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로 가는 땅/예슬이의 인도여행

24.무상한 세월 속에 묻힌 만두의 고성들...

migiroo 2009. 11. 7. 11:01

 

 

인도의 왕들은 애처가들이 많은 것 같다.
죽은 왕비를 위하여 아름다운 타즈마할을 짓기도 하고,
미모의 왕비를 위하여 궁전도 지어주고, 아들을 얻었다고
수도까지 이전하다니...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왕비를 위하여 무언가를 지었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다. 왕비를 폐위하여 궁궐에서 쫒아 내던가. 
사약을 내려  죽이는 왕은 있어도
부인을 위해 궁전을 지어준 왕은 없었다.
(본문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호수를 바라보니 햇살을 받아 물결이 반짝이고 있다. 이름 모를 새소리도 들리고 신선한 공기는 내 마음까지 상쾌하게 해주는 것 같다.

 

 

자전거를 빌려 주위에 산재한 성터를 구경하려고 20여분 걸어 시장터로 갔다. 호젓한 시골길을 걷노라니 시선을 두는 곳마다 폐허가 된 고성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옛날 번성했던 시절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을 이 길을 수세기가 흐른 지금 내가 걸으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져서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 만두를 먹는 만두와 연관시키니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마을을 빙 둘러싼 성벽과 고성은 만두피이고 그 가운데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만두 속과 똑같지 않은가...
일행에게 얘기하니 정말 그럴듯한 얘기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길을 걷다가 집 앞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소녀에게 샴푸샘플을 주고 조금 가다가 젊은 새댁을 만나 또 하나를 주고 가지고 있던 샴푸 5개를 만나는 인도 여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전거 대여점에는 전부 큰 자전거만 있어서 키가 작은 일행은 안장이 높아 탈수가 없어 그냥 걸어서 다니며 구경하기로 했다.

 

이슬람 사원인 자미 마스지드를 구경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호샹샤"의 무덤으로 갔다. 호샹샤의 무덤은 인도에서 최초로 대리석을 사용한 건축물로 타즈마할을 지을 때 견본으로 참고하였다 한다. 그곳을 나와 우리는 먼 곳에 위치한 유적지로 가기위해 하루 종일 타는 릭샤를 200루피에 흥정하여 로열구역에 있는 자하즈마할로 향했다.

자하즈마할은 호색가인 "가야스우드 딘"의 화려했던 궁전으로 "환락의 도시"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배의 궁전이란 뜻을 지닌 이 건물은 마치 호수에 떠있는 것처럼 아름답게 설계 되었는데 궁전 안에는 갖가지 조각으로 어우러진 목욕탕이 여러 개 있었다. 이곳에서 왕은 1만5천명의 궁녀와 춤과 노래로 인생을 즐겼으리라...
이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호화로웠던 궁전의 모습은 간데없고 허물어진 폐허만 남아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에게 인생의 허망함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을 이용해 운치 있는 궁전을 건축한 옛 사람들의 지혜에 감탄하며 넓은 궁전내부와 호숫가로 연결된 별궁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자하즈마할을 나와 만두의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바즈바하두르" 궁전으로 향했다. 일행 중에는 만두가 작은 시골마을이라 생각하여 걸어서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릭샤를 타고가다 길에서 마주치면 먼 거리를 더위에 지친모습으로 걷고 있어서 안쓰러워 보였다.
궁전 앞에 내리니 마을 사람들이 길을 보수하느라 한창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아주머니가 길거리에 앉아 짜파티를 굽는 모습이 보였는데 점심으로 먹으려고 10장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이 궁전은 만두의 마지막 군주인 "바하두르샤"가 살던 곳으로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탁 트여서 만두의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궁전에서 언덕으로 조금 오르면 "룹마띠"의 별궁이 있는데 바하두르 샤가 아름다운 왕비 "룹마띠"를 위하여 친정 쪽으로 향한 별궁을 지어 그녀를 위로했다고 한다.
인도의 왕들은 애처가들이 많은 것 같다. 죽은 왕비를 위하여 아름다운 타즈마할을 짓기도 하고 미모의 왕비를 위하여 궁전도 지어주고 아들을 얻었다고 수도까지 이전하다니...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왕비를 위하여 무언가를 지었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다. 왕비를 폐위하여 궁궐에서 쫒아 내던가. 사약을 내려  죽이는 왕은 있어도 부인을 위해 궁전을 지어준 왕은 없었다.

 

룹마띠는 너무 아름다워서 무굴황제가 만두를 침공한 것도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라 했는데 그녀는 왕을 피신시킨 뒤 악바르가 궁전에 입성하기 전 음독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너무 예쁘게 태어난 것도 죄가 되는지 그녀의 인생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인박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쌍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탄 릭샤는 너무 낡아서 가다가 시동이 꺼지고 조금만 경사가 져도 오르지를 못했다. 시동이 꺼지면 내려서 밀기도 하였는데 릭샤꾼에게 너무 낡았다고 불평을 하니 자그만치 25년이 된 릭샤란다. 오토바이를 25년이나 쓰고 있다니 본전을 몇 배로 뽑고도 남았으리라 생각되었다. 인도의 버스 수명이 보통 50 년이니 오토바이를 25년 동안 끌고 다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릭샤꾼은 나이가 25세 된 총각인데 나를 보고 스물한 살같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40대 후반이라고 나이를 밝히자 거짓말이라고 도통 믿지를 않는다. 인도사람들은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인다. 30대는 마치 40대로 10년은 더 들어 보이는데 그들의 눈으로 동양인의 나이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친구 한명이 농담으로 나이가 23세라고 말하며 릭샤꾼에게 보이프렌드하자고 말했더니
순진한 총각은 정말인줄 알고 그녀에게만 무척 친절하게 대했다. 계단을 오를 때면 손을 잡아 부축해주고 릭샤를 탈 때도 항상 자기 옆에 앉게 하여 시종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너무 웃기고 재밌어서 친구와 동조자가 되어 거들었는데 유적지를 다 둘러보고 헤어질 때 쯤 친구에게 밤 9시에 만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농담으로 한 말을 릭샤꾼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뚝 때고 돌아서니 머쓱해진 총각은 아쉬운 표정으로 걸어가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숙소에 도착하여 탄도리 치킨 두 마리와 맥주 2병을 시켜 먹었는데 웨이터는 정말 치킨이 두 마리가 맞느냐고 하며 자꾸 확인한다. 인도의 닭은 마치 병아리처럼 작아서 한마리라 해도 조그마한 4조각이니 두 마리라도 결코 많은 양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웨이터는 여자들이 두 마리나 먹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표정 이었다.


밤에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호젓하고 한가로운 곳에서 쉴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잠들기조차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룸메이트와 이런저런 얘기로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인도 여행 중에서 만두는
오차와 더불어 잊지 못할
아름다운 마을로 기억될 것이다.


>글: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