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상/경주문화재 단상

8.만행 蠻行-경주 노서동 석불입상

migiroo 2009. 11. 13. 15:20

 

 

 

만행 蠻行-경주 노서동 석불입상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 말만 되풀이 뉘아리며 가슴을 칩니다.
인간의 잔혹성이 어디까지 인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석불의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여느 석불처럼 머리가 떨어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석불의 얼굴이 수도 없이 후벼 으깬 흔적이 너무나 처절합니다.


할 말을 잃습니다.
마치 나 자신이 이런 만행(蠻行)을 저지른 장본인 같아
그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이 석불을 만든 신라의 석공은 100일, 1,000일 기도하며
간절한 치성(致誠)으로 돌을 쪼고 쪼아 불상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상을 망가트린 자도 사람일진데 어찌 이 같이
잔혹 할 수가 있나요.


불상을 만든 자나, 불상을 망가트린 자나 똑 같은 인간일진데
왜 이리도 극과 극의 양면성의 인성을 갖게 됐을까요.
어떤 억하심정으로 이 불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인간들의 이중성에 환멸마저 느껴집니다.


노서동 석불이여!!!


차라리 땅 속에 묻혀 계시지  어이 하자고 이 험한 인욕의 땅에 오시여
한낱 분별조차도 없는 인간들로부터 그 모진 수모와 모욕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러시고도 티끌만한 미움이나 원망조차 없이 천년세월 선정(禪定)에 들어계시니
당신은 정녕 한낱 돌입니까?  아니면…….
우리 중생(衆生)들을 구제 하시려 내려오신  진정한 여래(如來) 이십니까?
짓 이겨져 처연하게 망가진 당신의 그 불안(佛顔)을 차마 눈 뜨고는 보지 못하고
가슴을 쳐 그 아픔을 쓸어내립니다." 


 

경주 노서동 석불입상 

 

이 석불은 경주시 노서동에 있다고

해서 '노서동 석불입상' 이라고 

부릅니다. 경주에서 교통이 가장 혼잡한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터미널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석불에 무슨 원한이 그렇게도

깊었기에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었는지...
언제 누구에 의해 처절하게 얼굴

부위를 난타 당 했는지는 모릅니다.
혹자는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훼손

했다고도 합니다만 일본 사람들은

문화재를 약탈해 가면 갔지 파괴하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분명히 우리사람들의 소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같은 만행을 저지른 사람도 위급하면

필시 "부처님" 하고 부처님을 제일 먼저

찾을 겁니다. 

 

노서동 석불입상은 바로 시외버스 터미널 뒷쪽 후미진 곳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버스들의 온갖 매연과 소음을 고스란히 뒤 집어 쓰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잔디가 깔리고 낡은 브록크 담으로 보호막이 둘러쳐져 있긴 합니다만
어쩐지 너무 허술한 관리상태가 눈에 보여 가슴이 아픕니다. 
 

 

           


부디 이 석불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문화재로서 차라리 지금의 자리에서
경주의 공원이나 박물관 같은 곳으로 옮겨 관리함이 좋은 듯합니다.
문화재는 원래 있던 자리에 두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합니다만
제대로 관리가 되어 있을 때 하는 말일 겁니다.


저는 이 석불만 보면 울화가 치밉니다.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공연히 봐 가지고 가슴만 아파합니다.

 

경주에 이런 만행의 흔적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나는 불자는 아직 되지 못했지만....

법당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 보다도 이런 부처님을 더 사랑합니다.

 

보수 정비후의 문제

 

 

            

  

경주시는 지역주민들의 끈질긴 민원으로 지난2009년7월에 도비 6천만원을 들여 노서동 터미널

옆에 위치한 노서동 석불입상(도지정문화제 11호)을 보호각을 지어 정비하였다.
이 석불은 통일신라시대의 석불로 지역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불상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수십대씩 주차되 있다. 그것도 불상을 뒤에 두고 말이다. 버스가 엔진을 걸면 씨커먼 매연이

고스란히 석불을 뒤집어쓸 것임이 틀립없다.
보호각 설치전에는 불로크 담장이라도 쳐져 있어 버스 매연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석불이 매연을 고스란히 마시고 살게 되었다.

막대한 돈을 들여 석불을 보호한다는 당국의 조치가 이 모양이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미지로(2007.10.10)

 

 

 

 

경주 노서동석불입상(慶州 路西洞 石佛立像)-문화재자료 제11호(경주시)

 
이 석불은 현재 경주 시외버스 정류장 북 서편의 폐사지에 남아있다. 이 폐사지는 남항사지로 추정되고 있는 곳이다. 다소 작은 체구에 그리 높지도 않은 작은 불상으로 현재 파손이 심해 알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광배(光背)가 있으며, 안면은 완전히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 아쉬움을 더한다. 광배와 의습의 문양 등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불임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다리 아랫부분은 땅에 묻혀있어 알 수가 없으며, 얼굴은 모양조차 알 수 없게 되었는데 사람에 의해 망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광배(光背)는 머리둘레의 두광(頭光)과 몸 둘레의 신광(身光)이 각각 2중 선으로 표현되었으나 신광은 완전히 파괴되고 두광도 많이 망가져 자세히 알 수 없다.
몸은 비교적 세련되고 허리 위가 길게 표현되었다. 당당한 어깨에서 가슴 일부까지 마모되어 있어서 옷은 어떻게 걸쳤는지 알 수 없고 가슴부터 아래로는 비스듬한 경사를 이루면서 층단을 이루어 촘촘하게 표현되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삼랑사터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삼랑사(三郞寺) 남쪽에 남항사(南巷寺)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곳을 남항사터로 추정하고 있다. 남항사는 신라 효소왕(孝昭王:재위 692∼702) 때 삼랑사 경흥(景興) 스님의 병을 고친 11면관음보살 전설이 있는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효소왕(재위 692∼702) 때 삼랑사 주지 경흥(憬興)이 병이 들었는데, 한 여승이 11가지 보살모습으로 나타나 해학적인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병이 낫게 되었다고한다.  그 여승이 사라진 곳이 남항사로 전해 지는데, 남항사는 신라 효소왕 이전에 세워진것으로 절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