1924년에 완공하였다 한다.


 

           

 

그 당시에는 배가 최고의 장거리 교통수단 이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출입국을 거치던 인도의 관문 이였지만 교통수단이 다양해진 현재는 그저 엘레판타 섬으로 운행하는 보트의 선착장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도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모두에게 "박시시"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바다를 보며 외면하고 서있는데 조그마한 소녀가 꽃을 실로 역어 팔찌를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 그저 손만 내밀고 동냥하는 걸인들보다 손으로 직접 만든 꽃팔찌를 파는 것이 기특해서 10루피에 사서 손목에 걸었다. 꽃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수첩에 메모를 할 때마다 손목에서 향기가 솔솔 나니 기분이 좋았다.

 
배를 타고 엘레판다 섬으로 향하며 바다를 보니 온통 황토색이었는데 왜 바다가 푸른색이 아닌지 의아스러웠다. 11킬로의 바닷길을 1시간에 걸쳐 갔지만 푸른색의 깨끗한 물은 볼 수가 없었다. 엘레판타 섬은 450~750년에 걸쳐 조성된 동굴 사원이 있는 곳으로 사원 안에는 여러 가지의 조각들이 있는데 브라흐마, 비쉬누, 시바 신이 각각 묘사된 3면의 얼굴을 가진 "트리무르티" 상이 유명하다.


동굴사원 앞에는 실물 크기의 코끼리 상이 있었는데 포루트칼 병사가 이 섬의 까다로운 인도식 발음보다 쉬운 말인 코끼리를 지칭하여 엘레판타 섬으로 되었다 한다.
조그마한 섬에 도착하니 사원으로 오르는 길에는 기념품을 파는 수많은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각종 나무와 돌로 된 인도의 기념품과 티셔츠 등등...지금까지 본 모든 기념품들이 총망라하여 끝없이 긴 줄로 이어져 있다. 진작 유적지를 보기보다 기념품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데 일찍 사원을 둘러본 일행이 우리를 보고 너무 볼 것이 없으니 갈필요가 없다고 얘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엘로라와 아잔타의 석굴 사원을 보았으니 그와 비교되지 않는 엘레판타 석굴이 시시하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일행의 말을 듣고 사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기념품을 구경하는 데만 모든 시간을 허비하였다. 되돌아오는 배를 타고 항구에 이르니 멀리서도 인디아 게이트웨이와 타즈마할 호텔이 주위의 건물 속에 확연히 들어나 보였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고 제일 먼저 눈앞에 보이는 타즈마할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신관과 구관으로 구별되어 있었는데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구관에 들어서니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있고 미로처럼 연결된 끝에는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인 이곳은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미술품들이 뛰어나 보이며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프런트를 장식한 붉은색의 회화작품은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쇼핑 아케이트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들이 즐비 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나는 인도의 갑부가 아니므로 아이쇼핑을 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다.


뭄바이 거리는 영국식의 고풍스러운 건물 들이 많이 보였는데 중세기 영국의 한 도시를 연상케 하듯 건물들이 우아하고 매력적 이었다.

 

 

        

 

내일이면 인도를 떠나는 날...


남은 루피를 다 쓰려고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꼴라바" 지역에서 쇼핑을 하였다. 인도풍의 슬리퍼와 샌들을 사고 상업도시인 뭄바이에서 가장 숭배 받는다는 돈을 벌게 해주는 "가네쉬"신상을 구입하였다.
중국에 갔을 때 집안의 잡귀를 내 쫒는 신상을 구입하여 텔레비전 위에 올려 두었는데 인도에서 산 가네쉬상도 그 옆에 함께 놓아둘 예정이다. 집안의 잡귀를 없애 주는 신과 돈을 벌게 해주는 신이 우리 집을 지킨다면 조만간 나는 아주 큰 부자가 되고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였다.
밤이 되자 우리는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타즈마할 호텔에서 뷔페를 먹으며 보내기로 하였다. 푸쉬카르에서 산 펀자비 드레스를 입고 오늘 구입한 샌들을 신고 인도에서 처음으로 화장을 하고 타즈마할 호텔로 향했다.

  

부페식당에 앉아 부자 집 마나님처럼 우아(?)하게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였다. 4인조 벤드가 다가오더니 한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만남"이라는 한국가요를 불러주었다. 발음도 서툴고 리듬도 어설펐지만 인도의 특급 호텔에서 한국가요를 들으니 무척이나 흐뭇한 마음이었다. 보통 10루피 정도하는 "아쿠아피나" 생수 한 병이 이곳에서는 100루피나 하였고, 4명이 식사를 마친 후 계산서를 보니 3,922루피가 나왔다. 한 끼에 보통 30~50루피 정도면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특급호텔답게 무척이나 비쌌다. 1인당 거의 1000루피 정도로 처음이자 마지막으 로 인도에서 최고로 비싼 음식을 먹었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바로 호텔을 나가기가 아쉬워 로비의 쇼파에 앉아 담소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었는데 로비의 Duty manager(당직 지배인)의 자리에는 아주 예쁘고 인텔리젼트한 인도 여자가 하늘색 전통사리를 입고 앉아 업무에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성의 지위가 낮은 인도에서 특급 호텔의 지배인 급 여자는 상위 층의 여자인 것 같아 보였는데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의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였다. 밤 11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와 짐정리를 하였다. 그동안 쓰고 다니던 모자와 가방, 추위를 막아주던 숄, 실내화와 옷가지들, 그리고 비누와 샴푸를 모두 모아 한곳에 두었다. 보잘 것 없는 물건이지만 내일아침 방을 청소하는 사람이 발견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챙겨가기를 바라는 마음 이었다.


 

오늘이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그동안 고생했던 기억들은 사라지고 아쉬움만
남으며 좀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마음의 조화일까...
아쉬움과 미련으로
잠 못 드는데
무심한 뭄바이의
밤은 깊어만 갔다.


 >글: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