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29호 성덕대왕 신종(聖德大王神鐘)
▲에밀레종의 영상 사진촬영 - 미지로 2008.12.14일 경주박물관에서....
2008년 12월14일은 성덕대왕신종 즉 에밀레종이 탄생한지 1,237년 째 되는 생일이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매년 양력 12월14일 에밀레종 조성 기념일(생일)을 맞아 뜻있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타깝게도 종의 보호를 위하여 치지 않는 종...,
소리를 내지 않는 죽은 종으로 종각에 걸려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종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으니 정말 아쉽습니다. 에밀레종 소리 그 신비의 종소리는 녹음된 전자 음향기기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에밀레 종소리를 그리워 하며 여기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여러가지 글을 올립니다.
1).신종의 개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奉德寺)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종명(鐘銘)에 의하면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이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뒤를 이어 771년(혜공왕 7)에 구리 12만 근(27t)을 들여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래 봉덕사에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 6) 영묘사(靈妙寺)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종 모양은 입 부분에 당초문으로 된 띠가 있으며, 당초문 사이에 8개의 큼직한 연화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다. 종위에는 웅건한 모습의 용(龍)이 음관(音管)을 감고 있다. 비천상 사이의 2개 처에 이 종의 유래와 종을 만들 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이 적힌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2).성덕대왕신종의 신비와 진실
(1).신비의 실체는?
▲에밀레종의 비천상
에밀레종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호기심은 과연 전설의 내용이 사실일까 하는 점일 것이다. 정말로 끓는 쇳물에 어린아이를 집어넣어 만들었을까?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도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그 전설이 사실일 경우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도대체 인신공양이 종을 만드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뼈에 들어있는 '인(燐, P)' 성분은 합금을 만들 때 합성을 용이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쇠나 청동불상 등에도 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뼈에도 함유된 성분인데, 유독 에밀레종만 인신공양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에밀레종의 정식 명칭은 종에 새겨진 대로 성덕대왕신종이다. 성덕대왕은 신라 제 33대 왕이나, 종을 만든 것은 그 아들인 경덕왕(35대)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종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경덕왕은 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근 20여 년이 지나 결국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36대)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이 탄생하였다. 성덕대왕신종이 무게가 20톤 가까이 나가는 크고 무거운 것이긴 하지만 제조 기간이 20여 년씩이나 걸렸다면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가 거듭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결국 거듭된 실패를 극복하고자 인신공양 같은 극한적인 방법을 동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일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2).종소리의 비밀
▲종을 치는 곳 "당좌"
한편으로 에밀레종은 그 독특한 소리 때문에 아기공양 전설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이 종은 소리의 여운이 유난히 긴 것으로 유명하다. 종을 치면 그 은은한 여운이 끊어질 듯 작아지다가 다시 이어지곤 하는 현상이 1분 이상 지속되며, 특히 가슴을 울리는 저음역의 여운은 3분까지도 이어진다. 이렇듯 반복되는 여운 소리가 '에밀레~ 에밀레~'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탓하며 우는 소리 같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란 별명이 붙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전설이 신빙성을 가지려면 에밀레종에도 앞서 얘기한 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야 할 텐데, 이에 대해서는 그 동안 검사 기관마다 엇갈리는 보고가 발표되곤 하였다.
먼저 1970년대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선 에밀레종에서 한 어린아이의 유체 분량에 해당하는 인이 검출되었다 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1998년에 포항산업과학원에서 분석했을 때에는 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 다. 이들은 에밀레종의 각 부분 열두 군데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극미량원소분석기'로 분석했지만 인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장비는 시료에 0.0000001% 이상 포함된 성분은 모두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에밀레종에 인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전설이 사실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구리가 녹은 물에 사람이 들어가면 비중이 낮아서 위로 뜨기 때문에, 그 유체가 타고 남은 찌꺼기도 다른 불순물 같이 위에 걸러서 없애버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에밀레종 전설의 핵심은 종 자체의 소리와 제조 기법의 신비가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에밀레종의 복제품을 두 번이나 만든 적이 있지만, 에밀레종 원래의 그 신비하고 은은한 여운을 재현 하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 페드로에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 하기위해 우리나라가 1976년에 기증한 '우정의 종'이 한국식 보신각 건물과 함께 자리 잡고 있는데(영화 '유 주얼 서스펙트'에 배경으로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이 종이 에밀레종을 그대로 본 따 만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서울의 종로 보신각에 걸려있는 종 역시 에밀레종을 그대로 재현하려 한 것이지만, 이 종들은 둘 다 에밀레종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신비한 소리를 전혀 들려주지 못하고 있다.
종소리가 갖는 주파수와 화음 등등 여러 가지 항목을 수치화하여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보면 현재의 보신각종은 채 60점이 안 된다. 하지만 에밀레종은 86점이 넘게 나온다. 이밖에 에밀레종과 마찬가지로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상원사 동종은 65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46톤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유명한 중국의 영락대종은 40점대에 머무를 뿐이라는 것이다.
왜 에밀레종의 소리를 재현하는 일은 어려운가? 현대 과학은 합금의 성분비와 질량, 무게중심 등등 여러 가지 물리적 특성을 정확히 측정하고 계산해낼 수는 있지만 결국 그것을 그대로 복제해 내는 기술을 밝히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에밀레종에 바쳐진 20여 년의 세월과 아기 공양 전설까지 낳게 한 옛날 선인들의 정성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자료 : 박상준-과학 칼럼니스트)
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1).전설 속으로...
▲신비의 소리 근원지 종의 음통과 영통 그리고 용유
내부 쇠 찌꺼기가 비대칭 확대 맥놀이 증폭, 용머리 뒤쪽 대통모양의 관이 잡음 없애, 신라 혜공왕은 봉덕사의 신종 주조를 위해 스님들로 하여금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재물을 거둬들이게 하였다. 불심에 가득 차 있는 백성들은 나라에서 큰 종을 만든다는 말에 자기의 힘이 닿는 대로 재물을 바쳤다. 그리나 종이 완성되었지만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모두들 종이 울리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던 어느 날, 봉덕사의 주지 스님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백발노인이 꿈속에 나타나 말했다.
"그대들이 시주 다닐 때 어떤 부인이 '우리 집은 가난해서 아무 것도 바칠 것이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도 가져 가십시오'라고 말했는데 어째서 그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그 어린아이는 몸에 화성(火姓)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아이와 함께 쇠를 녹여서 만들면 좋은 소리를 낼 것이다."
백발노인의 말이 너무나 신기해서 주지 스님이 이튿날 봉덕사 스님들을 모아놓고 꿈 이야기를 했다.
"제가 그런 부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 스님이 마침내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주지 스님은 그 아이를 데려오도록 명했다. 명령을 받은 스님을 곧 길을 떠났지만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주지 스님의 명령대로 아이를 데려 간다면 그 아이는 종을 만들기 위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를 시주하겠다는 부인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스님은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부인을 다시 만났다. 백발노인이 말한 아이가 틀림없었다. "저번 소승이 댁에 찾아왔을 때, 부인께서는 바칠 것이 없으니, 이 아이라도 시주하시겠다고 하신 일이 생각나십니까?" "예.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만…." "그때 하신 말씀대로 그 아이를 시주해 주십시오." "뭐라고요?"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그 아이를 시주해 달라는 뜻입니다." "안 됩니다. 그때는 제가 닿는 대로 빈 소리를 한 것입니다."
부인이 이렇게 딱 잘라 말하는 데는 스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봉덕사의 신종을 반드시 울려야 할 임무를 갖고 있는 스님으로서는 그냥 돌아서서 나올 수도 없었다. 스님은 그 아이만이 종을 울릴 힘을 갖고 있다고 부인을 설득했다. 귀여운 딸이 지금은 죽는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하는 종소리가 된다면 만백성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라며 간청하였다. 부인은 사람의 힘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큰 힘이 사랑하는 딸을 데리고 가려는 것을 깨닫고 스님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어린아이를 내밀었다.
종은 부처님의 큰 뜻에 따르려는 신앙심, 한 어머니의 피눈물, 어린 여자아이의 생명과 쇳물이 함께 녹여 져서 다시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 종은 넓은 경주 땅은 물론이고 온 나라 구석구석 까지 울려 퍼졌다. 종소리를 들은 왕은 매우 흡족하였고 지켜보던 많은 백성들도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종소리는 마치 어린 딸이 어머니를 부르는 듯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하고 울었다. 즉 '에미 때문에, 에미 때문에'라고 운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엾은 어린이를 동정하였다. 이것이 봉덕사의 신종이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설의 내용이다.
(2).전설의 의미
사실 종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웅장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고, 같은 소리라도 처량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봉덕사 신종이 '에밀레종'이라는 속명으로 부르게 된 전설의 유래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이 종에 새겨 있는 명문 내용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효성이 지극하신 경덕왕은 부모에 대한 추원(追遠)의 정이 골수에 사무치심에, 동 12만 근을 희사하여 아버지인 성덕대왕을 위하여 대종(大鐘)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은 경덕왕의 유언을 받들어 유사(有司)에게 분부하여 종을 만들게 하였다.'
이 명문에 의할 경우 이 종을 완성하기까지 약 20년이 걸린 셈인데 이것은 종이 만들어질 때까지 여러 차례의 실패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종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수많은 실패가 이어졌으며 실패할 때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던 중에 어린아이가 희생되었다는 슬픈 전설도 생겼다고 추정할 수 있다.
4).인신공양(아이의 희생)의 의미
▲종신에 새겨진 명문
어린아이가 종소리를 좋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쇳물과 함께 녹여졌다는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첫째는 전설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아기가 진짜로 희생됐다는 주장은 에밀레종 속에 인(燐, P)의 성분이 소량이나마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사람의 뼈나 동물의 뼛속에 있는 인의 성분은 물질의 합성이나 합금을 만들 때 신기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도 우리나라의 무쇠와 청동불상에는 인이 소량 들어있으므로 에밀레종 속에서 인이 발견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불교가 매우 성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봉덕사의 신종에 포함된 인은 동물의 뼈라기 보다는 인신공양(사람의 몸을 바치는 일)으로 사람의 뼈가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1970년대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정밀 조사(<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1970년대에 에밀레종을 복제하여 미국에 선물로 보냈는데(우정의 종) 이 종은 현재 미국의 로스앤젤러스(LA) 항구에 있다)에 의하면 에밀레종에서 한 어린아이의 유체(시체)에 해당하는 인이 검출되었다고 발표되었다.
두 번째는 어린아이의 희생으로 종을 만들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람의 목숨은 물론 짐승의 생명조차 존중하여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인신공양과 같은 전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의뢰로 1998년 8월, 에밀레종을 분석하였더니 뼈의 주성분인 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하였다. 에밀레종 12군데서 샘플을 채취, 분석 시료 안에 1천만 분의 1% 이상 들어가 있는 성분은 모두 검출할 수 있는 '극미량원소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에밀레종의 검사를 두고 시험 결과가 엇갈리지만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서도 자신들의 분석 때문에 전설이 무조건 근거가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사람의 비중이 구리보다 가벼우므로 전설처럼 어린아이를 넣었다면 위로 떠서 타기 때문에 '쇠찌꺼기'처럼 남게 된다. 만약에 에밀레종 제작 당시에 이것을 '불순물'로 생각하여 제거했다면 인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였다.
결국 에밀레종에 대한 전설은 인의 발견과 관계없이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을 계속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에밀레종의 주조에 신라의 모든 염원이 쏟아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대인의 감각만으로 어린아이의 인신공양에 대한 진위 여부를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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